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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은진 Sep 20. 2019

쮸와 나

일하는 엄마와 죄책감

아이를 만나고 2개월이 지나자 문제가 생겼다.

임신 중 배가 일찍, 자주 뭉쳐서 산후 휴가를 출산 1개월 전부터 3개월을 신청했었는데, 복직을 하려니 어린이집은 생후 3개월 이후라야 보낼 수 있는 것이었다.


다행히, 회사에서는 아이를 맡길 수 있을 때까지 재택을 허락해 주었다.

아기도 아주 순해서 잘 울지 않았다. 기저귀가 푹 젖었어도, 배가 고파도 울음 끝이 짧은 아이였다.


회사의 배려로 여유를 가지고  '아이돌보미 서비스'를 신청했고, 얼마 후 좋은 분과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아기를 맡아주실 분은 50대 정도의 말수는 적고 침착한 분위기여서 좋았다.

매일 걱정을 많이 했지만, 다행히 잘 울지도 않고, 퇴근하고 돌아오면 대부분 편안히 자고 있었다. 좋은 서비스였지만, 오래 지속하기는 다른 어려움이 있었다.


아이가 4개월이 지났을 때, 비로소 어린이집에 입소할 수 있게 되었다.

처음 만난 미혼의 담당 선생님은, 쮸 인생에 처음 큰 복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좋은 분이었다. 매일 아이를 안고 동네 산책을 해 주고, 일과 중에도 아이를 놓지 않는다고 했다(원장 선생님 전언). 나보다 더 내 아이를 좋아하는 것 같아서 부끄럽기도 했지만 한편으로 굉장히 편안하게 아이 생각을 떨치고 일을 할 수 있었다.


일하는 엄마에게 매일 아이를 다른 사람의 손에 맡기는 것은, 적지 않은 심적 고통이 따른다.

10개월 무렵이었던가... 다른 엄마들은 대부분 전업주부라 4시면 집으로 데리고 돌아갔고, 거기서 가장 어렸던 나의 아이는 매일 6시 넘어까지 엄마를 기다려야 했다.


하루는 당직 선생님과 혼자 남겨진 아이가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얼굴을 보자, 눈물이 왈칵 쏟아질 뻔했다. "엄마 오는 시간을 아는 것 같아요... 그때쯤 되면 창밖을 자주 보고 기다리고 있어요..."

나는 집에 데리고 돌아와 한참을 울었다. 죄책감이 차곡차곡 쌓이는 기분이었다.


'다른 사람들도 다 그렇게 키워' 하며 스스로 위안을 삼으려고 해도, 창밖으로 비친 아이의 표정은 그랬다.

돌도 지나지 않은 아이에게 일을 핑계로 혼자 그리움과 기다림을 감당하라고 한 것이 너무도 미안해서 울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그런 일이 있은 후, 나는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을 늘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어쩔 수 없었던 게 아니었다.  한 번에 인생 전체를 바꿀 수는 없지만, 마음만 먹으면 생각한 대로 상황을 정리할 수 있는 힘은 누구에게나 있다.


이듬해엔, 일을 하는 엄마임에도 불구하고, 늦어도 5시면 아이를 데리러 가는,

아직 귀가하지 못하는 친구들의 부러운 시선을 뒤로한 채 어린이집을 나서는 쮸와 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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