틱틱붐, 이 시대의 사랑, i에게, 나의 문어 선생님, 하데스타운 등
영화 - 틱, 틱... 붐!, I Feel Pretty, 싱크홀
도서 - 팍스 가장 자유로운 결혼, 이 시대의 사랑, i에게
다큐 - 나의 문어 선생님
뮤지컬 - 하데스타운
[영화] 틱, 틱... 붐!
“잊고 있던 꿈까지 기억해내게 만드는 명작”
이 작품은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실화가 주는 힘은 그 어떤 스토리보다 강력하다. 아무에게도 인정받지 못했지만, 골방에서 자신만의 노래를 써 내려간 천재 작가. 자신의 대표작이 세상을 뒤흔드는 것을 지켜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비운의 작가. 마음껏 꿈꾸고, 마음껏 노래하고, 마음껏 아파하고, 있는 힘껏 도전했던 조나단 라슨의 청춘을 가지런히 그려낸 작품이다. 그의 삶을 훔쳐보는 착각이 들게 하는 앤드류 가필드의 명 연기가 눈과 가슴에 동시에 박혀, 여운이 더욱 진하게 남는다.
작품이 정석적이고 교훈적인 메세지를 담고 있는 경우, 뻔하고 지루하게 느껴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 메세지가 제대로 와 닿을 경우, 묵직한 직구처럼 가슴을 치고 울림으로 남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Action speak louder than words”라는 이 작품의 대사는, 새로운 도전을 이끄는 힘을 갖는다. 침대 위에 무기력하게 누워 있던 몸을 일으키는 영화다.
[영화] I Feel Pretty
“전형적인 프린세스 메이커 스토리. 그런데 내가 나를 공주로 바꾸는”
내 삶의 주인공은 나다. 그래서 나 자신이 바뀌면 삶이 변한다. 하지만 우리는 쉽게 그 사실을 잊곤 한다. 이 작품은 자존감 낮은 못난이가 마법같은 순간을 계기로 퀸카 얼짱이 되는 뻔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다만, 마법에 걸린 대상이 오로지 ‘나’ 한 명이라는 사실이 독특한 설정이다. 다른 사람들이 보는 내 모습은 변하지 않았는데, 내면에서 자존감과 자신감이 분출하는 것만으로 사람이 얼마나 매력적으로 바뀔 수 있는지. 그의 인생이 얼마나 당당해질 수 있는지가 유쾌하게 그려진다. 가뿐하지만, 결코 우습게 느껴지지 않는 영화.
[영화] 싱크홀
“혹시나 싶어서 봤다가 역시나 하게되는 K-재난 영화”
영화 시작 5분만에 앞으로의 전개가 눈 앞에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결말까지 보고 나면, 내 예상이 맞았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뻔한 한국 영화지만, 가끔은 이런 뻔한 한국 영화가 끌릴 때가 있다. 울라고 만들어놓은 장면에서 눈물을 흘리고, 웃으라고 만들어놓은 장면에서 웃음을 터뜨릴 때 생기는 모종의 안정감이 있다. 재난 영화라고는 하지만, 무섭진 않다. 긴장감도 없고, 진지한 장면도 몇 없다. 금요일 저녁, 퇴근 후 머리를 비우고 넷플릭스에서 볼 만한 가벼운 영화를 찾는 사람들을 위해 태어난 영화가 아닐까 싶다.
[도서] 팍스, 가장 자유로운 결혼 (이승연)
“너와 내가 ‘우리’가 되지 않아도 함께 할 수 있는 방법”
사랑은 삶에 어떤 모양으로 담기는 것일까. 사랑은 삶과 어떤 영향을 주고 받는 관계인 것일까. 대입, 취업, 자가 마련에 이어 한국인 4대 인생 과제 중 하나인 “결혼.” 그간 사랑의 종착지가 결혼이라 생각해왔지만, 이 책은 사랑의 출발지로서 ‘팍스’ 제도에 대해 설명한다. 동거보다 깊이있고, 결혼보다 편리한. 연애보다 진중하고, 결혼보다 자유로운. 한국에서는 찾아보기 형태의 사랑 계약 관계에 대한 경험담은, 마음을 가뿐하면서도 복잡미묘하게 만든다. 온전한 나로서 존재하며, 동시에 누군가와 가족이 될 수 있는 방법이라니. 내가 알고 있던 세상을 한 뼘 더 넓혀주는 책이다.
[도서] 이 시대의 사랑 (최승자)
“시집에도 공포물이 존재합니다”
한국시 수업을 들을 때, 교수님이 최승자 시인에 대해 다음과 같은 말을 하신 적이 있다. 삶의 우울함에 아무리 짓눌릴 때도, 최승자의 시를 읽으면 ‘어.. 이건 좀..나는 이 정도는 아닌데’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고. 모두가 최승자가 되고 싶어 했지만, 아무도 그가 되지 못했다고.
내가 처음으로 접한 최승자 시인의 작품은 ‘그리하여 어느 날 사랑이여’라는 시였다. ‘내 팔과 다리를 꺾어 네 꽃병에 꽂아다오’라는 구절이 팔과 다리가 꽃병에 꽂힌 모양새로 써있는 것을 본 이후, 특유의 섬뜻함에 쉽사리 시집을 읽을 생각을 하지 못했지만, 어쨌든 용기내어 읽어내려갔다. 손으로 눈을 가리며 공포영화를 보는 심경으로 한 장, 한 장 페이지를 넘겼다. 의외로 읽고 나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인생의 가장 과격하고 더러운 지면을 목격하고 나니, 눌러두었던 고민들이 한층 가벼워진 기분이다.
