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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은진 Sep 20. 2019

쮸와 나

발차기

9년 전 겨울이다.

예정일은 아직 보름 이상 남았는데, 지난달부터 자꾸 배가 뭉쳤고, 불길한 예감이 계속 불쑥불쑥 올라왔다.

이따금씩 단단하게 뭉쳤던 배가, 어제부터 아파오자 나는 더 불안했다.

병원에서는, "아직 한참 남았어요. 아이도 3키로 이상 되어야 안전한데, 지금 2키로정도밖에 

안되요. 예정일까지 잘 버텨보세요." 라고 말하며, 수액주사를 맞고 가라고 했다.


수액주사를 맞는 동안은 괜찮았는데, 집에 오자마자 다시 아팠다.

자고있는 남편을 깨워 병원으로 갔다.

"참을 수 없게 힘들 정도로 아프면, 어쩔 수 없지요. 내일 아침에 유도분만 할께요."


병원복으로 갈아입고, 병실을 배정받아 누워있으니 한결 편안했다.

"새벽에 낳겠는데요? 지금 무통주사 맞으시겠어요?"

"예에?"


나는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다. 물론 아기가 하루 빨리 보고싶기는 했지만, 그래도 우리가 만나기엔 아기는 너무 작았다. 준비되지 않은 건 남편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현실을 파악하고 대응하기에 벅찼다. 그저 생각없이 시키는데로 '예, 예...' 하고 따르기만 했다.


새벽 두 시가 되자, 통증은 하늘높이 치솟았고, 그런 나에게 간호사는 "소리 내지 마세요. 그럼 아기가 더 고통스러워 해요." 라며 호통을 쳤다. 너무 아프니 나도 화가 날 지경이었다.


통증에 굴복하여 이제 수술을 해 달라고 말하려고 했을 때, 갑자기 뱃속의 아기가 발차기를 해 대는 것이었다.

너무나도 갑작스러운 일이라 나는 "아직! 잠깐만, 잠깐만!!!" 하고 소리질렀고, 아기가 몸을 뒤틀고 다리에 힘을 주었다가 쭉 펴는 것을 느낄 수 있었고, '쩍!' 하는 소리와 함께 끝이 났다.


예상치 못한 일들의 연속.

아기의 울음소리가 지금까지의 모든 상황들을 정리하는 느낌이 들었다.

새벽 3시.

내 가슴팍에 유난히 작았던,  만지기조차 두려운 얇은 유리인형 같았던 아기를 보았고, 그렇게 우린 만났다.

참 아름다운 만남처럼 보이겠지만, 이제와서 돌이켜보면, 당시 아기는 굉장히 짜증을 낸 것 같았다. 그 무지막지한 발차기는 아직도 생생하니 말이다. 잔뜩 찌푸린 얼굴도 그렇고...


밤 사이, 하얀 눈이 소복히 쌓였고 도시는 한 겨울 색으로 물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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