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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배 Dec 10. 2020

IT 서비스의 ‘쉬운’ 문구

판교에서 문과로 살아남기 6장

얼마 전 미션이 떨어졌다.

가입 화면 안에 쓰인 문구를 조정해 스마트폰을 처음 쓰는 70대 할아버지도 알아듣게 하라는 것이었다.

신입사원 때 일일보고 썼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며, 원타임 UX writer로 일시적인 도움을 달라고 하셨다.


흥미로운 일이라 한 번 해보고 싶다고 했다.

너무도 재미있게 진행했고, 소정의 성과도 거두었다.


항상 정성적이라고 여겨졌던 ‘글’이 정량적 평가 대상이 된다는 것이 즐겁다.

어쩌다 더 좋은 문장을 찾아냈을 때는 엄청난 아드레날린이 분비된다.


내가 좋은 문구를 찾아냈던 과정을 기록해 보려고 한다.

글을 ‘잘 쓰기’ 보다는 최대한 ‘쉽게 쓰기’ 위해 노력 중이다.

전문 UX writer도 아니고, 그냥 부차적인 업무로 문구를 검수하는 사람의 기록으로 보았으면 좋겠다.


[우선 해야 하는 것은 A/B 테스트의 정의]


“문구를 쉽게 바꿔보라!”라는 오더가 떨어졌다.

그럼 덜컥 겁을 먹고 일단 서비스로 가서 문구부터 뒤져볼 것이다.

막상 문구를 보기 시작하면, 딱히 바꿀 게 없다.


처음에 만든 사람도 생각이 없었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읽다 보면 막 최초 생산자의 고민도 보이고, 공감도 되고 한다.

지금도 괜찮은데 뭘 바꾸라는 건지 막막하다.


‘기준’이 없이 시작했기 때문이다.


명확한 기준이 없이 다짜고짜 하면 감이 안 온다.

솔직히 ‘쉽게’라는 말이 뭐 사람마다 다른 거 아니겠나.

그러니 이 기준을 명확히 정하는 것으로 일을 시작해야 한다.


문구를 바꾼다면, 전에 작성된 문구와 성과가 어떻게 다른지 확인해야 한다.

이를 위해 우리 회사는 A/B test를 활발하게 하는 편이다.

“바꾼다!” 하고 우다다 수정된 문구로 바꾸는 것이 아니고, 일단 바꾸고 지켜보는 것이다.


A/B 테스트로 기존 문구와 수정된 문구의 이탈률이 어떻게 다를지 본다.

하지만, A/B 테스트에 앞서 개요를 작성하지 않으면 좋은 성과를 내기 어렵다.


4가지 정도를 명확히 정의해야 한다.

Jennfer Leigh Brown의 글을 읽고 내 식대로 바꾸어 활용하고 있다.

(링크: https://www.uxbooth.com/articles/5-steps-to-quick-start-ab-testing/)


#1. 목표

#2. 가설

#3. 변수

#4. 개념의 조작적 정의


#1. 목표는 테스트로 얻고자 하는 목표이다.

문구 수정으로 개설 화면에서 이탈률을 줄이고 싶다고 생각해보자.

이때 목표는 무엇일까?

“문구 수정으로 개설 화면에서 이탈률을 줄인다.”라고 바로 적을 수 있겠지만, 내 생각은 좀 다르다.


목표가 너무 모호하다.

더욱더 구체적으로 잡아야 한다.

이 생각이 나오게 된 질문으로 파고 들어가면, “문구가 ‘어려워서’ 이탈이 많나?” 였을 것이다.


그리고 이탈률을 줄이는 것은 궁극적 목표이다, 테스트 과정의 목표가 아니다.

테스트 과정에서는 수정 문구와 기존 문구의 지표를 ‘확인’하는 것이 그만이다.

최종적인 문구의 수정은 결과를 보고 나중에 결정해야 하는 것이다.


종합해보면,

“문구의 ‘어려움’으로 개설 중 이탈이 있는지 ‘확인한다.’”

이것이 테스트의 목표가 될 것이다.

이렇게 구체적으로 정해야 좋은 테스트를 할 수 있다.


#2. 가설은 목표의 문장을 테스트가 가능하도록 적으면 된다.

앞서 정한 목표는 “문구의 어려움으로 개설 중 이탈이 있는지 확인한다.”였다.

이를 가설의 형태로 적으면 아래와 같다.

“현재의 문구를 어렵지 않게 바꾸면 사용자의 이탈이 줄어들 것이다.”


#3. 변수는 테스트를 진행할 요소이다.

문구를 바꾸는 것 테스트 요소는 ‘텍스트’로 한정되어야 한다.

가끔 그런 욕심이 들 때가 있다.

“아 이거 테스트하는 김에 화면 구성도 살짝 바꿔볼까?”


