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공족으로 거듭나기
뭐든 한 번이 어렵다. 카공족 입문 이후 본격적으로 카페를 찾는다. 내게 맞는 카페를 찾아 헤매며 수없이 커피를 마신다. 그곳의 실내온도와 공기의 순환, 사람들의 밀도, 매장의 크기, 화장실의 위치, 옆 사람과의 거리, 소음의 정도를 고려하여 신대륙을 찾듯 나만의 카페를 개척한다.
3층으로 되어있는 커다란 매장의 1층 구석진 공간, 비상구 앞 놓인 4개의 테이블 중 하나에 앉는다. 천정을 올려 본다. 층고가 고스란히 느껴진다. 3층까지 뻥 뚫린 시야가 확보되는 상쾌함, 단순한 디자인의 조명과 잘 어우러진 계단, 그곳에 쏟아지는 채광이 좋은 자리다. 사람들의 드나듦이 없는 공간. 앞 테이블에 적당히 수런거리는 사람들이 앉는다면 완벽하다.
매일 말을 하고 글을 읽고 문장을 이해하고 문맥을 짚으며 살아왔는데, 요즘 새삼 단어를 알아가고 있다. 간신히 새로운 모름, 상관 쓰인다, 차차, 전부……. 기억할 만한 지나침, 마른기침의 음계 등. 단어를 조합해 만나는 것들을 낯설게 바라보고 그것들이 주는 느낌의 차이를 깊이 생각한다. 카페에서 오늘 내가 하는 것들이다. 카페에서 나는 현재의 나를 새로 규정하고 과거의 나를 만난다. 그리고 미래의 나를 만들어간다.
일주일 정도의 시간이 흐르면 볼펜의 검은 눈금이 바닥에 닿아 있고, 오늘 하루의 나도 괜찮았어, 하고 안도한다. 새 심지를 갈아 끼우며 내일의 나를 맞이할 준비를 한다. 책 사이사이 붙은 색색의 띠지들을 반듯하게 정렬하여 붙이며 기억하고 메모한다. 글쓰기를 시작하며 준비한 다이어리에 오늘 만난 단어와 문장들을 정리한다. 아는 단어라도 사전을 다시 찾아 뜻을 숙고하며 새삼 이런 뜻이 있었구나, 알아간다.
스스로의 발견이 기특한, 카페. 이곳에 오면 나의 욕심이 가능한 것처럼 느껴진다. 쓴 커피, 작은 테이블과 의자가, 나만의 공간에서 나만의 작업이 이루어지고, 눈치 보지 않는 자유로움이 나를 청춘으로 만들어주는 듯하다. 도서관에서 진행하는 청년 지원 프로젝트의 나이 상한선은 39세였다. 그 나이도 청년이라 부르기엔 아직 어색한데 난 그보다 한참 더 지나왔다.
청춘의 시간대가 지났으나 여전히 청춘으로 살려고 노력한다. 예전 어르신들이 마음은 청춘이라고 말하는 것이 듣기 싫었다. 그런데 지금 나는 청춘으로 살고 싶다. 자리에 진득하니 눌러앉지 않고 빠릿빠릿하게 움직이고 나이를 내세우지 않으려고 한다. 욕심인 것을, 과할 수 있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매일이 버겁다. 그렇지만 일단 가 본다. 언젠가 급정거하게 될지 몰라도.
엊그제 첫눈이 왔다. 눈앞에 창밖으로 소복이 내리는 눈이 좋아서 앞에서 말하는 소리가 들어오지 않았다. 공간의 흐름을 방해하지 않으며 조용히 창밖의 변화를 즐겼다. 나중에 무어라 하는 말을 듣고 정신 차리고 알아들은 것처럼 영혼 없는 수습을 했다. 학교의 아이들이었다면 소리부터 질렀을 것이다. 교무실이었다면 젊은 선생님들은 하던 일을 멈추고 창가로 모였을 것이다. 밖으로 나가자는 휩쓸림에 끼어 같이 나갔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눈은 열고 귀는 닫았다. 마음으로 환호했다.
오늘은 독서토론 강의를 준비한다. 토론 진행 과정을 천천히 짚어간다. 카페의 감성 조명이 정신을 빼앗지만 다시 마음을 다잡는다. 질문을 확인하고 확장된 질문을 생각한다. 더 나올 수 있는 돌발 상황을 점검한다. 책을 펴고 발췌문을 읽어 본다. 커피가 필요한 순간, 한 모금 삼킨다. 카페 안에 퍼진 커피콩 볶는 냄새와 커피 향이 추억처럼 그윽하다. 다시 정신을 차려 순서를 짚어간다. 몇 명이 올지 모르는 토론 준비를 혼자서 여러 명의 패널이 되어 조용히 읊조리고 있다. 커피의 각성 효과만큼이나 새로운 힘을 내게 하는 카페의 각성 효과를 만끽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