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무원은 실내를 분주하게 오가며 승객에게 마실 것을 권했다. 고분고분 사람들은 일단 한 잔씩 받아 들었다. 잠시 뒤 열차는 출발했다.
좌석은 4인이 한 조로 서로 마주 보게 되어 있었다. 성준은 패키지여행으로 중남미 여행을 떠났는데, 함께 온 65세 및 70세 할머니와 마주 앉았다.
중앙 테이블에 따뜻한 커피가 든 컵들을 올려놓은 후, 할머니들은 신발을 벗고 양반다리를 했다.
성준은 며칠간 이들과 함께 여행을 하며 여러 감정을 느꼈다. 어르신들이 국내외 여러 곳을 여행하신 후 이렇게 먼 중남미까지의 발걸음을 했다는 것은 대단했다. 다만 성준도 같은 돈을 내고 온 패키지여행이었기에, 동등한 대우를 받고 싶었는데..... 가이드에게나 심지어 성준에게까지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대접을 받으려는 듯한 인상도 받았다.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그랬기에 기차에 마주 보며 앉은 성준의 마음은 그리 편치 않았다.
산악 열차는 경사진 비탈을 따라 오르기 시작했다. 아무리 레일 위를 달리는 기차라 해도 좌우로 심히 흔들렸고, 가끔은 통통 철로 위에서 튀어 오르기도 했다. 엉덩이가 들썩들썩, 옆 사람과 어깨도 툭툭 부딪혔다. 그러던 중 커피가 든 컵에 손을 내밀던 한 할머니의 어깨를 지나가던 승무원이 중심을 잃고 넘어지며 툭 쳤다.
"어.... 안 돼!!!!! 최아악!"
컵이 탁상 위에서 넘어지며 커피를 쏟아냈다. 상의 가장자리로 흐른 커피는 바닥으로 뚝뚝 떨어졌는데, 벗어둔 신 안으로도 들어갔다. 옷이며 신발이며 모두 커핏물이 묻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승무원은 연신 사과를 했다. 성준도 당황했다. 슬그머니 할머니들의 눈치를 살폈다. 어떻게 나오실지 궁금했다. 그런데 그때 한 할머니가 웃기 시작했다.
"하하. 괜찮아요. 그럴 수 있지요. 하하."
같이 온 할머니도 따라 웃었다. 승무원은 재빨리 휴지를 구해와서 연신 탁자를 닦고 옷과 신반에 묻은 커피를 치우며 눈치를 봤다. 성준은 뒷수습을 어떻게 하려나 고민스럽다가도 일단은 유쾌히 웃어넘기는 할머니들과 함께 웃었다.
왜 하필 산악 열차에서 커피를 줬는지 따지고 들면 끝이 없다. 아마도 흔들리는 열차에서 이번 한 번만 커피를 엎질렀으랴. 이러한 상황에서 충분히 예민하게 반응하며 화를 낼 수 도 있었던 승객이었지만, 성준은 인생의 지혜를 하나 배웠다.
웃음으로 불쾌할 수 있는 상황을 넘긴 그녀들의 모습에서 '해학'과 '여행의 의미'를 곱씹었다. 원치 않는 상황에서도 웃어넘길 수 있는 여유! 그날 이후로, 성준은 함께 여행한 할머니들을 바라보는 관점이 너그러워졌다. 그녀들이 꼬장꼬장한 할머니들로 기억되기보다는, 인생을 즐길 줄 아는 어르신으로 성준의 머리에 자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