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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이 May 01. 2023

K-장녀가 이모가 될 때 생기는 일

별 볼 일 없는 집안의 K-장녀사

운이 좋았다. 남자가 많은 집에 여자로 태어난 것은.

흔치 않았다. 첫째 손녀가 집안의 기둥 대접을 받은 것은.

좋지 않았다. 항상 모든 것을 나눠야 할 존재가 있다는 것은.

싫지 않았다. 나의 동생들은 귀여운 면이 제법 있었다.

밉지 않았다. 미워야 할 대상이 있다면 동생들이 아니라, 차별하는 어른들이라고 생각했다.

변치 않았다. 이 나라의 첫째 딸에게는, 작은 권리와 큰 의무가 있다는 것은.



나는 딸 둘 아들 하나로 구성된 가정의 첫째 딸, 즉 K-장녀이다. K-장녀라는 단어가 고유명사화 될 정도라는 것은, 실제로 수많은 가정의 K-장녀들이 부모님의 압박을 견뎌내고 동생을 건사하며 자기의 것은 양보해야만 하는 삶을 살아왔다는 것이렷다. 심지어 위로 남자 형제가 있는 경우에도 우리 대한민국의 K-장녀들은 장녀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음을, 주변에서 많이 보고 들어왔다.



나의 아빠는 아들만 넷인 집의 셋째 아들이다. 아무런 영향력이 없는 존재. 장손도 아니고, 둘째처럼 눈치가 빠르지도 못하고, 막내처럼 귀여움을 오롯하게 받지도 못하는 셋째. 그것도 같은 성별로만 이루어진 집단이라니. 하다못해 딸이었으면 사랑을 독차지했을 것 아닌가.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 넷 중 머리가 가장 비상했던 아빠는 조금씩 어딘가 모자란 형제들을 대신해서 장남 노릇을 해왔다고 한다. 딱 한 가지만 빼고. 


공부도 기깔나게 잘했고 어린 동생 뒤치다꺼리를 도맡아 했으며 성인이 되어서는 생계까지 책임진 아빠가 하지 못한 것은 바로 아들을 낳는 일이었다.


정말 쥐뿔도 없는데 왜 가장이라고 으스댈까?라는 질문을 적용할 남자들은 세상천지에 널려있다. 그중에 하나가 바로 큰아빠였다. 어린 내 눈에, 경제적 능력이 뛰어난 것 같지도 않고(추측) 수려한 외모도 아닐 뿐더러 성격이 좋아보이지도 않고 부모에게든 부인에게든 무뚝뚝한 저 사람이 가정을 꾸리고 사는 것은 이상한 일이었다. 그런 큰아빠의 가부장적 권위를 추켜세운 건 아마 다른 형제들은 하지 못한, '아들 낳기'를 연달아 성공한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주변머리 없고, 멍청하고, 물러터지기만 했다며 본인의 아들들을 깎아 내리기만 하던 큰아빠의 사랑을 독차지한 것은 공교롭게도 나였다. 큰아빠의 아들이자 나의 사촌오빠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나는 아직도 잘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건, 정말 물러터질 정도로 순하디 순해 빠졌다는 것이다. 욕심, 욕망, 고집, 이기심 류의 단어들을 평생 모르고 살 것 같은 저들을 대신해, 나는 이 집안을 대표하는 욕망의 화신 캐릭터가 되었다. 우리 부모님의 트로피였던 나의 학기별 성적, 등수, 수상 실적, 선생님들의 칭찬은 명절 때가 되면 자연스레 할머니 할아버지의 것이 되었고, 큰아빠는 '이런 아이가 내 첫 조카딸이라니'라는 표정으로 나를 옆에 앉혀 두려 했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가장 으리번쩍한 트로피는 바로, '동생들을 잘 돌봄'이었다. 


얼마 전, 엄마와 나의 유년 시절에 대한 갑론을박을 하고 있는데 여동생이 문득 "그래도 언니한테 다들 너무했지. 언니가 좀 불쌍했어."라는 말을 꺼냈다. 나의 자매님은 남한테 별로 관심이 없는 아이였다. "다 같이 있을 때 즐겁게 놀면 되지 뭐."라는 '태도'를 가진, '정의로운 신념'이나 '인생의 가치관' 같은 단어를 고민해 본 적 없는, 반성과 성찰과도 거리가 먼, 그러나 모두가 편안해 하고 본인도 모두를 편안해 하는 아이. 그런 아이 입에서 '언니가 불쌍했어'라는 말이 나오다니, 엄마에게 힐난 폭격을 퍼부으려던 나의 전투력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다들 언니한테 '네가 잘돼야 동생들이 잘된다.', '동생들한테 본을 보여라.' 강요했잖아. 어디에서 상을 받아와도 어느 순간부턴 그러려니 하는 게 보이더라고. 안 받아오면 이상한 일이 되는 거고. 나는 염색도 귀걸이도 마음대로 했는데 언니가 그런 거 했으면 엄청 혼났을 걸?"


그렇다, 나는 밥상에서 "우와 이거 대빵 맛있어요."라고 했다가 빗자루로 맞은 전력이 있었다. 그런 단어를 쓰면 동생들이 따라할텐데 도대체 이상한 말을 왜 쓰냐는 이유였다. (저기서 이상한 단어란 무엇일까?)


내가 잘 되어야 동생들이 잘 된다. 너에게는 친동생 둘, 사촌동생 셋 도합 다섯의 동생들이 있다.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저도 누군가의 동생이잖아요.'라는 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 '잘 되는 건 무엇인가'를 고민했다. 


이런 별 볼 일 없는 나의 가정사를 줄줄 써댄 건, 나의 K-장녀성은 조금 기이했다는 점을 말하고 싶어서다. 나는 우리 가족의 K-장녀가 아니라 우리 집안의 K-장녀였다. 조부모의 자랑스러운 손녀이자, 백부 숙부가 아끼는 조카면서, 부모님의 뿌듯함이고 여동생의 믿을 구석이면서 남동생의 또 다른 부모였다.


그리고 여동생이 결혼을 했다. 나는 말이 잘 통하는 처형이 되어야 했다.

그리고 여동생이 아이를 낳았다. 나는 언제나 달려가 도울 수 있는 이모가 되어야 했다.


동생의 SOS가 온 집안을 울릴 때 내가 '적절히' 행동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조카를 돌볼 사람이 없을 때 나조차도 거절을 하면 어떻게 될까. 

'잘 되어야 한다'의 의미에는 모든 것을 희생할 수 있는 이모가 되어야 한다는 것도 포함될까

부모님이 나에게 기대하는 '잘 된 장녀'의 모습은 어색한 장서 관계에서 중간 역할을 잘 하는 것일까. 

조카 선물을 사기 위해 닥치는 대로 일을 하고, 잠을 못 자고 놀아주는 건 우리 부모님의 새로운 트로피가 되는 걸까. 

조카가 태어난 건 나에게 또다른 굴레가 된 것일까.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은, 조카가 태어난 지 30개월이 다 된 지금도 오리무중이다. 


 

그리고 어느 날 새벽 2시 43분, 여동생에게서 전화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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