이러면 A/B 테스트의 목표부터 가설까지 모든 것이 흔들린다.

변수를 여러 개 잡으면 결과를 보고도 결단을 내릴 수가 없다.

어떤 것이 영향을 미쳤는지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변수는 명확한 하나로 잡는 것을 추천한다, 테스트 시간이 터무니없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4. 조작적 정의는 추상적 개념을 과학적으로 바꾸는 과정이다.


전공이 사회과학인지라 ‘조작적 정의’에 대해 익숙한 편이다.

사회 현상을 실험할 때 추상적 개념을 과학적으로 정의하는 것이 조작적 정의의 일종이다.

가령 “사람은 부끄러우면 얼굴이 빨개진다.”라는 명제를 실험할 때,

‘부끄러움’을 “갑작스럽게 많은 사람에 노출될 때 느껴지는 기분” 등으로 정의하고,

사람의 수를 변수로 정의하는 행위들이다.


이렇게 정의를 해야 수정의 기틀을 마련할 수 있다.

추상적으로 남겨 놓으면 수정 후까지 추상적으로 남아있을 수밖에 없다.


나의 경우 보통 요구 사항이 ‘복잡하지 않게’, ‘어렵지 않게’, ‘번잡하지 않게’ 등으로 들어왔다.

이 개념을 조작적으로 정의하는 것이 너무 어려웠다.

한 번은 하고 일을 해야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아래와 같이 정의했다.

복잡함, 번잡함 등 각종 부정적 개념은 결국 ‘어려움’의 하위 개념인 것 같아, ‘어려움’으로 특정했다.


‘어려움'의 조작적 정의
ㄱ. 단순하지 않음 – 핵심 정보 외 불필요한 단어가 있는가.
ㄴ. 익숙하지 않음 – 일상에서 쓰이는 단어와 차이가 있는가.
ㄷ. 일관되지 않음 – 문체가 통일되지 않았는가.


여러 아티클을 읽으며 결정한 정의이다.

좋은 글과 문구에 대하여 토론하는 아티클에는 보통 이 세 가지 개념이 명시되어 있더라.


이렇게 조작적으로 정의하고 나니, 일이 조금이나마 편해졌다.

기존의 문구를 ‘불필요한 단어 없이, 일상의 표현으로, 통일된 문체를’ 사용하여 바꾸면 되었기 때문이다.


이제 어떻게 내가 실제로 이를 적용하는지 말하겠다.


[문구 바꾸기]


며칠 전 에어비앤비를 보니, 아주 긴 서비스 안내 페이지가 있더라.

좋은 예시로 삼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가져왔다.

괜찮은 것 같으면서도 읽기가 싫은 컨텐츠이다.

그럼 이제 왜 읽기가 싫을지 찾아보아야 한다.

나는 여기서 빨간색 박스, 파란색 박스를 이용한다.


 빨간색 박스  -> 핵심 정보

 파란색 박스  -> 일상적이지 않은 용어



먼저 필요한 핵심 정보들은 빨간색으로 체크한다.

없어도 되는 정보들은 과감하게 버리는 과정이다.

그러다 보면 꽤나 많은 불필요한 정보들이 전달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후, 필수 정보들 중에 일상적이지 않은 용어들이 있는지 확인한다.

혹은, 해당 페이지에 어울리지 않는 용어 인지도 체크한다.


‘만나보세요’는 언뜻 보면 괜찮아 보이지만,

해당 페이지는 ‘이용방법’이 궁금해서 들어온 페이지이다.

“나 어떻게 쓰는지 궁금해요!” 라는데 “여기서 만나보세요!” 뭔가 대화가 이상하지 않나.


“일상적이지 않다.”를 체크할 때는 단순히 어려운 것을 찾기도 하지만, 대화의 흐름이라고 생각했을 때 어색하지 않은지 체크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적합한’, ‘트리하우스’ 등은 모두 내 기준에서 일상의 대화에서 잘 사용되지 않는다는 느낌이다.

모두 체크해둔다.


그다음 체크하지 않은 부분을 걷어내고, 체크한 부분을 수정한다.

최대한 쉬운 대화체로, 목적을 살리면서 말이다.

아래는 개인적으로 수정한 수정본이다.



좀 읽기 편해졌을까. 모르겠다. 나는 노력했다.



이렇게 일한다. 기준을 세우고, 기존의 문구를 체크하고, 최대한 알기 쉬운 단어로 교체해가며 말이다.

매일 같이 고민하며 바꿔보지만, 예상과 다르게 흘러가는 지표를 보면 자괴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도 재미있다.

글도 과학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정말 신기하다.

조금 더 좋은 방법론을 찾아, 조금 더 편안하고 읽기 좋은 문구를 찾기 위해 앞으로 노력해 볼 것이다.


문구에 고민하고 있는 주니어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기를 바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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