쪼하의 커리어 이야기
이전 글에서 '해외 코인 프로젝트 보도자료 잘 쓰는 방법'을 다뤘다면 이번 글은 홍보 대행을 맡았을 때 유의사항을 소개하고자 한다. 이번 글은 내가 실무를 하면서 느꼈던 애로사항에 중점을 둘 예정이다.
먼저 떠오를 애로사항은 모든 의사소통을 영어로 해야 한다는 점일 것이다. 의외로 언어 장벽은 그다지 큰 문제는 아니다. 한국 사람들은 웬만해서 영어를 쓸 수 있을뿐더러 요즘은 번역 프로그램이 많이 발달했기 때문이다. 시차 차이로 인해 해외 프로젝트들과 주로 저녁~밤 사이에 소통해야 한다는 점이 다소 번거롭긴 하다.
이는 부차적인 문제에 지나지 않는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해외 프로젝트에게 한국 언론의 특수성을 이해시키는 일이다. 기자 출신으로서 해외 프로젝트의 요청 중 다소 난감하던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언론사에 기사 삭제 요구
2) 보도자료에 자신들의 웹사이트 링크 삽입
언론사에 몸 담지 않은 사람들 입장에서는 1)이 얼마나 심각한 사안인지 모를 수 있다. 대체로 "기사 내용이 사실과 다르면 당연히 지워야 하는 게 아닌가"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해외 프로젝트들이 '사실과 다르다'라고 판단하는 부분이 국내 언론에서는 '특정 사안에 대한 기자의 해석'으로 포용될 수 있다는 점이다.
이전 글에서도 언급했지만 기사가 온라인에 발행되려면 데스크(기사 송출 권한을 가진 직책. 주로 언론사의 부장급 이상을 통칭)의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 우리가 접하는 기사들의 실제 책임자는 바이라인(기사 마지막에 기재된 기자 명과 이메일 주소)에 기재된 사람이 아닌, 그 기사를 내보낸 데스크다.
어느 정도 규모를 갖춘 언론사라면 부장, 부국장 급이 데스크를 맡고 그 위에 편집국장을 따로 둔다. 통상 편집국장은 해당 언론사 웹사이트에 '편집인'으로 기재된다. (발행인은 해당 언론사 대표를 의미한다.) 지면 매체의 편집국장은 어떤 기사를 종합 1면 톱에 올릴지, 특정 사안에 대한 언론사의 논조를 어떻게 정할지 등 회사에 전반적인 방향성을 제시한다. 다만, 소규모 언론사에서는 편집국장이 직접 데스크를 맡는 경우도 존재한다.
만약 어떤 업체가 특정 기사를 쓴 언론사를 언론중재위원회(언중위)에 제소한다면 바이라인에 걸린 기자가 아니라 기사의 송출을 승인한 데스크가 출석하게 된다. 한 마디로, 데스크가 기사에 대한 모든 책임을 지는 대신 수정, 편집, 삭제 권한도 갖고 있다는 의미다. (개인적인 얘기지만 내가 만났던 데스크 중 "기사는 기자가 쓰는데 왜 언중위에는 데스크가 가야 하냐"며 불만을 토로하던 사람도 있었다.)
그만큼 데스크들은 자신이 내보낸 기사에 대한 자부심을 갖기에 대체로 외부의 기사 수정 요청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기사 수정은 그 기사에 틀린 부분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며, 이는 데스크의 자부심에 타격을 주기 때문이다. 물론, 합당한 이유가 있다면 틀린 부분을 정정해 주는 데스크들도 있긴 하다.
그렇기에 데스크들은 기사가 나간 후 클레임을 받는 것을 사전에 방지하고자 기사를 작성한 기자에게 사실 및 인과관계를 꼼꼼히 확인하고 기사로 다루는 대상의 해명을 충분히 담을 것을 요구한다. (나를 기자로서 가장 많이 성장시켰던 데스크는 문장 하나하나까지 내게 100% 확실한지 물어봤으며 확보한 증거가 원본이 맞는지조차 꼼꼼히 확인했다.)
