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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빛구슬 Sep 05. 2020

딸의 눈물은 성장의 신호였던 걸까?

청춘의 눈물

딸의 눈물


 왜 진작 말하지 않았을까? 불안하고 외로우면 엄마를 찾을 일이지 왜 말도 않고 혼자 견뎠을까? 딸의 눈물에 가슴이 아팠다. 딸의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나의 무심함에는 화가 났다. 그런데 한편으론 그 눈물이 반가웠다. 그건 딸이 흘린 눈물만큼 마음은 성장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신호였기 때문이다.


 서울에서 내려온 딸이 집에 들어서자마자 제일 먼저 한 말은


 "엄마, 우리 집이 이렇게 넓었어?"였다.


 20년을 사는 동안 생전 하지 않던 말을 독립을 해보고 난 후에야 하는 걸 보면 지금 살고 있는 집?(방)이 작기는 어지간히도 작았나 보다.


 딸은 5평의 원룸에 살고 있다. 방 하나에서 모든 것이 해결되는 완벽한 시스템이다. 그 공간에는 침실이 있고, 공부방이 있고, 부엌이 있고, 화장실이 있다. 여기에선 잠자는 공간으로도 부족했을 그런 공간이 먹고 자고 씻는 다목적의 공간이 된다. 그런 이유로 침실도, 공부방도, 부엌도, 화장실 모든 것이 작고 좁다.


 그럼에도 난 그곳이 좁은 공간으로만 남을 거란 생각은 하지 않았다. 왜냐면 그곳은 딸이 그토록 바라던 자유와 해방의 공기가 넘실거리는 공간이니까. 그런데... 그게 다가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곳엔 방안을 꽉 채우고도 남을 자유가 있었지만 그것으로도 감당이 안 되는 존재가 있었다. 작고 초라했지만 혼자인 딸의 시간을 야금야금 갉아먹어 몸집이 부풀 대로 부픈 아귀와 같은 그런 존재. 외로움이었다.


 딸은 자신의 물건이 담긴 보따리를 던져놓고는 낯선 집이라도 방문한 것처럼 집안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구경을 했다. 자기의 집을 신기해하는 딸의 모습은 어이없으면서도 슬펐다.


 '아이고, 네가 사람이 고파도 한참 고팠구나'


 그렇게 술래가 되어 집안 구석구석을 돌아다닌 딸은 한동안 잊고 있었던 기억을 떠올리며 돌아온 탕자로서의 기쁨을 만끽하고 있었다.


나만 뒤처진 기분이야

 집으로 돌아온 후 딸이 예전의 모습으로 빈둥거리다 친구를 만나고 온 어느 날이었다. 딸의 귀가 시간은 늘 예측이 불가했다. 딸이 친구를 만나고 오는 날은 오늘인지 내일인지를 알 수 없는 경계성이 애매한 어떤 날이다. 그런데 그날은 일러도 너무 이른 시간이었다.


 "어? 무슨 일이야? 오늘은 왜 이렇게 일찍 들어왔어? 설마 코로나 때문에?"

 "뭐 그런 것도 있고. 친구들이 다들 바쁘네"

 "그래 친구들은 뭐 하느라 그렇게 바쁜데?"


 나의 질문에 난데없이 눈물을 글썽거리던 딸이 씻겠다며 화장실로 들어갔다. 예상치 못한 딸의 반응에 놀란 나는 침대에 앉아 씻고 나올 딸을 기다렸다. 그런데, 화장실에서 훌쩍이는 딸의 목소리가 들렸다. 예상이 맞았다. 딸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거다.


 "ㅁㅈ야,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잠깐 나와 봐"

 "응. 세수만 하고"


 세수를 하고 나온 딸의 얼굴은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무슨 일이냐고 묻는 나의 질문에 딸은 참고 있었던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딸을 침대에 앉혔다. 안아주고 다독였다. 무슨 일인지 물었다.


"엄마 그동안 나 외로웠어. 엄마에겐 말하지 않았는데 난 내가 아무것도 해 놓은 게 없어서 늘 외롭고 불안했어"

"네가 뭘 해야 하는데? 이제 시작하는 사람이 뭘 해야 한다고 불안해해?"

"친구들은 다 뭔가를 준비하는데 나만 아무것도 않고 제자리걸음인 거 같아. 다들 사회에 나갈 준비를 하는데 나 혼자 시작도 않고 있잖아."


 이게 무슨 말인가? 철부지 딸이 자신의 진로를 고민하고 있다. 대학생인지 초등학생인지 구분이 모호할 정도로 어려 보였던 딸이 자신의 미래를 걱정하느라 눈물을 흘리고 있다. 정상대로라면 딸은 대학교 3학년이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 대학교 1학년에 재학 중이다.


 딸은 이곳에서 대학을 다니다 자퇴를 하고 다시 대학엘 갔다. 편입도 아니고 입시를 치르고서다. 이곳의 대학에 비해 특출 나게 좋은 대학도 아니고 지방에선 나름 인정받는 국립대를 두고 서울의 사립대로 갔으니 큰 메리트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서울로 가야겠다는 생각에 치른 입시였다. 그러는 동안 딸의 야무진 친구들은 행시를 준비하고 임용을 준비하는 등 자신의 미래를 준비하고 있었다. 심지어 딸 근처에서 살던 친구는 시험 준비를 위해 휴학까지 하고 학원 근처로 이사를 간다고 한다. 낯선 곳에서 대면 수업도 없이 코로나로 힘들어할 때 힘이 되어 준 친구들인데 그런 친구들이 딸의 곁을 떠난 것이다.


 딸은 친구들보다 늦게 들어선 출발선에서 불안해하고 있었다. 한참을 앞서 달리고 있는 친구들을 보며 마음이 조급해진 것이다. 살아보니 1년이나 2년이라는 시간은 긴 시간이 아니었다. 지금의 인생에서 1년이 더 늦춰진다 한들 하고자 한 일을 못하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긴 인생을 살아본 내가 느끼는 1년과 이제 갓 성인이 된 딸이 느끼는 1년에는 차이가 있었다. 딸에게 1년은 불안과 좌절을 안겨주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딸에게 늦지 않았음을 이야기했다. 인생 2막에서 이제 막 걸음마를 떼고 있는 엄마가 있다는 것도 이야기했다. 시작은 늘 두렵고 부족하지만 알 수 없는 게 인생 아니겠는가. 그러니 자신의 삶을 소중히 여기며 언제나  삶의 주인이 자신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일러주었다.


 두려움에 떨고 있는 딸에게 말하고 싶다. 


 '청춘아, 너무 불안해하지 마라. 네가 꿀 수 있는 꿈과 시간은 무한하단다. 절망 앞에 좌절하고 무릎 꿇지 않으면 얼마든지 앞으로 나갈 수 있단다. 아니 무릎 꿇어도 다시 일어서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겠니? 멈추지만 마라. 1년이 대수고 2년이 대수겠느냐? 천천히 움직인다 하여 불안해할 필요도 없다. 시나브로 나가고 있는 너의 모습이 발걸음을 멈춘 그 자리에서 보일 것이다. 부디 네 삶을 네가 원하는 대로 가꿀 수 있는 삶의 정원사가 되어라. 너의 눈물을 땅 속 깊숙이 흩뿌려 뿌리를 튼튼하게 만들거라. 청춘, 엄마에겐 눈물 나게 아름다운 이름이다. 바라보기만 해도 너무 예쁜. 

너는 지금, 청춘이다.'

 

청춘이 보내온 밥상, 우리 집 청춘은 잘 먹고 잘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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