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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향노루 Jun 27. 2022

RICOH GR3x - 한국형 스냅슈터

GR과 함께하는 을지로 골목여행

*이 글은 세기P&C가 진행한 체험행사 미션으로서 작성됐습니다. 제품 무상 대여 혜택이 있었으며 모든 내용은 개인적 의견으로 작성됐습니다. 결과에 따라 비금전적 혜택을 받게 될 수 있습니다.




GR에 40mm를 태워?

40mm라는 숫자는 요즘 사진을 찍는 사람들에게 그리 익숙하지 않은 편이다. 오래된 필름카메라에서 가끔 보이는 수치(38mm까지 포함시키면 또 마냥 드물진 않지만…)로 현시대에는 일종의 ‘변칙’으로 취급되곤 한다. 35mm 다음은 50mm인 것이 일반적인 인식이다. 4자를 싫어하는 대한민국 종특이 여기서도 발휘되는 건가…



하지만 전형적인 반동분자인 나는 개인적으로 40mm를 선호한다. 많은 이들이 35mm를 선호하고 40mm를 애매하게 생각하지만, 나는 반대로 35mm가 애매하게 넓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집중이 되는 것도, 시원하게 보여주는 것도 아닌 시야. 두루두루 소화하기 위해 모든 특징을 취하면서 평균으로 눌러버린 개성 없는 제품 같은 이미지다. 후지필름 X100F를 쓰면서 굳이 다른 사람들이 딱히 추천하지 않는 텔레컨버터(TCL-X100)를 들인 이유다. 선호하지 않는 화각으로만 쓰기보다 익숙한 50mm 느낌을 같이 써야 더 오래 쓸 수 있을 듯해서. 반면 40mm는 절묘하다는 느낌이다. 35mm에 가까운 시야를 가지면서도 35mm에서 나타나기 시작하는 광각 왜곡은 배제돼 있어서 35mm와 50mm의 영역을 모두 소화할 수 있는, 더 다재다능한 표준렌즈라 생각한다.



그런 나의 취향을 저격하는 카메라가 나왔으니,  GR3x다. 아이코닉한 GR의 아이덴티티를 보존하면서 화각으로 변주를 주다니. (시그마 dp 시리즈 냄새가 나는 건 제가 시그마빠라서 그렇겠죠?) 궁금증 폭발은 당연지사. 세기P&C가 진행하는 GR 체험행사를 지원하지 않을 수 없었다. 테마도 재밌다. ‘GR과 함께하는 을지로 골목여행’. 인쇄골목, 인현시장, 세운상가, 노가리 골목을 도장깨기 하는 흥미로운 컨셉. 이거 지렸다.




GR이니까 작고, 작으니까 GR이다

GR 시리즈에 대해 검색할 때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단어가 있다. ‘스냅 슈터’. 앞에 따라붙는 수식어는 조금씩 다르지만 GR이 스냅슈터의 대명사라는 것은 바뀌지 않는다. 시장에 수많은 카메라가 있지만 이토록 확고한 정의를 가지고 있는 카메라는 흔하지 않다. 시야를 카메라가 아닌 다른 분야로 넓혀도 그렇다. 대부분 브랜드나 제품에 부여된 이미지들은 ‘확고한 업계 최고’의 아이덴티티이지, 하위 장르의 대명사격이 되기는 쉽지 않다. 스릴러 영화 명가 블룸하우스 이런 정도?


RICOH GR3x

GR이 이렇게 뚜렷한 아이덴티티를 얻게 된 것은 그만큼 스냅을 향한 고집을 유지해왔기 때문이다. 기술에 기반한 제품들은 발전의 과정에 따라서 커지고 작아지기를 반복한다. 새로운 기술이 나오면 크기가 커지더라도 그것을 적용하고 발전시키다가 기술이 한계점에 다다르면 크기를 줄여나가기 시작한다. 디지털카메라가 발전하면서 DSLR이 대중들 사이에서도 카메라의 주류를 이뤘다. ‘똑딱이 필카’를 쓰던 사람들이 커다란 렌즈교환식 카메라의 세계로 이주했다. 그리고 그 기술이 극에 달하자 소형화를 겨냥한 미러리스의 시대로 넘어왔다. 그러나 GR은 그 DSLR 대호황의 시기에도, 조금만 크기를 키우면 더 화려한 기능을 넣을 수 있는 미러리스 시대에도 스냅샷에 특화된 작은 카메라만을 생각했다. GR은 새로운 기술들을 적극적으로 채용하기보다는 언제나 꺼내쓸 수 있는 스냅머신이길 원했다.


