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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STAIN EATS Oct 11. 2019

거짓말쟁이의 목을 조르는 법(2)

베티나 슈탕네트 『거짓말 읽는 법』

마침 전두환이 아직 살아있으니 이 책의 실습 목적으로 전두환의 거짓말에 대해 생각해보려 한다.


전두환은 자신의 회고록에서 “1980년 5월 당시 나는 광주의 어느 곳에도 실재하지 않았다. 광주사태를 전혀 알아채지 못했고, 광주에서 진행된 작전에 조언이나 건의도 할 수 없었다.”라고 하여 광주 시민의 가슴에 한 번 더 못을 박았다. 그는 회고록뿐 아니라 정치에서 물러난 이후부터 지금까지 줄곧 광주학살의 책임을 부정해 왔다. 슈탕네트는 거짓말이 완전해지려면 거짓말하는 사람의 주관은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고 말한다. 이에 따르면 전두환은 사이코패스가 아니라 전략적 거짓말쟁이임이 분명하다.


1996년 이미 재판에서 죄를 선고받았음에도 지금까지 전두환이 거짓말을 계속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일단 전두환에게 “왜 거짓말을 하세요?”라는 질문에 답을 듣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유를 답하면 자신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인정해야하기 때문이다. 이미 전두환의 의식 저변에는 자신이 만든 세계가 참이라는 진심과 기대가 내재해 있을 것이다. 그는 연희동 자택에 은둔하며 ‘자신이 만들어 낸 세계’에서만큼은 진실 된 자로 남길 원할 것이다. 쌓아둔 재산을 빼앗기지 않는 것이 자신의 마지막 사명이자 권리이며 부모 된 도리라 생각하면서 말이다. 때문에 진실규명과 사죄를 요구하는 국민의 목소리는 그에게 단지 자신이 만들어 낸 세계를 위협하는 적일뿐이다. 그의 거짓말은 너무도 진심이어서 더욱 우리를 분노케 한다.

     

두 번째는 법과 정치가 국민의 의사와 달리 그에게 면죄부를 준 사실을 악용하여 자신이 만든 ‘거짓 세계’의 기반을 다지고 ‘진실 사회’에 혼란을 가하려는 목적이다. 전두환은 1997년 대법원의 판결 중 일부를 왜곡하여 자신의 변호하고 있으며, 현재까지도 그 주장을 고수하고 있다.


대법원은 광주재진입작전의 살상 행위를 내란목적살인죄의 유죄근거로 판단했지만, 5월 21~24일의 학살에 대해서는 책임 소재가 명확하지 않다고 밝혔다.(“5월 21일 육군본부로부터 2군사령부를 거쳐 광주에 있는 계엄군에게 이첩·하달된 자위권 발동 지시를 내용으로 하는 전통을 발령하거나, 그 다음날인 5월 22일 낮 12시 자위권 발동 지시라는 제목으로 된 계엄훈령 제11호를 하달함에 있어 이에 관여했다고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다”) 결코 전두환의 혐의를 벗겨주는 판결이 아님에도 그는 이것을 “발포 명령을 하지 않았다”라고 확대해석하며 자신에게 유리하게끔 인용하는 것이다.


이러한 거짓말은 슈탕네트가 말하는 이른바 ‘전술적 인용으로서의 속임수’에 해당한다. 이 방법은 타인을 완벽히 속이는 거짓말을 만들어낼 순 없지만, 타자(대법원의 판결)의 말을 인용한 것이라 주장함으로써 객관성을 확보하고 비상 탈출구를 마련하는 효과가 있다.


이 거짓말이 정말 위험한 이유는 이것으로 인해 사회에 형성되어 있는 신뢰에 균열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법이 거짓말쟁이의 편을 들 때(혹은 그렇다고 보여 질 때) 우리를 보호해주는 가장 공정한 수호신이 잘못되었다는 의심을 시작한다. 이렇게 거짓말쟁이가 하는 거짓말과 그로 인해 만들어내는 거짓은 사회의 신뢰를 무너뜨린다. 진실에 의구심이 들면 판단력에 영향을 미친다. 슈탕네트는 ‘판단력이 흐려지면 협력은 이뤄지기 힘들다. 신뢰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믿게 만드는 것보다 더 거짓말다운 거짓말은 없다.’고 말한다.

