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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옹 May 08. 2023

선택의 기로

1년 동안 한 가지 수업을 들을 것인가, 다양한 수업을 들을 것인가.


 약 3개월 전, 마트에서 장을 보다가 문화센터 회원 모집 중이라는 포스터를 봤다. 내가 생각하는 문화센터의 이미지는 집에서 하기 힘든 촉감놀이를 해 주는 것이다. 아무래도 집에서 촉감놀이를 해 주려면 준비 과정, 치우는 과정이 힘들겠지. 나는 수유하고 집안일하는 것만으로도 바쁜데 촉감놀이까지 할 수 있을까 잘 모르겠다. 마트 문화센터에 일정 비용을 주고 아기를 놀게 하는 게 낫다.


 마트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우리 집 아기가 들을 수 있는 수업이 뭐가 있는지 살펴봤다. 그때 기준으로는 베이비 마사지 수업과 4개월부터 들을 수 있는 놀이 수업이 있었다. 그 둘 중에 뭐 들을지 고민했다. 딱 한 가지만 들을 수 있다면 놀이 수업이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업 첫날, 이왕 가는 거 일찍 가는 게 좋으니 여유 있게 출발했다. 먼저 온 엄마들과 이런저런 육아 이야기를 하다 보니 수업 장소에 들어갈 시간이 되었다. 자리에 앉아 주위를 둘러본다. 바닥에 깔린 매트, 사방에 있는 거울, 처음 만나는 선생님. 낯선 환경에, 나는 조용히 아기의 손을 잡고 음악에 따라 리듬을 타고만 있었다.


 그러다가 눈에 들어온 앞의 현수막. 이 수업을 1년 동안 들으면 아기 사진이 있는 수료증과 인형을 준다고 적혀 있었다. 솔깃했다. 1년 다 듣고 수료증을 받으면 아기도 나도 엄청 뿌듯할 것 같았다. (살짝 속물 같은 내 마음을 드러내도 괜찮으려나?) 나는 수료”증” 같은 걸 좋아하기도 해서 더 관심이 갔다.


 그렇게 아기와 나는 약 3개월 가까이 결석 한번 안 하고, 지각도 안 하고 성실하게 수업을 들었다. 피곤한 아기가 칭얼대서 수업에 제대로 참여하지 못할 때도 있었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아기에게 새로운 것을 경험하게 해 줬다는 것에 만족했다.


 이제 새로운 학기가 시작되는 시점이다. 나는 당연히 다음학기도 지금과 같은 수업을 신청하려고 홈페이지에 들어갔다. 어라? 놀이주제와 활동내용을 보니 지금 내가 듣고 있는 것과 똑같았다. 하나도 다를 게 없었다. 살짝 망설였다. 환불정책이 잘 되어 있으니, 마음이 변하면 나중에 환불해도 괜찮겠지 하는 마음에 일단 신청을 했다.


 “다음 학기에도 이 수업 신청했어요. 6개월부터 들을 수 있는 수업을 신청했는데 놀이 주제가 지금 수업이랑 똑같더라고요. 그럼 주제만 같고 내용은 달라지는 건가요?”


 다음 학기 신청 후, 문화센터 수업이 끝나고 선생님에게 가서 물어봤다. 수업 내용이 다르다는 답변을 기대하고 질문했건만 똑같다고 한다. 아기가 느끼는 게 다를 거라고 덧붙이셨다. 수료증을 받는 것도 좋지만 똑같은 내용을 4학기 동안 듣는다면 좀 곤란하다. 다른 수업을 들어야 하나 계속 이 수업을 들어야 하나 고민이 됐다.


 그로부터 한 주 뒤 문화센터 수업에 갔다. 수업이 끝나고 선생님이 다음학기 유인물을 나눠주신다. 어라? 놀이주제가 바뀌었다. 선생님이 여론을 신경 쓰며 조금 수정한 것인가? 그러면서 아기들이 이제 적응하는 단계인데 한 가지 수업을 계속 듣게 하는 게 좋다고 적혀 있었다. 수업 계획표가 바뀌었으니 또 고민이 많이 된다. 맨 처음 계획대로 한 수업을 1년 동안 듣는 게 좋을까?


 적응하는 단계. 맞다. 우리 집 아기는 이 수업에 적응하고 있는 중이다. 매주 수업 전에 낱말 카드를 보여준다. 빈 종이가 나오면 “없다”라고 말하며 손바닥을 뒤집는다. 처음에는 내가 손을 뒤집는 것만 바라보던 아기가 이제는 스스로 손을 뒤집었다. 내적 비명을 질렀다. 꾸준히 수업에 참여한 게 드러나는 순간인가? 계속하게 되면 수업 내용을 더 잘 따라갈 수 있겠지.


 수업이 끝나고 나가는 길에 엄마들끼리 모여 다음 학기에는 어떻게 할지 이야기를 했다. 여론이 좋지 않다. 비슷한 월령에 듣는 다른 수업이 더 좋다고 한다. 엄마들 이야기를 들어보니 지금 수업을 이어서 들을 엄마는 아마 없을 것 같다. 줏대가 없고 우유부단한 나는 또 고민이 된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아기를 유아차(유모차의 다른 표현)에 태우고 산책하는 동안 곰곰이 생각해 본다. 머리가 아프다. 지금 듣는 수업을 그대로 들을지, 다른 수업을 들을지, 아니면 두 개를 들을지 고민이다. 그러다가 문득 ‘나는 이렇게 공부를 열심히 했나’ 싶어서 피식 웃음이 나온다.


 수업이 끝날 때쯤 받은 유인물을 한번 더 꺼내본다. “없다” 할 때 스스로 손을 뒤집은 아기를 생각한다. 수업 놀이 주제도 바뀌었겠다, 지금 수업을 계속 듣기로 결심했다. 아기에게 더 다양한 걸 느끼게 해 주고 싶으면 원데이 클래스를 신청해야겠다.


 성격이 많이 우유부단해서, 이렇게 결정해 놓고도 다음 학기 시작 전까지 계속 고민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일단 이렇게 결정을 내리고 나니 마음이 편하다. 듣던 수업 계속 들으면서 부족하다 싶은 부분은 원데이 클래스로 채우는 것. 이게 내가 생각한 최선의 방법이다.


 문화센터 정규 수업은 한 번에 하나만 듣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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