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이 만들어 준 반찬
"상추를 싸 먹을 때 직접 손을 대서 싸서는 안 된다. 먼저 수저로 밥을 떠 밥그릇 위에 놓고, 젓가락으로 상추 두세 잎을 들어 밥을 싼다. 적당한 크기로 싼 밥을 먼저 입에 넣고 난 다음 된장을 떠먹어야 한다. 너무 크게 싸서 입 안이 다 보이게 벌리고 먹는 것은 상스러우니 조심해야 한다."
상추를 싸 먹을 때 손을 써서는 안 된단다. 입 안이 다 보이게 벌리고 먹는 것은 상스러우니 조심하란다. 내가 존경에 마지않는 청장관(이덕무의 호)님의 말씀이시다. 그분의 많은 것을 따르고 싶지만 이 방법은 도저히 따르지 못하겠다. 반면 그의 벗 유득공의 시는 나를 감동시킨다. 쌈의 정수를 보여주는 것 같아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는 쌈을 먹을 줄 아는 사람이다. 그가 쌈 싸 먹는 방법을 한번 보자.
밥숟갈 크기는 입 벌릴 만큼
상추 잎 크기는 손안에 맞춰
쌈장에다 생선회도 곁들여 얹고
부추에다 하얀 파도 섞어 싼 쌈이
오므린 모양새는 꽃봉오리요.
주름 잡힌 모양은 피지 않은 연꽃
손에 쥐어 있을 때는 주머니더니
입에 넣고 먹으려니 북 모양일세.
사근사근 맛있게도 씹히는 소리
침에 젖어 위 속에서 잘도 삭겠네.
사근사근 씹히는 소리, 상큼한 소리다. 이런 소리는 아무 계절에나 어울리지 않는다. 어울리는 계절이 따로 있다. 바로 요즘 같은 계절이다. 사방천지에 푸르름이 올라오는 지금, 세상의 푸르름이 쌈을 싸 먹으라고 신호를 보내는 것 같다.
그래서 나도 마당 한 귀퉁이에 마련된 텃밭에서 채소들을 따왔다. 이제 막 살이 차오르기 시작한 여리디 여린 잎들이다. 채소 중에는 모종을 사다 키운 것도 있고, 겨우내 땅 속에 숨어 있다가 돋아난 채소도 있다. 머위와 당귀, 명이나물이 땅 속에 있다 올라온 채소라면 상추와 배추는 모종으로 키운 채소다. 채소를 많이 심지 않았는데 늘 우리 식구가 먹기 충분한 양을 제공해 주니 고맙다. 텃밭의 채소는 입맛이 없을 때나 마땅한 반찬이 없을 때 이용하기에 좋다.
쌈을 싸 먹을 때는 입이 커진다. 욕심이 많아서가 아니다. 채소 위에 올리는 재료가 많아서다. 채소 위에 밥 조금 넣고, 고기 한 점, 마늘장아찌 하나. 청양 고추 한 톨만 넣어도 쌈의 크기는 커진다. 커진 쌈을 입이 감당하지 못할 때는 남편을 보는 것이 민망스럽다. 그럴 때는 살짝 고개를 돌려야 한다.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식사 예절은 지켜줘야 하니. 그렇게 고개를 돌려 몇 번 오물거리다 보면 쌈은 금세 사라진다. 연한 잎일수록 빨리 사그라든다.
겨울에도 쌈을 먹었다. 하지만 봄, 여름에 먹는 쌈과는 차원이 다르다. 겨울의 쌈은 고기와 생선회가 주메뉴라면 이 계절의 쌈은 채소가 주메뉴다. 상추가 아니더라도 좋다. 한창 나오기 시작한 열무도 좋고, 머위, 취, 미나리도 좋다. 식성에 따라 고르면 된다. 몸에 좋은 쌈으로 이 계절을 즐겨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