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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닙 Jun 07. 2021

꽃을 꽂다

화훼장식 기능사

나는 작년에 화훼장식 기능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이 자격증은 나의 직무인 영상디자인과 전혀 다른 분야임에도 내가 생에 처음 취득한 국가 자격증이다. 



엄마는 내가 어렸을 적부터 꽃을 좋아, 아니 사랑하셨다. 뿐만 아니라 늘 소녀처럼 하늘을 봐도 감탄, 산, 바다를 보아도 감탄하셨다. 날씨가 맑아도 궂어도 즐거워하셨다. 상대적으로 무뚝뚝한 성격인 나는 세상을 보는 엄마의 눈, 소녀 같은 감탄사가 매번 신기했다. 


“엄마는 평생 봐왔어도 자연이 그렇게 신기하고 좋아?” 

“그럼! 얼마나 아름답고 놀라워.” 


몇 년 전, 집으로 올라오는 언덕길 가장 아래에 작은 꽃집이 새로 문을 열었다. 

무심결에 스쳐 지나갈 수 있었던 아직 오픈도 안 한 꽃집을 가장 먼저 반긴 사람은 당연히 우리 엄마였다. 

꽃집의 규모가 아주 작아서 문을 여는 날짜의 대부분이 클래스를 위해 운영될 예정인 가게였다.

지인이 오픈하는 꽃집인 양 반가워하는 엄마를 위해 인스타그램에 원데이 클래스 상담 예약을 문의했다. 

문을 열자마자 엄마와 함께 찾은 꽃집에서 우리는 꽃다발을 만들었다. 동네의 작은 꽃집 사장님은 20대 후반의 젊은 여성분이었고 모녀의 원데이 클래스를 위해 처음 보는 수입 장미와 얼굴이 크고 화려한 꽃들을 준비해주셨다. 꽃을 예뻐하는 방법이 마냥 어색해서 정작 꽃을 즐기기보다는 꽃을 잡는 스킬이나 묶는 방법에 열중해있던 나와는 달리, 엄마는 한순간마다 꽃의 향기를 즐기고 꽃잎 한 장 마다의 특별한 무늬에 감탄하며 연신 휴대폰 카메라로 사진을 찍기에 바쁘셨다. 한 시간이 조금 넘는 짧은 시간 동안 원데이 클래스가 진행되었는데, 엄마의 얼굴에는 잠시도 웃음이 떠나질 않았다. 


당시 수업 중이던 엄마의 모습


당시에 나는 영상디자인을 그만두어도 먹고살 수 있는 다양한 취미 생활을 탐닉하던 시기였기 때문에, 만약 내가 더 나이가 들어 직업을 바꾸게 된다면 꽃집을 열어서 엄마와 함께 운영해야겠다고 무모하게 마음먹었다. 


그 이후 나는 꽃집에서 정규 클래스를 등록해서 다양한 꽃을 만지고 경험하며 선물했다. 생각보다 비싼 비용 때문에, 직장인을 위한 국비지원 학원에 등록해 1년 정도 매 주말마다 학원에 출석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직장에 다니고 토요일, 일요일에 국비지원 학원을 등록해 다닌다는 것은 생각보다 매우 힘든 일이었지만 의외로 삶의 활력이기도 했다. 남는 꽃을 묶어다 다음날 회사에 출근해 동기들에게 선물하기도 하고, 부모님 회사 동료분의 생일이 있는 날 수업에서 만든 꽃바구니를 선물하는 등 꽃을 배우는 기간 동안 학생인 나뿐만 아니라, 내 주변 사람들까지 꽃과 함께하는 나날을 보낼 수 있었다. 


꽃을 만지지 않는 주말은 서운해서 회사 동기 언니를 데리고 고속터미널 꽃시장에 다녀오기도 했다. 

