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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풋풋씨 May 09. 2020

산책중에 만난 보물

내 주위에 보물이 가득하다


오래도록 피어있는 겹벚꽃이 선물같다


분홍색 겹벚꽃이 아직 피어있다.
땅콩과 바나나를 사서 천마산에 오른다.
비를 머금은 공기가 시원하고, 초록을 머금은 산이 시원하다. 웬일인지 kf94 마스크도 답답하지 않다.


천마산은 평일에는 사람이 많지 않아 조용하고 건강하게 거리두기 할 수 있다. 물론 주말, 공휴일, 연휴기간은 피해야 하고 마스크 착용은 꼭 해야 한다.

천마산 군립공원 정상은 812미터로 왕복 3시간 정도면 오르내릴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난 오르는데만 3시간 내려오는데 2시간, 꼬박 5시간이 걸렸다. 길은 완만하지만 온갖 꽃과 온갖 새를 만날 수 있어 느린 발걸음이 더 느려졌기 때문이다.


오늘은 정상까지 말고 중간까지 걷기로 한다. 오후 4시 출발.
산이 온통 푸르르다. 녹색 녹색 녹색 아직 남아있는 연두색. 눈도 마음도 싱그러워진다.

첫 번째 약수터를 지나고 두 번째 약수터를 지나면 삼거리 길이 나온다. 할미꽃이 피어있다. 붉은 할미꽃 옆에 노란 할미꽃도 있다. 처음 보는 노란 할미꽃이 새롭고 반갑다.

처음 만난 노란색 할미꽃. 처음은 항상 설렘


나 혼자 가도 되는데 자꾸 따라오는 날파리 두 마리,
신발을 지나 양말도 지나 발을 콕 콕 찌르는 잔 나뭇가지 그리고 내 반팔 티 위에 꿈틀거리는 이거 뭐야?
으아아아. 검은색 작은 애벌레.
스틱으로 옷을 턴다. 너무 세게 쳤나? 살아 있나...?

꿈틀거린다. 다행이다. 나뭇잎으로 애벌레를 유인해 길 옆쪽에 놓아준다.

출발하고 한두 시간은 쉬지 않고 걷는다.

걸으면서 흐르는 땀에 기분이 좋다. 출발하고 1시간이면 나의 쉼터가 나타난다.
'천마산 빅 데이터로 연결되다'라는 표지를 지나 있는 나무의자. 이곳을 좋아하는 이유는 천마산의 딱 중간 지점 위치, 깨끗해 보이는 화장실(아직 이용하진 않았다), 여러 개의 나무의자, 스피커에서 나오는 피아노 음악, 그리고 곤줄박이 새 때문이다.



나무의자에 앉아 하루견과를 먹고 있었다.
호두, 마카다미아, 캐슈너트, 크렌베리, 아몬드가 섞여있는 하루견과 한 봉지를 뜯어 오도독오도독 먹고 있는데 새소리가 들렸다. 곤줄박이였다. 배에 붉은 무늬가 예쁘고 노랫소리도 예쁜 곤줄박이. 내 위 나뭇가지에 앉아있다가 푸드득 날아온다. 의자 옆에 캐슈너트, 마카다미아, 아몬드를 놓았더니 아몬드를 골라 입에 물고 날아간다. 새가 이렇게 가까이 다가온 건 두 번째. 정말 오랜만의 일이다. 내 일상이 동화로 바뀐 느낌이 들어 행복함이 물씬 느껴졌고 그때부터 나의 쉼터로 찜꽁했었다.

부안 변산마실길에서 만난 곤줄박이. 천마산에선 못 찍었다.


오늘은 하루견과가 없어 땅콩을 사 왔다.
나의 쉼터로 가는데 큰 까마귀 두 마리가 앉아있다가 내게 자리를 비워준다. 의자에 앉아 다리를 쭈욱 펴준다. 새를 위한 땅콩과 나를 위한 바나나를 꺼내고 물도 시원하게 마셔준다. 잔잔하게 흐르는 피아노 소리로 마음도 잔잔해진다. 달달한 바나나를 먹으니 마음도 달달해진다. 바나나를 다 먹을 동안 곤줄박이는 보이지 않는다. 다음을 기약하며 발걸음을 옮긴다. 이제 하산.

