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바람이 불어서일까. 오늘은 퇴근길에 집으로 향하는 대신 햄버거 세트를 포장해 친정으로 향했다.
어제저녁 오랜만에 아빠에게 전화를 드렸다. 보통 안부를 묻고 통화를 마무리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1분 남짓, 나는 참으로 살갑지 못한 딸이다. 평소처럼 식사는 하셨는지, 몸은 좀 어떤지 묻고는 더는 할 말이 없어진 나에게 아빠는 갑자기 새로 꾸민 어항 이야기를 꺼냈다.
아파트 재활용장에 버려진 멀쩡한 어항을 집에 들여온 아빠는 어항 청소와 꾸미기에 꽤 많은 공을 들이셨다. 처음 시작은 열대어였으나 온도에 민감한 열대어들은 올해 폭염을 버티지 못하고 몇 차례에 걸쳐 모두 죽고 말았다. 결국 열대어보다 환경 적응력이 좋다는 금붕어를 들여온 지 3주째라는 소식을 전하는 아빠의 목소리에서 기운이 느껴져 통화를 마친 후 모처럼 마음이 가뿐해졌다. 말로만 전하기 아쉬웠는지 통화를 마친 후 아빠는 금붕어가 유유히 헤엄치는 짧은 영상을 문자로 보내왔다.
헤엄치는 색색의 물고기 비늘을 무심코 바라보다 그런 마음이 들었다. 내일 퇴근길에 ‘금붕어 보러왔다’는 핑계로 부모님 댁을 방문해야겠다고.
집 근처에 도착해서야 아빠에게 전화를 걸었다. 미리 연락을 드리지 않은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일하고 집에 돌아가 집안일을 해야 할 딸 걱정에 오지 말라며 엄마고 아빠고 성화를 부릴 것이 뻔했다. 아무리 딸 생각하는 마음을 머리로 안다고 해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일단 “오지 말라”고 거절을 당하면 기분이 좋을리 없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아빠는 정기 진료를 받으러 병원에 가는 버스 안에서 전화를 받았다. 현관에 햄버거를 봉투를 걸어두고 와야하나, 고민하던 때 아빠가 말했다. “집에 엄마 있으니 전화해 봐.”
그동안 이런 식(?)으로 친정을 방문한 일이 없어 갑작스런 나의 등장에 엄마도 적지 않게 놀란 눈치였다. 아빠가 애지중지하는 어항에는 눈길도 주지 않은 채 햄버거 봉투를 건내고 돌아서는데 엄마가 아빠가 진료 중인 병원에 가서 함께 돌아오자고 제안했다.
그렇게 엄마를 차에 태우고 아빠가 계신 병원으로 향했다. 이번에도 깜짝 방문이었다. 진료를 마치고 홀로 버스에 오르기 전에 엄마는 아빠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금 병원으로 향하고 있으니 로비에서 만나기로 약속하면서도 끝까지 나의 동행은 밝히지 않았다.
주차장에 차를 두고 병원에 들어서니 의자에 앉아있는 아빠의 뒷모습이 보인다. 발에는 아직 고정대를 차고 한 손에는 지팡이를 잡은 채다. 조심스럽게 다가가 아빠를 부르니 얼굴 가득 미소를 지으며 돌아보신다. 깜짝 방문이 싫지 않은 기색이시다.
엄마와 둘이 병원으로 향하는 동안, 그리고 아빠와 함께 셋이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동안 평소보다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집으로 돌아와 소파에 앉으니 평소와 다른 감정이 느껴졌다. 부모님을 위해 무언가 좋은 일을 한 것 같은 기분. 뭐랄까 뿌듯함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 감정이었다.
일주일에 한 번, 퇴근길 부모님 댁으로 향하기로 나로서는 제법 큰 다짐을 했다. 다음 주엔 아빠가 좋아하는 호두과자와 큰 글자 도서 한 권 들고 부모님 댁에 가서 금붕어를 보고 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