GR이 지원하는 스냅 특화 기능이나 기술적 사양들이 몇 가지 있기는 하다. 하지만 스냅사진의 장르적 특성은 '상황'에 있다. 스냅사진의 정의는 ‘ 일상에서 재빠르게 순간적인 장면을 촬영하는 것으로 자연스러운 동작이나 표정을 잡을 수 있는 사진’이다. 때문에 GR을 스냅머신으로 완성시키는 가장 큰 특징은 기능이 아니라 크기다.(따지고보면 대단한 기능이나 혁신적인 기능이 없기도 하다) 현재 생산되고 있는 카메라 중 크롭센서를 채택하고 GR의 사이즈를 가진 카메라는 없다. 1인치나 마이크로포서드를 채택하고도 GR보다 크기 십상이다. 초점을 일정한 거리로 고정해주는 스냅 모드가 빠져도, 손떨림 방지 기능이 빠져도, 조리개가 조금 어두워져도 GR이 스냅머신이라는 것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작으니까. 그 작음을 유지하기 위해 GR은 많은 기술의 유혹을 참아왔고, 사람들은 “이건 못 참지”를 외치며 카드를 긁고 있다.


RICOH GR3x
RICOH GR3x


풀프레임 미러리스 중에서도 압도적으로 작은 사이즈를 자랑하는 fp를 쓰고 있지만, 체험 내내 GR의 사이즈가 주는 편리함에 감탄했다. 숄더스트랩이나 가방이 반드시 있어야 하는 렌즈교환식 카메라와 달리 급하면 바지 주머니에도 넣어서 두 손을 비울 수 있고, 다시 카메라를 꺼낼 때도 간편하다. 핸드폰 하나가 더 있는 정도와 체감이 비슷하다. 하루 종일 출사를 다녔음에도 가방을 이렇게 여닫지 않은 것은 처음이다.




한국형 스냅슈터, GR3x

전통적으로 28mm는 스냅촬영에 및 여행사진에 적합한 초점거리로 통한다. 가까운 거리에서도 촬영이 가능하며, 피사체와 배경을 한 번에 담을 수 있는 화각을 가졌고, 왜곡이 과하지 않으며, 본디 심도가 있는 광각 렌즈라 조리개를 조여서 초점을 세밀하게 맞추지 않는 팬포커스 촬영을 하기 좋다.


하지만 여기서 한 가지 고려해야 할 요소가 있다. APS-C 포맷의 함정이다. 크롭 포맷 카메라를 쓰는 사람들은 환산화각을 기준으로 초점거리를 선택한다. GR의 28mm 역시 환산화각이다. 풀프레임의 28mm와는 차이가 있다. 광각 왜곡은 주변부로 갈수록 두드러지기에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환산화각만 고려해도 무방하지만, 피사체와 거리가 가까워지면 중앙부에서도 왜곡이 식별된다. 때문에 GR3에서는 종종 환산하지 않은 본래 초점거리 값(18.3mm)에 따라 초광각 렌즈의 특성이 나타난다. 소실점 효과가 두드러지고 피사체가 왜곡된다. 광각 왜곡은 개인적으로 스냅에 있어 방해 요소라고 생각한다. 자연스러운 모습을 담아내고자 하는 촬영 의도를 반영하는 데 걸림돌이다.


RICOH GR3x


반면 환산화각 40mm인 GR3x는 풀프레임 기준 26.1mm로 18.3mm와 무려 8mm 가까이 차이가 난다. 환산화각과 본래 화각의 괴리는 광각으로 갈수록 커지고, 표준에 가까워질수록 좁아지며, 망원 영역으로 가면 소멸된다. 환산화각 40mm부터는 가까운 거리에서도 광각 왜곡이 두드러지지 않는다. 그러면서 앞서 언급한, 범용성을 품고 있다. 약간의 발줌을 더하면 35mm만큼의 범위를 담을 수도, 50mm처럼 집중할 수도 있다.



