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USTAIN EATS Feb 28. 2023

닭파는 대기업의 마스터플랜(2)

하림과 애그리비즈니스

하림은 어떻게 치킨의 왕이 되었나



이즈음에서 많은 사람들이 떠올리고 있을 하림을 필두로, 국내 육계 산업은 90% 이상이 수직계열화로 이뤄져 있다. 하림은 이전까지 독립적으로 운영되어 왔던 사료 시장, 부화(병아리) 시장, 도계 및 유통 시장을 통합적으로 시스템화 했다. 국내 닭고기 시장은 ‘하림천하’라는 말이 곧 육계수직계열화 사업의 결과물이다. 



작은 종계장의 성공신화로 일컬어지는 하림의 성장에 궤도가 되어 준 것이 바로 수직계열화 사업과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이다. 실제로 당시 정부는 국내 축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정책자금, 특히 육계 산업에 할당된 정책자금의 많은 부분을 하림과 같은 거대 기업의 성장을 돕는 데 쏟아 부었다. 2017년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농림축산식품부는 2007년부터 사료산업종합지원금 268억 원을 하림, 선진, 참프레 등 6개 기업에 지원했고, 이 중 75%에 달하는 202억 원이 하림과 하림 계열사인 선진에 지원된 것으로 나타났다. 


소나 돼지와 같은 축산업에는 농가의 시설 현대화 등의 명목으로 비교적 직접적인 지원이 이뤄졌지만, 육계 부분은 정책 자금의 대부분이 계열화 업체에게 집중된 것이다. 그 결과 하림은 IMF라는 국가적 위기 속에서도 몸집을 불릴 수 있었다. 




우리가 먹는 닭고기는 순수 계통의 종자(원종)로부터 3대를 걸쳐 만들어진다. 하림은 원종계 병아리를 해외에서 수입하고 육종만을 전문으로 하는 계열사에서 26주간 육성한다. 이후 원종계가 산란한 알을 부화시켜 종계 병아리를 생산한다. 종계란, 씨를 받기 위해 기르는 닭이라고 보면 쉽다. 종계가 낳은 알을 종란이라고 부른다. 이렇게 탄생한 병아리들이 자라서 소비자의 식탁에 오르는 육계가 된다. 이 병아리들은 위탁 사육농장으로 보내져 35일 가량(5주령) 비육된 후 가공과 유통을 거쳐 우리가 먹는 닭고기가 된다. 그리고 하림이 키운 닭과 병아리는 해외에서 직접 조달한 곡물로 만든 사료를 먹고 자란다. 위탁 농가에서도 당연히 이 사료만을 사용해야 한다. 



하림의 연혁은 수직계열화가 산업 전반을 어떻게 지배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교과서다. 하림의 전신인 ㈜코리아데리카후드는 병아리 위탁사육 시스템을 도입하고, 계약을 맺은 농가에 사료와 부자재 및 시설을 공급하는 대신 수수료를 지급하는 방식을 추진했다. 1998년 정부의 육계 계열화 업체로 지정된 후 ㈜하림을 설립하며 계열화 사업은 더욱 탄력을 받게 된다. 1991년에 익산 도계가공공장을 준공하고, 1992년에는 김제에 사료공장을 준공하였으며 1996년에는 익산에 부화장을 준공했다. 양계를 중심으로 후방산업인 사료와 비료 사업, 전방산업인 가공과 유통을 모두 포섭한 것이다. 



실제로 하림지주 홈페이지의 연혁에는 1997년을 ‘삼장통합 경영 완성’의 해로 명시하고 있다. 수직계열화와 전후방 산업 지배가 하림의 성장에 필수기반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후 하림은 애완견 사료 산업에도 진출하고 농수산방송을 출범하여 유통 산업에도 박차를 가한다. 하림의 성장은 계열화 사업의 표준이 되었고, 체리부로나 마니커와 같은 후발 주자들도 같은 방식을 답습하며 육계 산업의 수직계열화는 더 고도화되었다. 그리고 앞서 언급했듯이 국내 육계 농장의 90% 이상이 수직계열화 아래에 있다. 



빅 치킨, 자이언트 하림



계약 농가의 사정은 차치하더라도 기술 발전으로 생산성이 향상되어 2000년을 전후로 국내 닭고기 시장은 늘 포화 상태였다. 경쟁 기업의 증가와 수입 축산물의 유입은 아무리 독보적인 하림이라도 새로운 먹거리 탐색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하림은 2007년 축산사료 전문기업 선진을 인수하는 것을 시작으로 양돈 분야까지 사업을 확장한다. 현재는 동물 의약품 제조부터 농업 전문 캐피탈, 커머스, 외식 프랜차이즈, HMR(가정식 대체식품, 일종의 즉석식품)까지 생산자와 소비자를 막론하며 먹거리 시스템에 영향을 행사하고 있다. 



하림지주 홈페이지에 소개된 주요계열사로는 팬오션, 제일사료, 하림, 선진, 팜스코, NS홈쇼핑이 있는데, 이 구분은 하림이 식품 산업에서 궁극적으로 도달하고자 하는 큰 그림을 짐작하게 한다. 주목할 것은 해양운송업체 팬오션이다. 팬오션은 1966년 범양전용선 주식회사라는 이름으로 시작하여 벌크화물을 운송하는 대형 선사로 성장한 기업인데 2015년 하림에 인수되었다. 



2021년 기준으로 매출액의 11%가 곡물사업에서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는데, 기존 주력 사업인 벌크선 서비스에 비하면 적은 비중이지만, 하림이 글로벌 애그리비즈니스 기업으로의 포부를 드러냄에 따라 이 비중은 점차 증가할 것으로 짐작해볼 수 있다. 모기업인 하림지주의 사업에서만 보더라도 사료의 원재료인 수입 곡물의 안정적인 확보는 매우 중요하다. 가축사료를 포함했을 때 우리나라의 곡물자급률은 20% 안팎으로 매우 낮은 수준이다. 기후변화와 국제정치의 흐름 속에서 해외 의존율이 높은 곡물 수입권 확보는 권력의 확보와 같은 개념이다. 그리고 수직계열화 구조 속에서 하림의 배합사료 시장에 대한 영향력은 더욱 막강해질 것이다. 



2019년 기준으로 팬오션은 시가총액과 자산, 매출 모두 하림그룹 내에서 1위를 차지할 만큼 중요한 계열사로 자리매김했다. 실제로 하림은 팬오션을 인수하며 대기업의 반열에 올랐다. 김홍국 하림그룹 회장은 팬오션을 인수할 당시 ‘한국판 카길(Cargil)로 키우겠다’는 포부를 드러내기도 했다. 



카길은 전 세계 곡물시장의 40%를 장악하고 있는 세계 최대 곡물 유통업체이다. 종자 산업부터 시작해 식물성 오일, 가축 사료와 비료, 가공식품과 감미료, 바이오 에너지까지 다양한 영역에서 카길이라는 한 기업이 세계 먹거리의 40%를 장악하고 있는 것이다. 소비자는 카길을 모르지만, 코카콜라의 감미료나 맥도날드의 햄버거 패티, 감자튀김에 뿌려진 소금으로 카길을 소비하고 있고 대체육 시장에도 카길이 있다. 하림이 카길을 모델로 글로벌 애그리비즈니스를 지향하는 것은 먹거리 산업에서의 지배력을 강화하겠다는 의미이다.




(계속)


 마은지


이 글은 지속가능한 미식 잡지〈SUSTAIN-EATS〉 4호에 수록된 글입니다. 종이잡지에서 더 많은 콘텐츠를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