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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임스 리 Aug 15. 2021

4. 지향

'지향'의 의미를 한자 그대로 풀면, 뜻이 향하는 곳이다. 여기서 뜻은 곧 '마음'을 의미한다.


우리는 커피 한 잔을 두고 철학자가 된다

‘삶은 무엇이지? 나는 무엇을 위해 살고 있지? 잘 산다라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는 열심히 달려온 삶이 갑자기 공허하게 느껴질 때, 삶의 방향을 잃었을 때,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진다. 위 질문들의 답은 '삶의 지향'과 연관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마음의 본향을 찾기 위해 스스로 사색의 시간을 갖는 것, 이것은 우리들의 본능인 것 같다.

“여러분의 마음은 지금 어디를 향하고 있습니까?”


대동단결

요즘 각 정당의 대권 후보들이 당 내 경선을 벌이고 있다. 우리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것은 서로를 비방하는 네거티브 전략과 언행들이다. 그리고 같은 당임에도 불구하고 각 후보들의 ‘지향’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도 굳이 당내 경선주자들의 같은 지향을 찾자면, "우리 당에서 대통령이 나와야 합니다.",  "다른 당에서 대통령 나오는 것만큼은 막아야 합니다" 등의 유치한 지향을 볼 수 있다. 이것은 너무 낮은 수준의 ‘지향점’이다. 그래서 우리 국민이 ‘분열’이라는 아픈 시간을 보내고 있는지 모르겠다.


우리들에겐 국가의 주권을 잃은 아픈 기억이 있다. 한국사 마지막 황제였던 순종은 1910년 대한제국 주권을 포기한다. 하지만, 그로부터 7년 뒤 신규식, 신채호, 박은식, 조소앙 등 14인의 독립 혁명가들에 의해 우리의 주권은 다시 태어난다. 이들은 ‘대동단결 선언문’을 발표하며, 국민들에게 새로운 '지향'을 제시한다.  

(중략) 융희 황제(순종)가 삼보(영토, 인민, 주권)를 포기한 경술년(1910) 8월 29일은 즉 우리 동지가 삼보를 계승한 8월 29일이니, 그동안에 한순간도 숨을 멈춘 적이 없음이라. 우리 동지는 완전한 상속자니 저 황제권 소멸의 때가 곧 민권 발생의 때요, 구한국의 마지막 날은 즉 신한국 최초의 날이니, 무슨 까닭인가. 우리 대한은 무시* 이래로 한인의 한이오 비한인의 한이 아니라. 한인 사이의 주권을 주고받는 것은 역사상 불문법의 국헌이오. 비한인에게 주권 양여는 근본적 무효요, 한국의 한민성이 절대 불허하는 바이라.(하략)
*무시: 시작을 알 수 없을 정도로 한없이 먼 과거        출처: 위키백과


위 선언문에서 눈에 띄는 단어는 ‘민권’이다. 이 민권이라는 단어는 주권을 잃은 7년이라는 시간 동안 독립 혁명가 14인은  수없이 많은 토론을 거쳐 다듬고 다듬어 탄생한 단어일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나라와 백성을 이끄는 정치인으로서 자신의 이익을 도모하지 않고 올곧게 자신의 성정을 세워 ‘대의’를 완성하였다. 민족과 백성을 위한 이 진보적인 선언문은 훗날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에도 큰 '지향'이 되었다.


이 대동단결 선언문은 요즘 언어로 이야기하면 '국민 대통합 선언문'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선언문에서 우리가 생각해 보고자 하는 부분은 ‘대의명분’이다. 대의는 한자어로 ‘클 대’, ‘옳을 의’로써 아주 크고 올바른 생각을 대의(Great righteous)라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명분은 대의를 따르게 되는 까닭, 이유를 말한다. 백성들은 이 선언문을 왜 따르게 되었을까? 그것은 사사로운 이익이나 이해관계가 얽혀 있지 않은, 크고 올바른, 아주 정직한 대의가 담겨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안에는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 한민족을 사랑하는 온전한 마음이 아주 강직하게 담겨 있음을 국민들은 느낄 수 있었다. 이 부분은 요즘 정치인들이 교훈으로 삼아야 될 포인트라고 생각한다. 결국 국민의 마음을 움직인 대의명분은 나라를 위한 ‘온전한 사랑’이었던 것이다. 정권 획득의 욕망을 대의로 포장한 위선적인 사랑이 아니라...


요즘 우리는 대의가 실종된 사회 속에서 살고 있다. 정치계도, 종교계도, 기업들도…. 그렇기 때문에 그 내부 안에서조차 같은 지향을 바라보지 못하고 있다. 다양성은 존중받아야 하지만, 개인적인 이기심, 집단 이기심 가운데 탐심이 바탕이 된 다양성은 우리 사회를, 우리 조직을 통합시키기 어렵게 만든다. 따라서 우리의 사사로운 이기심은 잠시 내려놓고, 먼저 '대의'가 무엇인지 모색하고, 그 '대의'가 우리들 마음에 지향이 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대의'의 핵심은 공동체를 향한 '온전한 사랑'임을 잊지 말자. 이기적 탐심이 아닌...


한줄기 빛과 희망

분열과 갈등의 사회 속에서 대의를 위한 화합과 통합, 대동단결은 이제 먼 옛날이야기가 된 것일까? 하지만, 인간의 이기심이 만들어낸 다양한 사회 문제와 심각한 자연환경 문제 속에서도 여전히 희망의 빛은 우리 주변에서 반짝반짝 빛나고 있다. 그 빛의 본질 앞에서 우리가 추구해야 될 '지향'을 발견하게 된다.


