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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은송 Oct 06. 2019

소금같은 말들이 상처에 배기면

잘 익은 상처에선 꽃향기가 난다



오래 피가 멎지 않던

상처일수록 꽃향기가 괸다

오래된 누이의 화상을 보니 알겠다

향기가 배어나는 사람의 가슴속엔

커다란 상처 하나 있다는 것


잘 익은 상처에선

꽃향기가 난다


복효근,「상처에 대하여」 중에서





인심 짠 말이 소금처럼 상처에 배기면


가끔 사람에 치일 때면 아무도 찾아오지 못할 첩첩산중 깊은 산골짜기에 자그마한 나무집 하나 지어놓고 숨어 살고 싶다. 봄이면 파릇파릇한 돌나물과 봄동을 따다가 가볍게 양념을 하여 무쳐먹고, 여름이면 계곡물에 발 담가놓고 뒷밭에 심어두었던 토마토며 오이며 고추며 가지며 따다가 상큼하게 비벼먹고, 가을이면 산 곳곳에 널린 밤송이 주워다 쪄먹고, 겨울이면 고구마랑 감자랑 아궁이에 구워 먹으며 계절에 몸과 마음을 맡기고 세월과 하나 되어 살고 싶다.


제 마음에 지워지지 않을 상처 남기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냐마는 세상 사는 일이 다 그런 거라며 너는 너무도 쉽게 따가운 상처에 염장질을 한다. 그냥 그런 일에는 신경을 쓰지를 말라며 인심 짠 말이 소금처럼 상처에 배기면 너덜너덜해진 내 마음은 한참을 혼자 아파서 이리저리 뒤틀리다가 이내 잠잠해진다. 더 이상 감정이 흐르지 않을 정도로 신경이 죽은걸 무뎌졌다고 해도 되는 걸까. 잔뜩 소금에 절여져 물기 쪽 빠진 마음이 볼품없어 보일 때가 있다.




상처가 꽃이 될 수 있을까


복효근 시인은 상처에 대한 시에서 오래 피를 토해낼 만큼 아팠던 상처에는 피 대신 꽃향기가 고인다고 한다. 잘 농익어 조금이라도 건드리면 시뻘건 피고름이 좍좍 쏟아져 나올 가슴에서 꽃향기가 날 거라고 말한다. 위로인가, 농담인가. 그는 적어도 아파본 적 있는 사람이다. 상처에 속이 문드러져 가는 이들을 보고 분명 그 자신이 대신 가슴으로 울어주었을 것이다. 너무도 여린 탓에 상처가 층층이 쌓인 마음은 여물 기색 하나 보이지 않지만, 그 와중에도 누군가의 아픔은 자신의 것보다 더 거대해 보여 숙연해졌을 것이다.


자신의 아픈 마음을 부여잡고도 누군가를 위로하는 따뜻한 사람들이 있다. 울음 대신 피가 흐르는 가슴을 맞대고 아픔으로 아픔을 위로하는 사람 앞에서는 울컥 뜨거운 눈물이 치밀어 오른다. 내가 아픈 게 우선이었던 나에 대한 죄책감, 누군가의 고통에 똑같이 소금을 뿌리기에 급급했던 냉혹함, 쭈글쭈글해진 마음에 모든 책임을 돌리며 세상과 사람에 퍼붓던 소리 없는 비명과 저주.


상처가 꽃이 될 수 있을까.

내 마음엔 얼마큼의 꽃이 피었을까.

그 꽃은 무슨 색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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