공중에 연두색 애벌레가 매달려 계속 돌고 돈다. 바람에 따라 도는 것인지, 기분이 좋은 것인지 애벌레는 계속 옆으로 한 바퀴씩 회전하며 춤을 춘다. 자세히 보니 얼굴이 너무 귀엽다. 머리는 샛노랗고 몸통은 연두색에 위아래로 난 발은 솜털같이 새하얗다. 눈과 입이 앙증맞게 작고 웃는 상이다. 풋. 애벌레를 귀엽다고 말하는 날이 오다니. 내가 계속 쳐다보니 회전을 멈추고 가만히 있는다. 그러고 얼마 후 몸통 윗부분을 움직여 하늘로 조금씩 올라간다.

계속 돌고 돌아 귀여운 얼굴이 찍히지 않는다.



저 멀리서 새가 날갯짓을 한다. 괜히 나는 애벌레를 보게 된다. 애벌레와 새를 번갈아 본다. 다행히 거리가 좀 있다.
새는 소리가 크고 행동도 큰 게 직박구리인가? 새가 나무를 오르락내리락거린다. 검은색과 하얀색 무늬에 머리가 붉은색이다. 붉은 머리 딱따구리다.
끝없이 나타나는 동물친구 덕분에 나도 웃는 상이다.

앞쪽 머리는 붉은색인데 뒷모습만 잡혔다.



한 시간을 내려와 이제 호만천 옆을 걷는다. 호만천엔 물고기가 많다. 그래서 오리도 종종 볼 수 있다. 두 마리의 오리가 오늘도 신나게 물장구를 치며 놀고 헤엄친다. 갑자기 오리가 나를 뚫어지게 쳐다본다. 정말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가 된 느낌이다. 자꾸 웃음이 난다. 오늘 하루가 알알이 알차게 아름답다.

오리가 갑자기 뚫어지게 쳐다본다.


조금 걷다 보면 나오는 벽화 그림. 라푼젤의 그림과 함께 있는 글은 늘 곱씹어 읽어 마음에 담아두고자 한다.



머릿결보다 반짝이는 눈망울




오늘 죽을 것처럼 살고
영원히 살 것처럼 꿈꾸라
-제임스 딘




오늘 5월 8일은 특별한 날이다.
4년 전 오늘은 국토대장정을 이룬 날이다.

오래 꿈꾸다 2015년 9월 26일 시작, 걷고 멈추고 걷고 멈추고 다시 걸어 결국엔 우리나라 남쪽 땅 700km를 다 걸어 마친 날이다. 불가능할 것만 같았던 그 꿈을 끝내 이뤘을 때의 감격과 감동을 잊을 수 없다. 그 감사함을 잊지 않으려 한다.

오늘 하루가 너무 감사하다.
아침에 일어나면 오늘이라는 선물을 또 받았음에 감사하며 시작하기로 마음먹는다. 꿈이 불가능할 것만 같게 느껴질 때, 이미 이뤘던 일들을 생각하기로 한다. 그 일들도 처음에는 불가능하게 보였기에.
오늘도 오늘 죽을 것처럼 알차게 살고
영원히 살 것처럼 마음껏 꿈꾸기로 한다.







두달을 꼬박 집에 있다가 코로나 국내 확진자가 0명까지 떨어지는 걸 보고 집을 나서 5월 8일을 밖에서 보냈다. 다음날인 오늘 뉴스를 들었다.  그동안  정부, 질병관리본부, 의료진, 그리고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애쓰고 노력해서 거의 코로나 잡기 막바지에 이르렀다고 생각했었다. 코로나가 잡힌 후에도 생활적 거리두기는 필수임은 당연한 일이고말이다. 5월 5일 연휴기간에서 2주 지난 19일까지 추가 확진자가 쭉 나오지 않기를 바랐었다. 그런데 클럽에서 일이 일어났다. 이태원 클럽 확진자가 전국적으로 40명 발생했다. 슬프고 화나고 지치는 뉴스. 다시 갈 길이 멀어졌다. 다시 고강도 사회적 거리두기가 필요한 시점이다. 모두의 마음에 평안함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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