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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은진 Sep 22. 2019

쮸와 나

자폐를 알리는 특이한 징후들

아이가 생후 6개월쯤 되었을 때, 옹알이를 종알종알 잘하길래 조금 있으면 '엄마'하고 부르겠지 하는 기대에 부풀었었다. 엄마는 쉽게 할 수 있으니 아빠를 먼저 말해보게 하고 싶었다. 비디오로 촬영하면서 "아빠 해보자~", "아빠", "아빠" 하고 여러 번 독촉을 했더니, 한참 내 입을 쳐다보고는 자기 입술을 '아', '아' 모양을 만들어보고 자그마한 소리로 "아빠" 하는 것이었다. 나는 "와~ 잘했어요!" 하고 소리쳤다.


그리고는, 두 번 다시 내 입을 보고 따라 하려고 하지 않았다.

엄마와 아빠를 부르는 일도 없었다.


나에겐 언니가 다섯 명, 조카는 아홉 명이나 있었고, 중학생 때부터 언니들의 출산과 육아를 지켜봐 왔었다. 대개 빠른 아이들은 10개월 무렵부터 '엄마'를 부르기 시작해서 12개월쯤이면 지겹도록 '엄마'소리를 했는데, 아이는 그러지 않았다.

또한 이 시기에 손에 잡히는 것 모두 입으로 가져가는 탐색이나, 떼쓰기, 낯가림 같은 행동도 보이지 않았고, 걸음마도 늦었다. 주변의 또래처럼 보이는 다른 아이들은 엄마손을 잡고 뒤뚱뒤뚱 걷기 시작했지만, 아이는 마치 기어 다니는 것으로도 충분하기에 걷는 것을 배우기 싫어하는 아이처럼 보였다.


무엇보다, 아이를 불러도 고개를 돌리지(반응하지) 않는 것.

분명히 들었음(몸을 움찔하거나, 하던 일을 멈춤)에도 바라보지 않고, 반응하지 않는 것이 가장 두드러졌다.


끝으로 아이는 종종 허공을 보고 웃었다. 이럴 때는 살짝 무섭기까지 했다. 영화 '식스센스'처럼 아이도 다른 무언가가 보이는 것은 아닌가... 왜 아무것도 없는 벽을 보며 친근한 사람 바라보듯 하고 웃는 것인지...

하루는 남편과 싸우고 크게 소리 지르며 운 적이 있었다. 그때 남편이 아이를 안고 있었는데, 아이는 나를 보며 신난 듯 웃고 있었다. 절망적이었다. 


발견된 아이의 문제점들을 털어놓자 지인들은 각기 다른 경험담으로 나를 혼란에 빠트렸다. 검사를 받아보라, 늦되는 아이이니 기다려라, 조금 더 지켜보아라, 아니다 하루빨리 아이를 데리고 병원으로 가라... 의심은 충분히 하고 있었지만, 내심 기대하고 믿고 싶었다. '늦되는 아이가 머리가 좋더라...'


그저 조금 남다른 아이라고 믿고 싶었으나, 더 이상 지체하면 안 될 것 같은 행동을 보이면서, 우선은 인근의 치료실을 찾아보았다. 유아/청소년 언어치료, 놀이치료를 하는 곳이었다.

"불러도 대답이 없고, 쳐다보지도 않고요. 숨기까지 해요. 말도 아직 안 해요. 태어날 때 청력검사는 문제없었고, TV에 나오는 음악의 음을 따라 소리를 내기도 하는데, 말은 안 해요. 다른 사람들이랑 의사소통하려고 하지 않는 것 같아요..."

치료실에서는 아직 자폐를 판단하기엔 이른 나이라며 만 3세가 된 이후에나 다시 오라고 했다. 

후에 행동치료를 공부하면서 알게 된 것은 자폐는 생후 3개월부터 특징을 보이고 있고, 진단을 받으려면 소아정신과가 있는 병원으로 가야 한다. 또한 자폐는 치료 개입이 빠를수록 효과가 좋다는 것이다.


당시 나는 아이가 자폐를 판정받는 것에 알 수 없는 주저함이 있었다. '늦되는 아이'이기를 간절히 바랬던 것이다. 두 번째로 개인 언어치료사를 만났다. 우리(나와 남편)가 얼마나 아이와 소통하기 위한 놀이에 대해 무지했던가를 깨닫는 시간이었다. 남편은 계속 치료실을 함께 갔다. 꽤 적극적이었다.

치료사를 통해 아이보다 우리의 잘못을 깨닫고 반성하면서 변화했다. 남편은 거의 매일 30분 이상 놀아주었다. 집안의 웃음소리도 점점 늘어났고, 그만큼 희망도 품게 되었다.


이대로 자란다면 괜찮지 않을까...

하지만 우리 가족에겐 또 다른 산이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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