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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빛구슬 Oct 13. 2023

나들이 하기 좋은 가을, 담양을 찾아서

가을에는 온화해진다. 마음이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더위가 어느 순간 소리도 없이 자취를 감췄다. 얇은 블라우스를 입고 출근했다가 화들짝 놀라 어이없게 히터를 바라봤다. 며칠 전만 해도 에어컨에 의지해 생활했는데 마음의 변화가 참으로 간사하게 느껴졌다. 계절이 추석을 전후로 완벽하게 얼굴을 바꾼 것이다. 본격적으로 가을의 문턱에 들어섰다.


이런 가을에는 일교차 또한 크니 주의해야 한다. 자칫 방심했다간 감기에 걸리기 십상이다. 낮 동안의 청명함과 따사로움은 아침, 저녁으로는 쌀쌀한 공기를 제공하여 몸을 움츠리게 만든다. 더위로 느슨해진 몸이 갑작스러운 추위에 소스라치게 놀라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이런 반응 하나하나가 몸이 우리에게 보내는 신호는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날이 차가워지고 있으니 어서 몸을 움직여 열을 내라는 심도 있는 의미의 신호. 그래서 가을에는 집에만 머무르는 걸 경계해야 한다. 햇빛을 보기 위해, 살랑이는 바람을 맞기 위해 우리는 가까운 자연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부드러워진 공기를 맞이해야 한다.


지난 주말 담양에 있는 관방제림엘 다녀왔다. 햇빛을 느끼고, 바람을 맞으며 공기를 호흡하기 위해서였다. 피부에 와닿는 햇빛의 순함과 공기의 신선함으로 계절의 변화를 실감했다. 여름날의 햇빛은 따갑게 머리를 찔러 화를 불러오지만, 가을날의 햇빛은 시인의 차분한 기도처럼 따스하다. 성난 화산처럼 부글거리던 마음이 잔잔한 호수가 되는 것이다. 그런 온화함은 스쳐 지나간 사람들의 얼굴에도 있었다. 그들이 지나간 자리에는 명랑한 웃음소리가 끊임없이 재잘거리고 있었다.


내가 걸었던 관방제림은 관방천에 있는 제방의 이름이다. 관방제가 유명해진 것은 관방천을 따라 멋스럽게 조성된 거대한 나무숲 때문이다. 2km에 달하는 풍치림(멋스러운 경치를 더하기 위하여 가꾸는 나무숲)은 관방제를 관방제림으로 불리게 만들었으며, 1991년에는 천연기념물로 지정하게 했다. 잘 조성된 나무숲 하나가 제방과 어우러져 멋진 관광자원이 된 것이다.

관방천에서는 오리배를 탈 수 있다. 어린이를 위해 자동차 모양의 배도 있다.
광방천을 가로지르는 징검다리. 안전하나 운치 있지는 않다. 돌로 만든 징검다리가 위쪽에 있다.

관방제림의 관방천 위에서는 오리배를 탈 수 있고, 천을 가로질러 놓여 있는 징검다리 위에서는 물속을 헤엄치는 작은 물고기들을 관찰할 수 있다. 징검다리 위에 쪼그리고 앉아 물고기들이 헤엄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저절로 물멍을 하게 된다. 잠시나마 물아일체가 되는 것이다. 그렇게 자연과 노닐다 보면 서서히 배가 고파 오면, 근처에 있는 국수의 거리를 찾으면 된다.

담양 관방제림 근처 국수의 거리. 야외 식탁에 앉아 관방제림을 보며 국수를 먹을 수 있다.


국수의 거리는 관방제림을 따라 길게 늘어서 있는데, 노천에 식탁을 놓아 관방제림을 보며 식사를 즐길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여름이라면 에어컨이 없는 환경이 짜증이 날만도 한데, 가을날의 선선한 바람은 뜨근한 국물을 들이킬 수 있는 이곳을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장소로 만들어준다. 혹시라도 국수를 싫어하는 사람이라면 광방천을 따라 조금만 발길을 옮기면 또 다른 음식들을 만나볼 수 있으니 그 부분에 대해선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다.


국수의 거리에서 음식을 즐기고, 배가 부르다 싶으면 가까이 있는 죽녹원에 들러 산림욕 하는 것도 권해 본다. 죽녹원은 담양의 대표적 명소로 담양군이 추진한 대나무숲 조성사업에 의해 만들어진 테마공원이다. '대나무 숲으로 이루어진 공원'이란 뜻의 죽녹원에서 울창한 대나무들이 들려주는 속삭임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세상의 시름이 사라지는 편안함을 느낄 것이다. 잠시나마 세상을 따스하게 바라보는 눈과 순한 말을 하는 입을 얻는 것이다.  


이만큼 즐겼는데도 시간적 여유가 있다면 차를 타고 자리를 이동해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 주변에 있는 메타프로방스를 방문해 보는 것도 좋다. 메타프로방스는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 근처에 조성된 테마파크인데, 메타세쿼이아길의 메타세쿼이아와 프랑스 남부 휴양도시 프로방스가 합쳐져 만들어진 곳이다. 이곳에서는 프로방스 지역에서 볼 수 있는 이국적인 형태의 건축물들을 볼 수 있고, 다양한 기념품들도 구경할 수 있다. 구경하다 지쳤을 때 찾을 수 있는 카페와 식당이 많아, 아이들과 함께 가더라도 큰 걱정 없이 구경할 수가 있다.


담양의 메타프로방스 내 건물들
담양의 메타세쿼이아길

사계절이 뚜렷한 나라에서 각 계절이 주는 매력에 순위를 매길 순 없지만, 유독 마음을 차분하게 만들어주는 계절이 따로 있으니 그 계절에 밖으로 나가 활력을 충전해 보는 건 어떨까? 순한 마음을 하고 순한 마음의 자연과 호흡해 보는 건 어떨까? '다음에 나가지 뭐' 하다가는 자칫 가을을 놓쳐버리는 실수를 저지를 수 있으니, 이 가을, 그가 떠나기 전에 냉큼 잡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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