     

전두환이 거짓말을 하는 것에 분기탱천하여 그에게 진실 된 사과를 요구하는 것은 마땅히 해야 할 일이지만, 더불어 그의 거짓말이 궁극적으로 이루고자 함이 무엇인지 분석하지 않는다면 진실을 수호하는 기반은 약해질 수밖에 없다. 우리가 믿고 있는 사실은 너무도 당연한 진실이므로, 이까짓 거짓말에 현혹되는 사람이 있겠느냐 호언해선 안 된다. 그렇다면 ‘전두환 각하’를 추종하는 300만이 넘는 일베 회원이 생겨난 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


마지막으로 전두환의 거짓말의 만들어 낼 결론이다. 우리는 저 지독한 살인마와 그 후손들이 몇 천 억대의 재산을 손에 쥐고 떵떵거리는 현실에 회의감을 느끼고 분노한다. 하지만 슈탕네트가 분석한 거짓말은 우리에게 약간의 희망을 품게 한다. 슈탕네트는 책의 처음부터 ‘거짓말하는 사람은 본인이 거짓으로 만들어 낸 세계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명확히 말한다.


거짓말하는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루려 현실의 행동 공간을 꾸며내려 하지만, 본질과 어긋난 자유는 오히려 구속을 뜻할 뿐이다.(72쪽)     


인간들이 합리적인 목적의 관심으로 의기투합한다면 거짓말이 들어설 공간은 사라지며, 무엇보다도 거짓말은 그 매력을 잃는다.(218쪽)  


전두환은 지금 자신이 만든 거짓말에 갇혀 있다. 자신이 참으로 여기는 것을 이용하여 지속적인 안전을 도모하는 행위는 결과적으로 자기 자신도 속일 수 있다는 믿음으로 이어진다. 이는 곧 자기기만이자 자기 부정이다.


반면 우리는 어떠한가? 우리는 그의 거짓 세계에 속해 있는가?


9월 16일 뉴스타파는 광주에서의 학살에 전두환이 직접적으로 관여한 정황을 보여주는 문건을 입수하여 보도했다. 전남도청 앞 집단발포 다음날 전두환이 언론사 대표들과의 기자간담회에서 ‘광주상황을 수시로 보고받고 있으며, 시가전을 각오한 일대 작전을 펼쳐 2시간 이내에 광주를 진압하겠다.’는 등의 발언이 담긴 문서였다.(출처: 뉴스타파)


약 40년이 지난 이 사건의 뒤를 쫓는 언론과 국민이 여전히 건재하다는 것은 알량한 거짓말에 속지 않겠다는 다짐이자 거짓에 대항하기 위한 진실을 두텁게 쌓아가는 과정이다.


또한 지난 8월에는 자신의 회고록에서 고 조비오 신부를 ‘성직자라는 말이 무색한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로 비난하여 사자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사건의 재판에 나타난 전두환에게 많은 국민이 분노를 표했다. 이에 대한 재판 결과는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적어도 전두환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진실’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그가 만들어 낸 세계 ‘외부’에서 그를 주시하고 있다.


내년은 5.18 광주민주화운동 40주기이다. 우리는 여전히 그를 잊지 않았으며, 그가 만들어 낸 거짓 세계에 갇혀 있지도 않다. 거짓말쟁이를 가장 효과적으로 막는 방법은 거짓말쟁이가 빠져나오지 못하는 권력을 형성하는 것이다. 우리는 진실로써 거짓말쟁이의 목을 조를 수 있다.


영화 <트루먼 쇼> 스틸컷ⓒ 해리슨앤컴퍼니


영화 「 트루먼 쇼」의 마지막 장면이 떠오른다. 트루먼이 크리스토프가 만들어 낸 안락한 거짓을 벗어나 진실을 선택한 순간, 크리스토프는 숨 쉴지언정 존재한다 할 수 있을까? 크리스토프는 그가 만든 거짓 세계에서 결국 자신만 빠져나오지 못했다.


지금 자신이 만든 거짓 세계가 점점 좁아들며 제 목을 졸라오고 있다는 사실을 전두환은 알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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