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지와 소독약
아침 일곱 시
도시는 아직 졸음에 잠겨 있고, 사람들은 슬슬 잠에서 깨어날 시간
누군가는 하루를 시작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하루 끝에 서 있다
아침 일곱 시의 햇살
어찌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어떻게 할 도리가 없어 밤 새 운 적 있다. 걱정과 불안이 한숨이 되어 번져가던 밤, 창에 걸린 블라인드 틈새를 비집고 들어오는 햇살에 황량한 방 풍경이 드러나면 유난히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은 낯설어 보였다.
아침 일곱 시는 그런 시간이다. 무자비한 태양은 아직 빛을 마주 볼 준비가 되지 않은 나에게 새벽의 잔해를 쏟아낸다. 네가 간밤에 한 일들이 바로 여기 있다고 취조한다. 잠든 적 없던 내게 이제는 깨어날 시간이라고 등 떠민다. 수면부족으로 말라가는 눈이 따갑도록 시리다.
낮밤이 바뀐 지 오래되어버린 나의 하루는 뒤틀려있다. 나에 대한 죄책감. 그게 아니라면 나를 향한 자책감. 그것은 밤을 꼬박 새고 난 뒤 동이 터오는 하늘을 바라볼 때 느끼는 것이었다가, 사람들을 만나고 집에 돌아와 귓전에 남은 소음의 잔향들을 떨쳐내려 애쓸 때 느끼는 것이었다가, 비 오는 날 우산을 함께 쓰고 걸어갈 때 맞닿는 발걸음을 따라 튀어 오르는 빗물이 천천히 바짓단을 적실 때 느끼는 것으로 서서히 변해갔다. 한 마디로는 도무지 정의할 수 없는 감정들이 나를 뒤흔든다.
먼지와 소독약
아침 햇살 아래에서는 유난히 먼지가 잘 보인다. 늘 이곳에 있었다는 것은 잘 알고 있지만, 왠지 그 존재를 두 눈으로 확인하고 나니 갑자기 숨을 쉬기가 편하지 않다. 햇빛을 받아 반짝이며 부유하는 먼지는 마치 소독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연기처럼 깔린 어둠의 장막을 걷어내고, 진실의 빛을 드리우는 아침 햇살에는 소독약이 스며들어 있다. 이내 어딘가로 날아가 버리는 먼지들은 아침마다 죽어서 새로 태어나는 걸지도 모른다.
아침 햇살은 따갑도록 부끄럽다.
아침 햇살은 아찔하게 일렁인다.
아침 햇살은 눈 밑에 드리워진 그림자 같다.
아침 햇살은 메마른 입술 사이로 새어 나오는 갈라진 목소리 같다.
아침 햇살은 공복에 하는 토 같다.
아침 햇살에서는 울렁거리는 락스 냄새가 난다.
햇살은 더욱 깊이 들어와 벽에 블라인드 무늬를 그대로 옮겨 새기고 있는 참이다.
블라인드 한 줄만큼의 햇살을 집어 들어 내 팔에 가만히 대어 본다.
저녁 일곱 시의 햇살
근처 공사 현장 소리가 창문 너머로 들려온다. 어디서 날아온 건지 새들은 지저귀고 학교 갈 준비를 하는 아이들은 뭐가 그리 좋은지 청량하게 목소리를 높여 웃어대는, 어둠의 기색이 완전히 걷힌 아침. 왜 아침 일곱 시의 햇살은 낮밤이 바뀐 내게 저녁 일곱 시의 햇살이 될 수 없는 건지 도무지 모를 노릇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