지구 온난화로 세계 곳곳이 산불로 큰 고통을 겪고 있다. 2020 도쿄 올림픽이 열리는 기간 터키는 이백 군데가 넘는 곳에서 산불이 발생하였다. 올림픽에 출전한 터키 여자 배구 선수들은 한국과 8강전을 앞두고, 실의에 빠져 있을 자국민들에게 승리로써 위로와 용기를 보내주자며 전의를 다졌다. 하지만 결과는 안타깝게도 경기에 패해 8강 진출이 좌절되었다. 코트의 선수들은 눈물을 흘리며 크게 슬퍼하였다. 승리로써 자국민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보내겠다는 바람이 좌절되어 더 크게 오열한 것이었다. 이 사연을 접한 한국인들은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를 통해 해시태그(pray for turkey 터키를 위한 기도)와 함께 격려의 글을 보내기 시작하였다. 어느 날 한 네티즌이 ‘팀 코리아(Team Korea)’라는 이름으로 터키에 묘목을 기부하자고 제안했고 해당 트윗은 2만 회 이상 리트윗 되었다. 수많은 이들의 마음과 마음을 연결하며 '마음의 릴레이(relay of hearts)'로 이어졌다. 이러한 선한 행동의 물결에 대해 터키 환경단체에서는 자신의 홈페이지를 통해 답장을 보내왔다. 한국민을 배려하여 한쪽 면은 한국어로 적혀 있다. 그리고 시작의 첫 문장에서 한국인을 ‘친구(friends)’라고 부르고 있었다.

마치 이 일은 우리가 어릴 적 친구와 주고받던, 순수했던 모습을 떠오르게 한다. 울고 있는 친구에게 다가가 “울지마”라는 말과 함께 건넸던 사탕. 사탕을 받은 친구는 눈물을 훔치며, “고마워”라고 말하며 웃는 모습…. 이 모습은 코트에서 오열하는 터키 선수들을 위로하기 위해 작은 방법이라도 찾고자 했던 네티즌들의 마음, 그 마음과 함께 전한  묘목. 묘목을 받은 터키의 환경보호 단체는 국민을 대신해 “고마워, 친구야.”라고 감사의 편지를 전하는 상황과 일치한다.

이 일은 정부의 가이드가 있었던 일이 아니다. 시민 스스로 자발적으로 이루어 낸 일이다. 어느 국제정치 전략이 이런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을까? 두 나라 국민들의 마음을 친구로 만들 수 있을까? 본질은 진심 어린 '온전한 사랑'이다.


또 하나의 사례는 일명 '돈쭐' 사례이다.

코로나로 힘겨운 시간을 보내면서 남을 생각할 여유를 가질 수 있을까? 홍대 인근에서 작은 치킨집을 경영하는 한 자영업자는 매일 빈 테이블을 보며 걱정이 더해갔다. 그러던 어느 날 “오천 원어치만 치킨 먹을 수 있어요?”라고 찾아온 가난한 어린 형제에게 가장 인기 있는 치킨 한 마리와 콜라를 무료로 대접을 하였다. 그리고 문을 나서는 형제에게 “치킨 먹고 싶으면 언제든지 와.”라는 말을 건넸고 철없는 동생은 그 이후로 형 몰래 찾아가서 치킨을 대접받았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알게 된 형은 손편지를 써서 프랜차이즈 치킨 본사에 감사의 마음을 전했으며, 이를 계기로 자영업 사장님의 선행이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그리고 이 사실을 알게 된 네티즌들은 ‘그 사장님 (혼쭐이 아닌) 돈쭐을 내주자’며, 또다시 마음의 릴레이로 이어졌다.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를 통해 찬사와 격려, 그리고 주문은 봇물을 이루게 되었다.


위 두 사례를 보며, 우리가 잃었던 ‘대동단결’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정치인들은 국민 대통합을 말하지만, 국민들은 이미 한마음으로 마음의 물결을 이룰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의 시민 의식이 성숙해지고 있음과 옳은 일에 대한 분별력이 살아 있음을 보여주는 매우 긍정적인 신호이다. 또 한 편으로 이 일들은 우리가 추구해야 할 ‘지향’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한 단면이기도 하다.


새로운 지향

4차 산업혁명, DX시대….

예측하건대 앞으로 5차, 6차 산업혁명은 출현할 것이다. 또 OO시대라는 이름이 붙어서…. 이러한 급변하는 시대 흐름 속에서 중요한 것은 '대응'이 아니라 '지키는 것'이다.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 오감을 곤두 세우기보다 '대의'를 지키고자 하는 마음이 우리들의 삶을 윤택하게 만들 것이기 때문이다.

창조주가 만드신 세상, 이 인류를 정상 작동케 하는 매뉴얼의 첫 단계는 개개인의 마음에서부터 시작된다. 마음의 지향이 어디를 향해야 할 것인가? 이제 사랑의 대상과 관심을 '나와 내 가족'에서, '이웃과 동료'로, '사회와 인류'로 확산시켜야 한다. 왜냐면, 그 지향과 대상이 변화될 때, 우리 인간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세상은 행복감이 배가 되도록 설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늘날과 같은 분열된 사회가 아닌, 새로운 화합된 사회를 만나게 될 것이다. 지금도 창조주는 '온전한 사랑'으로 하나가 되는 인류의 모습을 기대하며, 인내하고 계시는지 모른다.

사랑의 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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