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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향노루 Mar 09. 2023

사진을 선물하는 일상

행복한 잔재주


사진을 찍으면서 내가 즐기는 행위 중 하나가 바로 지인의 사진을 찍어 선물하는 일이다. 선물이라 하니 거창해 보이지만 그냥 결과물을 전달해 주는 거다.



필름 사진이든 디지털 사진이든, 본인의 자연스러운 모습을 누군가가 담아줄 기회가 그리 흔치 않은 게 사실이기 때문에 결과물을 건네주었을 때 재밌어하거나 좋아하는 표정을 보면 그렇게 내 마음이 뿌듯할 수 없다. 보잘것없는 재주지만 누군가를 잠깐이라도 기분 좋게 해 줬다고 생각하면 사진을 배운 게 참 잘한 일이라고 생각하 된다. 특히 처음에는 내 카메라를 피했던 사람이 오히려 적극적으로 카메라를 받아들이는 순간이 되면 마음이 말랑말랑 해지는 기분마저 든다.


그런데 카메라를 들고 다니다 보면 왕왕 카메라를 부담스러워하는 지인들도 있다. 특히 나처럼 카메라 분리 불안 수준이라면 그런 상황이 그리 드물지는 않다. 모두에게는 카메라를 거부할 권리가 있고, 나도 그것을 최대한 존중하는 편이다. 하지만 또 경험에 따르면 지인이기 때문에 대부분은 반복된 시도 끝에 마음을 여는 경우가 더 많다.


지인 촬영은 부차적으론 ‘인물 스냅 촬영 기회‘라는 장점도 있다. 대한민국처럼 일면식 없는 사람에게 더 배타적이고 공공장소에서도 초상권이 보호되는 환경에선 모델을 고용하거나 상호 무페이 촬영처럼 취미 영역과 프로 영역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는 수준이 아닌 이상 사람을 대놓고 찍을 수 있는 경우의 수는 주변인 밖에 없다. 특히 어떤 식으로든 모델을 촬영하는 사진은 일상적인 모습을 담는 게 아니라서 사진으로 돈을 벌고자 하는 의지가 없는 나로선 전혀 흥미가 생기지 않는다. 때문에 마음을 여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약간의 불편함이 익스큐즈가 되는 주변인 촬영을 끊임없이 시도하는 편이다.


내 카메라를 유독 거부하는 지인이 있다. 수년간 알고 지낸 사이라 편하게 카메라를 들이대는데 요리조리 잘도 피해 다니며, 간혹 촬영에 성공하더라도 ‘검열’에 열을 올리곤 했다. 얼마 전 그 친구가 내가 전해준 사진을 보고 말했다. 사진 찍힐 때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다고. 조만간 스냅사진을 한 번 찍어보고 싶은데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어색한 표정을 극복하지 못할 것 같아 망설여진다 했다. 카메라가 눈앞에 있으면 표정이 굳어서 사진 속 자기 모습이 어색하고, 그래서 카메라를 더 피하게 되는 악순환을 겪고 있는 셈이다.  


그간 그 지인의 행동이 모두 이해됐고, 나는 “신경을 안 쓰면 된다. 프로 모델이 아닌 이상 카메라를 신경 쓰고도 어색하지 않을 수 없다. 카메라를 보지 말고 사진 찍는 사람을 봐라”라고 조언했다. 말하고 보니 내가 지인을 찍으며 겪는 거부와 회피, 지속된 시도와 최종적 수용 자체가 모두 카메라가 아닌 나를 보게 만드는 일이었음을 깨달았다. 나라는 사람과 친밀도를 쌓고, 자주 카메라를 들고 다니고 찍으면서 나와 카메라, 나와 지인, 카메라와 지인 사이에 존재하는 모든 벽을 허무는 느린 과정이었다. 그리고 그 지인에게는 그 벽을 무너뜨릴 시간이 더 필요하겠다 싶어 조금 부드럽게 카메라를 들기로 마음먹었다.  


결국 사진을 찍는다는 것도 사람과 사람이 하는 일이다. 사람을 찍을 일이 많지 않으니 잊고 있었는데 내가 지인들을 찍어주는 것도, 지인들이 내 카메라를 받아들이는 것도 사진 때문이 아니라 나와 그들이 서로를 받아들였기 때문이지 싶다. 사진을 찍어주는 일상은 소소하지만 그래서 즐겁고 행복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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