[도서] i에게 (김소연)
“곰을 무서워하면서도 곰인형을 안고 좋아했듯이”
한 번 읽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한 번도 원한 적 없는 이 세계에서 백 년은 살아야겠지 미치지 않고서 그럴 자신이 있겠니’라고 질문하는 목소리, ‘우리는 서로의 뒤쪽에 있으려 한다 등을 보이고 싶지 않아서 그러는 것은 아니고 다만 표정은 숨기며 곁에는 있고 싶어서’라고 읊조리는 음성을 듣고 있자면, 한 번에 쉽게 대답하거나 호응하지는 못하게 된다. 그래서 이 책은 여러 번 읽어야 할 소중한 시집으로 남는다. 글에서 세월이 묻어나고 세월에서 깊이가 울려퍼진다. 가볍게 읽기 좋은 귀여운 외형을 하고, 숨을 턱턱 막히게 하는 글을 담고 있다. 얇은 겉보기와 달리 무거운 책이다.
[다큐] 나의 문어 선생님
“가장 강력한 우정, 서로의 삶을 묵묵히 지켜보는 것”
문어. 문어는 나에게 어떤 의미였나. 수족관에서 볼 수 있는 생명체 중 가장 ‘덜 신기한’ 생물. 어쩌면 그저 맛있는 요리. 어쩌면 마트에서 세일한다는 소식을 들려와도 그닥 관심이 생기지 않는 음식 재료였을 뿐이다. 하지만 문어의 지능이 고양이 강아지와 비슷한 수준이라는 말을 듣게 된 이상, 이 작품을 그저 인간의 일방적인 관찰일지라고 생각할 수 없게 되었다. 그 정도의 지능을 가진 동물이라면, 내내 자신의 삶을 지켜본 존재를 모를 리 없다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다.
우선, 1년에 가까운 시간동안 문어를 기록한 감독의 끈기가 인상적이었다. 문어를 카메라에 담는 과정에서 유의미한 발견을 할 수 있을지,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할지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어떻게 매일같이 불확실함 속으로, 바다 속으로 걸어들어가는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 그 꾸준함을 닮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짧은 문어의 삶 속에서도 어쩐지 계속해서 생각나는 순간이 많았다. 딱딱한 바닷가재를 ‘와앙’ 집어삼켜서 물렁한 몸 속으로 끌어들이던 사냥 장면, 그리고 자신의 생명이 꺼져가는 순간까지 알을 품다가 결국 바다 생물들의 먹이가 되는 마지막 모습까지. 문어 선생님이라는 호칭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바다속의 비밀스러운 생태계를 사실적으로 구경할 수 있는 것도 이 작품의 굉장한 매력 포인트다. 굳이 따지자면 ‘인스타스러운’ 바다가 아닌, 사실적인 바다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게, 그 적나라한 바다 속에 아름다운 광경들이 속속들이 숨겨져 있는 게 좋았다. 늦은 밤, 고된 일과를 마치고 ‘나의 문어 선생님’을 보고 있자면, ASMR을 듣는 것처럼 마음이 편안해지면서, 자연스레 스노쿨링을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말랑말랑한 겉모습 안에 누구보다 단단한 내면을 지닌 문어의 강인함이 편안하게 다가왔다.
작품에서 감독은 문어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주변 사물에 몸을 숨기기 위해 창의성을 발휘하는 존재’라고. 일평생을 주변 사물에서 눈에 띄지 않기 위해 창의성을 발휘하는 문어처럼, 어쩌면 나도 내 창의성을 온 몸을 숨기는 데에 사용해왔던 것은 아닐까. 세상으로 부터 숨기 위해, 나 자신을 숨기기 위해 나의 모든 노력을 투자해온 것은 아닐까.
인간과 강아지도 아니고, 인간과 원숭이도 아니고, 인간과 물개도 아니고, 인간과 문어라니. 상상할 수 없던 조합인 만큼, 신선하고 흡입력있는 다큐멘터리였다. 1년에 가까운 시간동안 자신을 찾아온 인간에 대해, 문어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을까. 그를 기다렸을까? 자신의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곁에 있던 인간에 대해 어떤 기억을 가지고 세상을 떠났을까.
서로의 삶을 묵묵히 지켜보는 것으로 우정을 다진 사람과 문어의 이야기. 나의 문어 선생님이었다.
[뮤지컬] 하데스타운
“결말을 알면서도 노래하는 것"
결말을 알면서도 노래하는 것. 세상에 그것만큼 어려운 일이 있을까. 익히 들어 알고 있는 하데스의 지하 세계 이야기였지만, 뮤지컬로 보는 것은 또 다른 새로움이었다. 백지같은 목소리를 가지고 있는 박강현 배우와 뮤지컬 신흥강자 최재림 배우의 조합 덕분이었던 듯하다. 무대가 고정되어있지만, 연주자가 무대 위에 올라있던 만큼 끊임없이 생생하고 역동적인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적절한 조명과 다채로운 넘버들 덕분에 꿈, 희망, 사랑,, 이런 뻔하고 모호한 이야기가 오랜만에 마음에 와 닿았다. Wait for me, I’m coming 이라는 대사도 계속해서 귀에 맴돈다. 간만에 재미있게 봤던 뮤지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