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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끼묘 Jun 27. 2020

공감을 원했을 뿐인데, 너는 부담을 느꼈다.

이해하지만 서운하다는 건


 머리로는 이해가 되는데, 마음으로 또 행동으로는 삐뚤게 나갈 때가 있다. 그럴 때 내가 원했던 건 공감. 그게 전부였다. 그런데 상대는 그런 나에게 부담을 느꼈다.






 다툼은 언제나 '서운함'에서 시작했다.


 장거리 연애로 주말을 제외한 평일은 오롯이 휴대폰이 내 연애의 오작교 역할을 했다.



 연애초 서로의 직장에서 점심 먹을 시간도 아껴가며 전화통화를 했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일과시간에 그의 목소리를 듣는 게 힘들어졌다.  


 업무시간에 틈내어 사랑을 속삭이던 간지러운 메시지들도 점차 퇴근 후로 밀렸다.


 또 뜨거워진 핸드폰을 양손에 번갈아 잡고, 새벽까지 설레어 잠 못 자게 만들었던 통화는 회식이 끝난 후 그의 술 취한 목소리로 대신하는 일이 많아졌다.


 연애초 한 껏 달아올랐던 서로가 점차 안정기에 접어들면서 각자의 생활에 맞춰 변해가는 건 당연하고도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기에 서로의 일상이 다름은 이해했지만 한 편으로는 서운했다.



 그리고 이런 '이해는 하지만 서운해'가 연애기간 동안 지속되었다.






 업종 특성상 핸드폰 보는 게 눈치 보인다는 그의 말을 이해하기로 했다. 어려운 상대랑 하는 회식자리가 많아 연락하기 어렵다는 것도 이해하기로 했다. 또 회식이 본인 의사와 상관없이 많이 잡힌다는 것도 이해하기로 했다.


 친구들과 연락도 잘하지 못해 대화에 끼지 못하는 그를 보며 속상한 마음에 이해가 됐다. 본인보다 몇 살이나 많은 윗 분들과의 술자리에 긴장하고 있을 그를 상상하니 측은해 이해가 됐다. 잦은 술자리에 속이 더부룩해 앉아서 겨우 잠이 들 그를 떠올리니 안타까워 이해가 됐다.


 내가 보지 못하는 곳에서 이뤄지는 그의 일상들이 머릿속에 선명히 그려져 마음이 아팠고, 나라도 그의 편안한 안식처가 되어주고 싶었다. 그렇게 머리로는 모든 걸 이해했다.



 하지만 문제는 마음이었다. 처음에는 1~2시간이면 끝났던 그의 부재가 점점 늘어나고, 하루 3-4통의 메시지가 전부인 날에는 서운함이 몰려왔다. 회식자리의 긴 기다림 끝에 들리는 그의 취한 목소리는 내 가슴을 먹먹하게 했다.


 그의 부재가 그의 잘못이 아닌 건 누구보다 잘 알지만 마음은 내 머리로 조정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나 조차도 내 서운함의 농도를 조절할 수 없었다.


 이런 서운함이 쌓이다 보면 여지없이 티가 났다. 당장 달려가 어리광이라도 부려보고 싶었다. 그런데 평일엔 볼 수 없으니 그런 티를 낼 수 있는 건 애석하게도 휴대폰 너머로 들리는 목소리뿐이었다.


 속으로 수 없이 참고 참았던 말, 서운해.


 서운해의 사전적 의미는 섭섭한 마음. 내가 전달하고자 했던 의미도 그 뜻 그대로였다. 나는 그에게 화가 난 것도, 그의 사회생활을 존중하지 못한 것도 아니었다. 단지 섭섭한 마음이 들었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 말을 통해 내가 원한 건 공감. 뭔가를 고치라던가 해결해 달라는 강요가 아닌 그저 내 마음을 알아만 달라고. "그랬어? 그랬구나."와 같이 짧은 답변이라도 해주길 바라면서 말이다.


 그러나 그는 그런 나에게 부담을 느꼈다. 어쩔 수 없는 본인의 상황에 뭔가 획기적인 대안을 내리라는 말로 들렸나 보다. 내 서운함은 그를 미안하게만 만드는 죄인으로 만들었나 보다.






 이성의 영역인 이해와 감정의 영역인 서운함. 그렇기에 '이해는 하는데 서운해'는 모순이 아니라고 한다. 내 마음 또한 그런 거였다.


 그를 이해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미워해서가 아니라, 일부러 죄인으로 만들어 사과를 받기 위함이 아니라 단지 섭섭했을 뿐이다. 그리고 그 마음을 알아주기만 바랬다.


 그런데 나는 어느 순간 그를 이해하지 못하는 속 좁은 사람이 되어있었다. 여러 번의 이해로 쌓았던 관계가 한두 번의 서운함으로 원점이 되어버리곤 했다.


 그에게는 필요한 사람이 되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 하지만 핸드폰 너머로 들리는 그의 한숨소리에 나는 그를 방해하는 사람이 된 거 같았다. 점점 자신이 없어졌다.


 어디서부터 꼬여버린 걸까. 내가 없으면 그 사람이 편하지 않을까?라고 생각한 순간부터 일까. 한숨소리의 무게가 쌓여 내 사랑을 억누르고 있는 듯했다. 그렇게 나는 계속해서 혼자 흔들리고 있었다.


 그리고 결국 그의 마지막 한숨소리, 그 소리에 난 그의 옆에 설 자리가 없다는 걸 느꼈다. 반복적인 싸움에 답답하다는 그의 목소리를 듣는데, 그가 원하는 여자는 내가 아니란 걸 느꼈다. 나는 더 이상 그의 방해꾼이 되고 싶지 않았다. 언제나 그의 행복을 바랐기에. 그래서 내가 가장 아파할 방법으로 더 모질게 끊어냈다.



 그도 충분히 노력했다 생각한다. 그에게 받은 사랑은 진심이었고 그 무엇보다 따뜻했으니. 다만 서로의 상황이 맞지 않았다고 핑계를 대보려 한다.


 그 한숨소리가 시간이 많이 흐른 지금도 또렷하게 기억된다. 그 소리를 듣자마자 온 몸이 녹아내리듯 힘이 쫙 빠져버렸던 내 모습도, 무더웠던 밤 나에게만 스산하게 느껴졌던 그 공기의 무게도.




 그렇게 애정 가득한 사랑 에세이의 주인공이 될 줄 알았던 그는 이별의 주제로 내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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