*왼쪽부터 35mm(후지필름 X100F) - 40mm(GR3x) - 50mm(X100F + TCL-X100). 28mm와 비교는 결과가 뻔하므로 본인이 40mm로 모두 소화가능영역이라고 보는 35mm, 50mm와 비교 진행

*1열 -  35mm에서는 약간의 광각 특유의 늘어짐이 눈에 띄고 40mm와 50mm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2열 - 소실점 효과는 35mm와 40mm/50mm 사이에 차이가 확연하다.

*3열 - 최대한 비슷한 범위로 피사체의 좌우 폭을 맞췄다. 근거리 촬영이기에 35mm와 40mm/50mm간의 좌우폭 늘어짐이 상당히 다르게 느껴진다.  


근거리 촬영에서 광각 왜곡을 이렇게 집요하게 걸고넘어지는 이유는 한국 특유의 촬영 환경 때문이다. 스냅 촬영은 스트릿포토와 장르적으로 교집합이 크다. 그래서 GR 시리즈를 스트릿포토에 쓰는 사람들이 많은데, 공공장소에서도 초상권이 보호되는 한국 환경에서는 사람이 아닌 풍경과 사물로 카메라가 향하는 경향이 있다. 풍경은 조금 더 물러나는 것으로 더 넓은 시야를 확보할 수 있지만, 사물을 찍기 위해 가까이 다가가면서 나타나는 광각 왜곡은 해결할 방법이 없다.(그래서 GR이 좋은 카메라라고 생각하면서도 막상 손에 들고 있으면 어려웠다.) 카페 등에서 마주 앉은 상대방을 찍을 때 40mm는 조금 타이트하지만 몸을 조금만 뒤로 젖히거나 의자를 살짝 뒤로 빼면 35mm만큼의 시야가 나온다. 많은 사람들이 원하는 ‘흐린 배경의 인물사진’을 얻기도 좋다. 덜 광각이니 같은 F2.8에서 배경흐림 효과도 더 크다.  궁극의 스냅슈터라는 별명을 가진 GR3지만, 한국 한정으로는 GR3x가 더 효용가치가 높다. ‘한국형 스냅슈터’랄까.




을지로는 더웠다.

그럼에도 G.R.ㅕ.ㅆ.ㄷ.ㅏ

몇 년간 을지로에서 회사를 다녔다. 출퇴근하며, 점심 먹으며, 회식하며 거의 매일 을지로를 돌아다녔다. 그렇게 오며 가며 을지로에서 꽤 많은 사진을 찍었기에 더 이상 찍을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작정하고 사진 찍으러 돌아다니는 을지로는 또 다른 새로움이 있었다.


RICOH GR3x - 단속대상
RICOH GR3x - 도심 비행


날씨 어플을 보지 않아도 30도를 넘나들고 있음을 알 수 있을 만큼 무척이나 더웠다. 혼미해지는 정신을 붙잡고 GR3x의 집중감과 함께 디테일을 들여다보자 새로운 것들이 눈에 띄었다. 한 발 물러서서 맥락을 파악해보기도 했다. 구시가지다운 전통과 노쇠함, 힙지로가 가져온 새로움과 낯섦이 한 데 모여 뒤섞이고 있었다. 물론 그 뒤섞임이 아름다운 조화로만 나타나지는 않고 있지만, 그 혼란 역시도 사회의 한 단면이기에 쉬이 넘기지 말아야 한다. 2022년 한국의 현주소를 관찰하게 해 준 좋은 체험 프로그램이었다. 기념품 퀄리티 G.R.ㅕ.ㅆ.ㄷ.ㅏ… 을지로여서 G.R.ㅕ.ㅆ.ㄷ.ㅏ…  그리고 GR3x여서 G.R.ㅕ.ㅆ.ㄷ.ㅏ…  결론은 GR3x 마렵다.


#GRwalk #을지로골목여행 #리코GR3x #GR시선x40mm


GR과 함께하는 을지로 골목여행
GR과 함께하는 을지로 골목여행






RICOH GR3X
RICOH GR3x
RICOH GR3x
RICOH GR3x
RICOH GR3x
RICOH GR3x
RICOH GR3x
RICOH GR3x
RICOH GR3x - 피로를 퇴치한 흔적마저 숨기는 궁극의 피로사회
RICOH GR3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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