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은송 Nov 02. 2019

부다페스트로 향하는 심야버스에서

혼자 여행을 떠나온 이유


"이제 저 앞은 몇 갈래의 길로 갈라져 있어.

어디로 가야 지름길이고, 어디로 가야 탄탄대로인지는 알려줄 수는 없다. 네 인생이니까.

그러나 이제는 네가 가고 싶은 어디든 갈 수 있어.

어디로 닿게 되던, 일단 가 봐. 날씨도 좋잖아.

네가 가는 길에 별이 쫙 깔렸어.”


생텍쥐페리, 『야간비행』 중




혼자 여행을 떠나온 이유


스무 살 때부터 유럽에서 한 달 살기를 해보고 싶다는 막연한 꿈이 있었다. 어찌어찌 수중에 그만한 돈은 모았는데, 이 돈만 있으면 한국에서 가늘고 길게 놀고먹을 수 있다는 생각에, 내가 지금 이런 사치를 부릴 때가 아니라는 노파심에 차일피일 여행을 미루기만 했었다. 그러던 중 세월에 떠밀려 나는 진짜로 대학 졸업반이 되었고, 지금이 아니면 내 평생에 이런 여유는 다시없을 거라는 본능적인 느낌이 들었다.


그 당시 남자 친구는 혼자 여행을 간다는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대체 내가 있는데, 그리고 나도 같이 갈 수 있는데, 왜 혼자 가겠다는 거야? 난 너 못 믿어.” 이외에도 여러 문제들이 많았지만, 구태여 언급해 글의 분위기를 흐리고 싶지는 않다.


당시 나로서는 어떤 마음이었냐면, 6년이나 계속 휴학 없이 공부해왔기에 상당히 지치기도 했고, 그냥 혼자가 되어보고 싶었다. 생김새도 다르고, 쓰는 말도 다른 타지에서 완벽한 타인이 되어 이방인으로서 나의 존재를 느껴보고 싶었던 것이다. 아무튼 나도 내 마음을 말로 옮기기에 어려웠고, 그도 이런 나를 이해하기에는 어려웠는지 우리는 이를 계기로 서서히 멀어지며 결국 헤어졌다.




여행을 통해 가장 크게 변화한 것이 있다면


남이 찍어주는 사진 속의 내가 더 이상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학창 시절을 비주류로 보냈던 나는 사실 누구보다도 나에 대해 골똘히 고민하고, 내 마음의 소리를 듣기 위해 노력했다고 단언할 수 있다. 그렇지만 왠지 혼자인 게 어색했고, 그들 속에 섞여있을 땐 어딘가 삐걱대는 느낌이었다. 혼자여야만 하는 때도 있었고, 혼자이고 싶은 때도 있었다. 딱히 낯을 가리는 성격은 아니지만, 곁을 내어줄 만큼 믿고 싶은 사람은 많지 않았다.


여행을 통해서 사람들 속에서도 혼자가 어색하지 않다는 느낌을 오랜만에 받았다. 치안이 좋지 않은 도시나 늦게까지 외출을 해야 할 때는 동행을 구했지만, 낮이나 안전하다고 느껴지는 곳에서는 혼자 다녔다. 혼자 걷고, 혼자 음악을 듣고, 혼자 그림을 보고, 혼자 선베드에 누워서 시간을 보내고, 혼자 식당에 가고, 혼자 밥을 먹고, 혼자 사진을 찍고, 혼자 책을 읽고, 혼자 생각을 했다.


그간 나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나를 독하다고 평가했지만, 그건 내가 나를 위해 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최선들이 모여 만들어낸 결과일 뿐이었다. 그렇지만 내게는 늘 무엇으로도 메울 수 없는 마음의 간극이 존재했다. 그래서 내게 연애는 결핍된 온기를, 관심을, 사랑을 채우기 위한 몸부림이나 다름없었다. 물론 연애를 하고 있던 당시에는 그들을 진심으로 사랑했던 것도 사실이고, 최선을 다해 그에게 충실한 연인이 되기 위해 노력했던 것도 부정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나의 남자 친구들은 밝고 귀여운 나의 모습을 좋아했지만, 그만큼의 그림자가 있다는 사실은 받아들이지 못했다. 내가 꿈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높이 평가했지만, 그만큼 내가 잠을 잘 시간을 쪼개어 달리고 있다는 것은 미처 헤아리지 못했다. 나의 감성이 특별하고 아름답다고 했지만, 그만큼의 우울과 성찰의 시간이 빚어낸 것이라는 사실은 인정하지 못했다. 그들에게 나는 늘 웃고 있는 사진 속 모습 그대로의 예쁘고 귀엽고 다정한 여자 친구여야만 했던 것이다.




혼자서도 잘 지내고 싶었다


그리고 결국 혼자여야만 하는 여행길 위에서 나는 큰 결심 없이도 혼자 잘 지낸다. 비타민 결핍 방지를 위해 마트에서 과일과 샐러드도 사다 먹고, 피로도를 예측해 하루의 스케줄을 짜고, 조용히 있고 싶을 땐 과감히 일정을 뺀다. 낯선 내 모습을 새롭게 발견할 수 있다는 게 놀라운 나날이었다.


사랑의 시작은 관심이라고 한다. 늘 의사가 진찰을 하듯 돋보기를 들이대며 나를 해체하고 분석하기 바빴던 시간들이 길었다. 이제 꽁냥꽁냥 나와 대화를 하고, 내가 원하는 걸 들어주고, 더 행복해질 수 있도록 나를 위해 최선을 다해주고 싶다.


오늘도 나는 방랑벽에 몸을 싣고 부다페스트로 가는 심야버스에서 글을 적고 있는 참이다. 국경 하나 넘는 일도 이리 쉬운데, 우리 사이 마음을 갈라놓는 선은 어느 틈에 벽이 되어버린 건지.





*2019년 8월 부다페스트 여행 중 작성한 글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빨강 아니면 노랑, 그 사이의 주황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