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문작 Mar 12. 2024

우리에게 시간은 충분하지 않다

언젠가 라디오에서 들은 육아 전문가의 말이 잊히지 않는다. 자녀가 사춘기인지 아닌지 어떻게 알 수 있냐는 한 청취자의 질문에 전문가는 이렇게 대답했다.


“사춘기 자녀는 24시간 화가 나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땐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잘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어느 순간 피부로 느껴졌다. 아이는 5학년이 끝나갈 무렵, 나와 나누는 모든 대화를 짜증과 신경질로 받아쳤고 눈빛이 사나워졌다. 방문을 걸어 잠그는 건 물론, 늘 귀에는 이어폰, 손에는 스마트폰이 들려있었다. 나와 약속한 인터넷 사용 시간 같은 건 당연히 지켜지지 않았고, 중학생이 되자 그 정도가 더 심해졌다. 나는 그런 딸을 보는 게 너무 버거워서 홧김에 ‘그럴 거면 집을 나가라’ ‘네 인생 네가 알아서 살아라’ 같은 말을 내뱉기도 했다. 아이의 존재가 혹 같아서, 하루라도 빨리 떼어내고 싶었다.      


그런데 그 시기가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 아이가 기숙사 생활을 하는 고등학교에 가게 된 것이다. 게다가 예비 고1일 뿐인데, 아이는 마치 성인이라도 된 것처럼 대부분의 결정을 혼자 알아서 해버렸다.   

   

“엄마, 나 친구랑 저녁 먹고 갈게. 좀 늦을 거 같아.”

“엄마, 내가 생각해 봤는데 학원은 아무래도 그만 다니는 게 좋겠어.”

“엄마, 주말에 별다른 계획 없지? 그럼 나 친구들이랑 서울 갔다 올게.”     


‘엄마’라는 호칭만 앞에 붙였을 뿐, 아이의 말은 대부분 통보였고, 내 의견을 물으며 고민하는 과정 따위는 종종 생략했다. 처음에는 이런 상황이 좀 낯설어서 일찍 들어와라, 학원은 더 가야 한다, 서울에 너무 자주 가는 것 같다, 지금이 제일 중요한 시기다 등 석연찮은 마음을 먼저 드러냈지만,  아이는 내가 뭐라고 하든 하고 싶은 대로 했다. 고등학교 합격 발표 날에는 묻지도 않고 귀를 뚫고 왔다. 기분이 썩 좋진 않았지만 언제 이렇게 컸나 싶어 신기했다


가족 여행으로 일본에 갔을 때, 아이의 모습은 더 놀라웠다. 일본 애니와 드라마, 다큐멘터리 등을 자주 보는 건 알았지만, 일본어 실력이 이 정도로 출중할 줄은 몰랐다. 대부분 택시를 타고 이동했는데 아이는 기사님 옆 자리에 앉아 대화를 나누며 현지인 같은 포스를 뽐냈다. 게다가 3박 4일 내내 우리의 귀와 입이 되어주었다. (그동안 일본 애니 좀 그만보고 부족한 과목 공부 좀 하라고 한 게  미안해지는 순간이었다)


또 혼자 쇼핑하며 거리를 걷고 싶다고 해서, 하루 중 몇 시간은 따로 다녔다. 나는 아직 미성년자인 아이가 혼자 다니는 게 걱정되어 카페에서 기다리면서도 좌불안석이었지만, 낯선 나라를 당당하게 누비는 아이의 모습에선 아우라가 느껴졌다. 아이의 몸과 마음은 이미 나와 헤어질 준비가 된 듯 보였다.    

 

기숙사에서 첫 주를 보내고 집에 온 날, 아이는 기프티콘으로 간식을 먹겠다며 저녁 아홉 시쯤 집을 나서더니, 날 생각해 떡볶이까지 사 들고 돌아왔다. 노부부가 포장마차에서 떡볶이를 팔고 계셨다며 일부러 그곳에서 사 왔다고 했다. (나한테 그 돈을 이체해 달라고 한 건 당황스러웠다...) 부쩍 어른스러워진 모습이 대견해  사춘기 딸 노릇은 이제 그만해도 되겠다는 말이 튀어나올 뻔했다.


다시 기숙사로 돌아가는 날, 저녁을 먹여서 보내고 싶었지만, 아이는 친구들과 기숙사에서 만나 같이 고기를 먹으러 가기로 했다며 서둘러 짐을 챙겼다. 그 말에 서운함도 잠시, 자녀를 다 키운 분들께서 ‘애 키울 땐 아이가 빨리 내 곁에서 떨어졌으면 하지만, 나중에는 어떻게 하면 아이를 다시 집으로 불러들일지 그 고민을 하게 된다.’라고 한 말이 이해됐다. 아직 고등학생이니 성인이 될 때까지 3년이란 시간이 남아 있는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아이는 빨리 독립적인 인간이 되어가고 있었다.      



둘째를 데리고 집에 오는 길에 허전한 마음이 들어 음악을 틀었다. 휘트니 휴스턴의 ‘Run to You’라는 노래였다. 라디오에서 우연히 들었는데 너무 좋아서 유튜브에 저장해 두었었다. 나는 이 감성을 둘째와 공유하려다 젤리처럼 흐물흐물해진 내 속내를 들킬까 봐 볼륨을 줄이며 뒷좌석에 앉은 아이에게 물었다.   

  

“이 노래 같이 들어볼래?”

“난 괜찮아. 엄마 듣고 싶은 거 들어. 이 이어폰 노이즈캔슬링이라 차단 잘 되거든.”     


이미 아이의 귀에는 이어폰, 손에는 핸드폰이 들려 있었다. 둘째가 나를 찾을 시간도 희미해지는 중이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다음 생에는 '엄마'말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