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매콤한 닭갈비에는 그 맛을 중화시켜줄 포슬포슬한 달걀찜이 딱이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무려 달걀찜이라니!
우리 세 아이가 너무나 좋아해서, 언제나 나는 숟가락 한 번 쪽 빨아보고 말았던 그 달걀찜을 나 혼자 독식할 수 있다니!그 기쁨도 기쁨이지만 더욱 놀라웠던 것은 무려 13년의 결혼생활 동안 단 한 번도, 나를 위해서 달걀찜을 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는 깨달음이었다. 그렇게 수많은 밥을 차리고 먹으면서도 나를 위한 반찬 하나 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언제나 ‘나는 먹지 않더라도 애들이 좋아하는 것’ 조금 더 나아가면 ‘나도 먹고 애들도 먹을 수 있는 것’ 그것이 그날그날 메뉴의 기준이었으니까.
그런데 어라? 더더 놀라운 사실! 생각이 여기에 이르자 나는 갑자기 달걀찜을 하기 귀찮아졌다. 순간 나도 모르게 ‘에이, 애들도 없는데, 무슨...’ 이런 생각이 들고 만 것이다. 누가 보면 달걀찜이 무슨 대단한 음식이라도 되는 줄 알 지경이다.
얼른 생각을 떨쳐 버리려고, 달걀 두 개를 톡톡 깨서 정성을 다해 풀었다. 소금을 넣고, 젓고, 물을 넣고 휘휘 젓는다. 참기름을 두 방울을 톡톡 떨어뜨리자 고소한 냄새가 식욕을 자극한다. 그 고소함을 더해줄 통깨와, 아이들의 달걀찜에는 넣지 않았던 고춧가루까지 촵촵 뿌려준다. 냄비에 물을 살짝 넣고, 대접을 넣어 뚜껑을 닫는다.
한쪽 가스레인지에서 차가워진 닭갈비를 덥히는 동안, 보글보글 물이 끓어오르면서 달걀찜이 부풀어 오르기 시작한다. 닭갈비 볶음밥과 달걀찜을 하나~ 그냥 닭갈비 볶음밥만 하나~ 막상 시간에는 별로 큰 차이가 없었다.
남은 반찬에 밥을 볶아 먹는다는 서러움을 오롯이 나만을 위해 방금 만든 뜨끈뜨끈한 달걀찜이 보드랍게 감싸준다.
나는 요즘 이상하게 자꾸 억울했다.
음식을 나 혼자 하는 것도 억울했고, 내가 1시간 걸려 차린 음식들이 길어봤자 15분 만에 사라지는 것도 억울했다. 아이들이 ‘잘 먹었습니다!’라고 말하며 식탁에서 일어날 때도 ‘말 한마디 하기는 쉽지?’ 하며 괜히 분했다. 청소기를 돌릴 때, 아이들이 소파에 앉아서 발만 숑 들어주면 그게 어찌나 얄미웠는지 모른다. 지들은 신나게 놀고 있을 때, 혼자 철푸덕 거실 바닥에 앉아 산더미 같은 빨래들을 개다가 ‘엄마는 너희들 하녀 같아’라는 말을 불쑥 내던져, 잠시 세 아이를 정지 상태로 만들기도 했다.
결혼생활이라는 게, 육아라는 게 억울해지려면 한없이 억울해지는 일이다. 그런데 종종 나는, 내 안의 설움으로 그 억울함을 더욱 폭발시키곤 했다.
아무도 나에게 달걀찜을 절대 먹어선 안 된다고 말하지 않았다. 아무도 나에게 혼자 청소기를 돌리고, 혼자 빨래를 개라고 하지 않았다. 나는 내 것을 내 스스로 챙기지도 않으면서, 부탁도 하지 않으면서 혼자 내 신세타령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오직 가족만을 위해서 태어난 것 마냥, 다른 사람을 위해 사는 것처럼 생색내고, 분노했지만 막상 따져 보면 그렇지도 않다. 내 나이 마흔다섯, 결혼생활은 고작 13년. 나만을 위해서, 내가 먹고 싶은 것 먹고, 밤새 놀고, 늘어지고 싶은 대로 늘어지면서 살았던 세월이 아무리 생각해도 엄마로, 아내로 살아온 지금 세월보다 훨씬 더 길다. 그리고, 내가 그렇게 내 맘대로 살았던 세월 뒤에는 당연히 나의 엄마가 있었다.
물론 아무리 그렇다고는 해도 결혼생활도, 육아도 여전히 힘들긴 힘들다. 하지만 거기에 자기 연민을 더하지는 않아야겠다. 아무도 뭐라 하지 않는데 스스로를 하찮게 여기지 않아야겠다. 그렇게 스스로를 비참하게 만들고 그 화살을 다른 사람에게 돌리는 어리석은 사람이 되지는 않아야겠다.
나만을 위한 달걀찜을 하는 날을 늘려가자. 아무도 날 대접하지 않는다고 한탄하지 말고, 나 스스로를 귀히 여기자. 지금 이 시간은, 그저 나의 아이들에게 잠시 내어주는, 내 인생의 일부일 뿐이라고, 그러니 인색하지 말고, 마음껏 내어주자고. 비록 얼마 못 갈 다짐이라도 그렇게 마음먹고 나자, 나는 훨씬 편안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