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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참아서 병난 여자 Mar 21. 2022

엄마가 주인공이 되는 시간

아주 오래전, 연예정보 프로그램을 만들던 방송작가 시절, 한 중견 배우의 인터뷰 기사를 본 적이 있다. 너무 오래전이라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그는 스스로를 ‘밥상머리 배우’라 칭했다. 나이가 들고 나니 이제는 주연도, 조연도 아닌 주인공의 부모로, 밥 먹을 때 밥상에나 나오는 역할만 한다는 의미에서 한 말이었다. 


그때 내 나이 서른이 채 되지 않은 젊을 때이니, 한 중견 배우의 얘기에 아무 느낌이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까맣게 잊고 있다가 왜 오늘 갑자기 그 기사가 쓸쓸한 어조까지 그대로 담아 떠오르는 걸까? 


요즘 나는 드라마를 보면서 자꾸, 예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조연들의 인생이 궁금해진다. 그리고 가끔은 화가 난다. 그들도 주인공처럼 똑같은 24시간을 살 텐데, 그들도 인생이 고단하기는 마찬가지일 텐데, 그들은 언제나 주인공의 필요에 의해 등장해서, 주인공이 들어야 할 말을 하고, 사건을 터뜨린다. 


오늘 <서른, 아홉>을 보다가도 그랬다. 주인공은 무슨 일만 생겼다 하면 세상 고민 다 짊어진 듯 고민하고 아파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데 온 정성을 쏟더니, 조연인 어느 한 사람은 너무나 큰 비밀을 갑자기 아무렇지 않게 터뜨린다. 그가 그 비밀을 얼마나 힘들게 간직했고, 그래서 얼마나 힘들었는지는 보여주지 않으니 이 갑작스러운 마음의 변화가 생뚱맞았다. 안다. 당연하다. 그러니까 드라마고, 그러니까 주연과 조연이 있지. 


그런데도 왜 자꾸 화가 날까.


어쩌면 이제 나도 더 이상 주인공이 아닌, 조연의 삶을 살고 있어서일 것이다. 엄마가 된 내 인생에서 주인공은 언제나 아이들이었다. 내 24시간의 대부분은 엄마로서의 역할에 할애되어 있다. 그러나 아이들이 보는 화면 속에 그런 나는 보이지 않는다. 아이들의 프레임 밖에서 밥을 하고, 설거지를 하고, 청소를 하고, 빨래를 한다. 이야기의 발전이라곤 전혀 없고, 부지런히 움직이지만 끝나지 않는, 그래서 아무도 보지 않는 재미없는 드라마를 혼자 찍고 있는 중인 거다. 


하긴, 너무 억울해하지는 말자. 나도 내 부모님을 조연 삼아 내가 주인공인 인생을 살지 않았나. 그렇게 자위하면서도 가끔 서러워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오늘 저녁만도 그랬다. 오랜만의 등교 수업에, 목요일이 되니 세 아이도, 나도 지쳤다. 간단히 도시락을 사 와서 저녁을 먹는데, 도시락 포장을 뜯는 동안 세 아이는 멀뚱히 앉아만 있다. 그러다 내가 도시락을 뜯고, 비빔밥을 비비느라 정신이 없는 사이, 배가 고픈 두 아들 녀석이 손으로 음식을 집어 먹는 것이다. 바쁘게 움직이던 손길을 멈추고 수저통에서 수저를 거칠게 꺼내 주면서 기어이 한 마디 하고 말았다. 


“수저 정도는 너희가 꺼낼 수 있는 거 아냐? 어떻게 그렇게 가만히만 앉아 있냐~ 그 정도는 할 수 있는 나이잖아?! 하긴, 누굴 탓하겠냐. 이렇게 키운 엄마가 잘못한 거지.” 


그 이후로도 어쩌고 저쩌고 10절까지 이어진 잔소리. 덕분에 어색한 침묵이 흘렀지만, 그것도 잠시. 아이들은 후다닥 밥을 먹곤 자기가 먹은 그릇만 간신히 치운 채 깔깔 거리며 놀기 시작했다. 


아까 내가 늘어놓았던 잔소리들은 아이들의 머릿속에 남아 있을까? 오늘 엄마도 조금 힘들었노라고, 그래서 잠깐 버럭 해서 미안했노라는 사과는 기억할까? 지들이 남긴 도시락 반찬으로 밥을 먹는 내 신세가 처량하다가, 이게 또 먹다 보니 맛있다는 사실에 우습고 기막혀 허탈하게 웃던 나를 쳐다보기나 했을까? 


아니다. 아니었을 것이다. 주인공은 조연의 감정에 관심이 없다. 그리고 그래야 한다. 그 사실이 조금쯤 서럽지만, 내가 조연을 자처한 덕분에 아이들이 스스로가 주인공인 인생에서 살았으면 좋겠다. 


주인공들이 모두 잠든 밤에도 조연의 하루는 끝나지 않았다. 매일 등교를 하면서 부쩍 늘어난 빨래를 접어야 했다. 빨래를 접는 동안 드라마나 유튜브를 볼까... 하다가 만 것은 잘한 일이다. 그랬다면 나는 또 그저 드라마의 시청자로 남았겠지만, 빨래를 착착 개는 50분의 시간 동안 생각들도 켜켜이 쌓여, 이렇게 한 편의 글을 쓰는 작가가 되었으니 말이다. 


보아라, 이 녀석들아. 너희의 인생에 엄마는 밥 해주는 사람, 잔소리하는 사람, 빨래하고 청소하는 사람, 그런 조연에 불과하겠지만, 글을 쓰는 동안은 엄마가 주인공이란 말이다. 


그러니 엄마들이여 글을 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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