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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교달 Dec 09. 2021

스스로 인생의 길을 찾는 아이들

무관심과 기다림의 힘

나는 2016년 제주의 국제학교에서 베트남에 있는 국제학교로 이직했다.

국제학교 행정 직원들은 아무리 직급이 높다 해도 자녀의 학비 무상혜택은 없다. 패컬티 계약이 된 직원들만 가능하다. 아이들을 국제학교에서 교육시키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연구했다. 몇년을 준비한 후 마침내 아이들과 함께 베트남의 국제학교에 패컬티로 이직하게 되었다.


늘 아이들을 생각해서 직장을 옮겼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한국이 그리운 저녁엔 괜한 불똥이 아이들에게 튄다. 불금인데 만날 친구들도 없고, 드라이브도 못하며, 마땅하게 쇼핑을 갈 곳도 없다. 방에서 친구들과 채팅하며 유튜브 탐색 중인 아이들에게 공부 안 한다고 괜한 잔소리를 했다. 어쩌면 영어로 친구들과 끊임없이 채팅하는 아이들은 JTBC 뉴스룸 본방 사수하는 엄마보다 훨씬 빨리 영어가 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큰 아들 녀석은 제주에서 중학교 2학년까지 다니다 국제 학교 8학년으로 진학했다. 전학하기 전 두 달간 집중 영어 과외를 받은 게 아무 소용이 없었다는 것을 전학하고 바로 깨달았다. 과외 공부가 도움이 좀 되냐고 물었더니 전혀란다. 그 돈으로 흑돼지나 더 먹고 올 것을 하는 생각에 후회스러웠다.


작은 학교의 장점을 온몸으로 받은 아들 녀석, 같은 반에 있는 친구 2명과 신나게 어울리며 영어가 늘기 시작했다. 그 후 11학년이 되면서부터는 장학생으로 선발된 20명의 친구들과 같이 공부하느라 가랑이가 찢어졌으리라. 몸무게가 세 자릿수지만 학교 운동은 절대 빠지지 않았다. 서귀포에서 운동 다니자고 용돈 주면서 쫓아다녀도 궁둥이도 들썩 안 하던 녀석이, 34도가 넘는 주말에도 축구반을 빠지지 않았다. 그렇게 운동을 시작하더니 몸무게가 20키로 가까이 빠졌고 싱가포르 트라이애슬론을 다녀온 후 아이가 달라지는 것이 눈에 보였다. 그 어려운 IB Diploma 프로그램을 공부하면서 자기 주도적 학습을 하고 영국 대학에 진학하게 되었다.



4학년 2학기로 전학 온 딸 녀석. 아무것도 알아들을 수 없던 수업이었을 텐데, 반년 만에 나보다 영어를 잘하게 되었다. 6학년이 되어 월드 스콜라스 컵 영어 대회에 본인 용돈으로 참가하더니, 밥만 챙겨준 엄마 미안하게 2차 대회에 참여할 기회를 얻어 메달을 목에 걸고 돌아왔다. 상을 너무 퍼준 거 아니냐고 한마디 했다가 주변 아줌마 친구들한테 왕재수 엄마로 찍혔다. 그 후 괜한 말장난같은 자랑을 하는 대신, 스스로 열심히 하는 아이를 칭찬해주기로 맘을 바꿨다. 현재 10학년인 아이는 줄곧 일등을 놓치지 않았다.  케이 팝 댄스 방과 후 교실에서 리더로 춤을 가르치고, 학교 간 스포츠 대회에 모두 참여했다. 오빠의 공부 뒷바라지에 치여 학원 한번 제대로 보내주지 못한 엄마가 늘 미안하게 딸은 스스로 공부를 해냈다.



가만 생각해 본다. 워킹 맘으로 아이 둘을 키우는 동안, 나는 이 아이들에게 무엇을 해주었을까. 남들처럼  제대로 지원해주지 못한 미안함도 많지만, 그래도 자기 일에 책임을 다해 열심히 일하는 엄마의 모습이 아이들에게 본이 되었을까?


 밥 먹으며 애들에게 물었다. 어려운 국제학교 공부를 스스로 잘 해낸 이유가 무엇이냐고.


엄마 칭찬하는 소리를 기대했던 나에게 아이들은 한국에서보다 잔소리 덜하고 신경 덜 써준 게 도움이 됐다는 시크한 한마디를 내뱉는다. 아이들은 이미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파악하고 있었다. 다만 때를 기다려 주지 못한 부모가 닦달하는 심정으로 잔소리를 하고 학원에 돌리고 성적으로 맘 상하게 했을 것이다. 


한때는 모두 어린이였다. 어른은 빨리 할 수 있고, 어린이는 시간이 걸리는 것만 다를 뿐이다. - 어린이라는 세계 -


감명 깊게 읽었던 어린이라는 세계라는 책에서 기억나는 내용이다. 긴 인생의 마라톤에 어떻게 페이스를 조절할 것인지 파악하는데 어린이들은 시간이 좀 걸릴 것이다. 먼저 조금 앞서있다고 이래라 저래라 훈수 두지 말자. 어른이 빨리 할 수 있다고 다 잘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아이들이 스스로 할 수 있는 시기가 될 때까지 부모는 곰처럼 쑥을 씹으면서 좀 기다려주면 어떨까? 기다리다 때로는 호랑이처럼 뛰쳐나가거나 포효하고 싶더라도 참아내는 것이 부모의 참다운 역할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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