만 원짜리 몇 장을 뽑아가서 2만 원어치 사야지 결심해서 도착하면 어느새 지갑이 텅 비어있는 나날들이 계속되었다. 갑작스럽게 시작된 ‘꽃 길’을 따라 걷다 보니, 웬만큼 준전문가 수준의 장비들도 갖추게 되었는데 이왕 장비까지 갖춘 김에 자격증까지 도전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사실 자격증에 필요한 장비와 취미로 구비했던 장비와는 차이가 있어서 또다시 지출이 있었지만 이미 마음먹은 자격증 취득의 과정에 비용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자격증 취득반에 등록한 뒤 6개월여의 과정을 마쳤다. 자격증반에서 배우는 꽃꽂이 화형들은 실용적인 쪽과는 거리가 멀어서 그간 오래 배워온 취미 꽃꽂이와는 전혀 무관한 수준이었다. 

시장에서 꽃을 많이 사다가 뜻밖의 파트너인 철사, 니퍼와 친해지는 실습의 시간이 지나갔다. 

철사에 찔려 손에는 피가 나고 항상 물이 묻은 손 때문에 습진에 시달렸다. 

나는 특강반에 등록하지 않고 혼자 집에서 연습하곤 했는데, 공간도 마땅치 않아서 부엌 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수업 시간에 필기한 노트를 내려다보며 공부했다. 매주 꽃으로 실습을 한 뒤 뒷정리에 쓰이는 물수건이 마를 날이 없었다. 

시험 접수 또한 쉽지 않았다. 무난한 필기시험 접수, 응시와는 다르게 실기 시험 접수는 그야말로 유명 가수 피켓팅을 방불케 했다. 처음에는 제주도로 원정 시험을 갈 운명이어서 제주도 비행기표와 제주 꽃시장을 일주일 검색했었다. 일주일간 매일 밤낮없이 들락거린 끝에 취소 여석을 잡아 지방으로 이동, 마침내 서울 지역으로 실기장 접수를 마칠 수 있었다. 실기장에 도착하기까지 많은 종류의 꽃, 갖춘 준비물과 이동용 카트까지 두 손과 어깨가 크게 고생했다. 실기장에 도착한 이후로는 시험장의 노련해 보이는 응시자들을 엿보느라 눈과 귀가 바빴다. 시간이 어찌나 빠르게 지나가던지 뒷정리를 마치니 정확히 시험 종료 시간이었다. 시험을 치르고 남은 많은 꽃가지들을 정리해 작은 다발로 만들어서 다음 날 출근해서 동기들에게 나눠주었다.


사실 꽃집을 운영하기 위해서 자격증을 취득할 필요는 없다. 꼭 자격증 없이도 꽃집 개업이 가능하기 때문인데 실기 합격 소식을 마주한 나는 염원하던 꽃집 개업이라도 한 사람처럼 뛸 듯이 기뻤다. 

꽃과 친해질 수 있던 시간들이 돌이켜보면 나에게 고3 때 수능 공부를 하던 시절보다 더 열심히 살았던 때 같다. 피곤함과 귀찮음을 이겨내고 매 주말과 평일 퇴근 후 시간마다 가위와 가시 제거기를 잡고 물통을 나르던 시간, 그리고 열정이 그립다. 


이직한 직장의 이력서에 당당히 화훼장식 기능사 자격증 취득일과 취득 번호를 적었다. 

면접날, 직무와 전혀 관련 없는 이 자격증에 대해 질문 공세가 쏟아졌다. 

나는 정말 마음에 드는 이력이라고 소개했다. 직장생활을 하며 다른 활력을 찾고 에너지를 분산하여 성취를 얻었으며, 삶에 유용한 기술도 배웠다고 소개했다. 디자인 분야와 아주 무관한 자격증이 아니며 미적 가치를 추구하고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작업이자 사람에게 행복을 전하는 분야라는 점에서 연관되었고 또한 깨달은 바가 많다고 답했다. 면접관들의 반응이 좋았다. 그것도 매우!


엄마가 사랑하기 때문에 손에 잡은 꽃줄기는 나의 어여쁜 무기가 되었다. 


새로운 취미를 탐닉할 때가 되었다. 

코로나 시국으로 활동이 제약된 와중 이직 시기와 맞물려 회사-집만 오가는 시간을 보낸 지 오래다. 다시 취미 생활을 통해 삶의 활력을 불어넣고 타인과 어울리지 않아도 혼자서 충분히 즐거운 시간을 쌓아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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