이런 과정을 이해하면 기사 삭제 요구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 수 있다. 언론사 입장에선 기사 수정도 받아들이기 어려운데 삭제는 '선을 넘는다'라고 판단할 수 있으며, 외부 업체가 "기사를 삭제해 달라"라고 요청하는 순간 "전면전을 벌이자"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다.
만약 완전히 틀린 사실을 주제로 기사를 썼다면 그 기사는 내리는 게 맞다. 문제는 기사의 주제가 되는 사건 자체는 사실이지만, 이후의 전망이나 해석에 아직 발생하지 않은 내용이 들어갈 경우다. 안타깝게도 그 경우에 기사를 삭제하기는 어렵다. "실제로 발생하지 않았지만 언론사 입장에 충분히 그렇게 판단할 만하다"라고 주장할 수 있어서다.
언론중재위원회 제소 또는 기사 삭제 가처분 소송 등의 방법은 있겠으나 본사가 아닌 대행사 입장에서는 쉽지 않은 방법이다.
"보도자료에 우리 웹사이트 링크를 넣어달라"는 요청은 사소해 보이지만 받아들이기엔 어렵다. 이를 해외 프로젝트에 이해시키기 위해선 한국 언론 산업에 있어 검색엔진 플랫폼(특히 네이버)의 영향력이 얼마나 큰지를 설명해야 한다.
일단 네이버 또는 다음 뉴스 페이지에 노출되기 위해선 '검색 제휴 언론사 명단'에 올라야 한다. 네이버와 카카오는 2016년부터 뉴스제휴평가위원회(제평위)를 통해 신규 언론사의 입점 심사 및 제제를 담당해 왔다. 그동안 제평위는 광고나 어뷰징 기사를 남발하는 언론사가 검색 엔진에 걸리지 않게 하자는 취지에서 제평위의 평가 기준에 따라 언론사들을 크게 ▲비(非) 제휴 언론사 ▲뉴스 검색 제휴 ▲뉴스 스탠드 제휴 ▲뉴스 콘텐츠(CP) 제휴 등 4단계로 분류했다.**
네이버는 무분별한 트래픽 유도를 막기 위한 취지에서 검색 제휴 언론사의 외부 링크 삽입을 허용하지 않는다. 네이버가 올해 2월 발표한 '아웃링크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언론사와 무관한 페이지로 이동하는 경우뿐 아니라 언론사 자체 로그인 페이지로 이동하는 행위조차 차단된다. 해외 프로젝트의 보도자료를 기사화한 내용일지라도 그 프로젝트 웹사이트로 갈 수 있는 링크를 넣어서는 안 된다.
즉, 보도자료에 해외 프로젝트 웹사이트 링크를 넣는다고 해도 기자가 기사를 작성하는 과정에서 삭제된다는 의미다. 그렇다 보니 애초에 보도자료에도 링크를 삽입하지 않는 편이 홍보팀과 기자 둘 다 윈윈할 수 있는 방법인 셈이다.
**제평위의 공정성 논란이 잇달아 불거지면서 2023년 5월부터 제평위 활동이 잠정 중단된 상태다.
위와 같이 이번 글은 해외 프로젝트 홍보 대행 시 주의해야 할 점을 몇 가지 다뤄봤다. 비록 내가 해외 매체에서 근무한 경험은 없어서 잘 모르겠지만 해외 프로젝트들과 소통하면서 한국 언론의 특수성이 꽤나 강한 것 같다는 사실을 체감하고 있다.
한국 언론의 특징을 어느 정도는 이해하고 있어야 해외 프로젝트들과 소통 시 홍보 대행에 있어 가능한 부분과 불가능한 부분을 분명히 정할 수 있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