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께서는 미뤄둔 숙제를 끝낸 것 같아 속이 시원하다고 하셨다. 알 수 없는 일이다. 속이 시원해야 한다면 일을 한 내가 시원해야지 왜 지켜보시기만 한 어머니의 속이 시원하단 말인가? 다소 가시가 돋친 듯한 이 표현은 일이 힘들었기에 하는 말이 아니다. 뭔가를 해결한다는 것은 빈둥거리며 미뤄두는 것보다 마음 편하고 뿌듯한 일이다. 하지만 떠밀리듯 그 일을 한다거나 남들은 하지 않는 일을 내가 의무처럼 해야 할 때는 고약한 놀부처럼 심술이 난다. 없던 심술마저 불끈불끈 솟는 것 같다.
무엇 때문에 이런 투덜거림으로 조잘거리는가? 일요일에 장을 담근 후 나의 소회를 말하는 것이다. 그날은 장 담그는 일을 끝내서 속이 시원하긴 했는데 알 수 없는 이유로 심통이 났다. 다른 사람들은 된장, 간장 담그지 않고 살아도 맛나게 음식 해서 잘 먹고 잘 사는데 나는 왜 의무처럼 된장, 간장, 고추장을 만들어 먹어야 하는가? 괜한 회의감에 투덜거림이 더 뾰족해졌다. 그것도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 일을 하면서 말이다.
이런 말을 하면 내가 무척이나 대단한 일을 해서 생색을 내고 있구나 생각하겠지만 대단한 일을 하지 않은 사람이기에 더 생색을 내고 씩씩거리는 것이다. 내가 그 일을 나의 일이라 생각하고, 내가 하고픈 일이었다 생각했다면 이런 씩씩거림 따위는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보다 남편이 더 원한 일이었고, 어머니의 지휘하에 일꾼처럼 한 일이었기에 꼬장 부리는 아이처럼 영양가도 없는 투덜거림을 남발하는 것이다.
사실 장 담글 준비는 설 전부터 하고 있었다. 설을 지낸 후에는 이제나저제나를 장 담는 날만을 기다렸다. 소풍을 기다리는 아이가 되어서가 아니라 시험을 기다리는 아이처럼 잘 보든 못 보든 얼른 해치우고 싶은 마음으로 말이다. 그렇듯 그 일은 후딱 해치우고 싶은 그런 일이었다. 해야 할 일, 끝마쳐야 하는 일이 아닌 해치우고 싶은 일이었다. 억지로 한 끼 먹는 밥을 때운다라고 표현하는 것처럼 반항적이고 성의 없게 해치우고 싶은 그런 일. 그래서 막상 일을 할 때는 후딱후딱 몸을 놀려 열심히 했다. 해치우기 위해. 전사처럼.
제일 먼저 남편이 옥상으로 끙끙거리며 올린 생수를 스텐 함지박에 부어 소금을 녹였다. 소금을 녹인 다음에는 메주를 씻어야 했다. 그리고 씻은 메주를 말려둔 항아리에 차곡차곡 쌓았다. 메주가 담긴 항아리에는 녹인 소금물을 촘촘한 망으로 걸러 채웠다. 쓰고 보면 별것 아닌 일이 실전에선 만만치 않은 일이 되었다. 그 양이 볼록한 항아리의 배를 채워야 하는 일이라면 더욱 그렇다.
메주가 담긴 항아리에 소금물을 채우자 어머니께서 성주신에게 빌었는지, 조왕신에게 빌었는지 알 수 없는 물과 소금을 가져오셔선 메주 위에 소복하니 올리셨다. 그 모습을 묵묵히 지켜봤다. 그 마음에 뭐라 말을 걸 수가 없었다. 장 담그는 일에 진심인 그 마음에. 삐딱한 마음의 내가.
장을 담고... 이유 있음
그날 내 마음은 왜 그렇게 뿔난 도깨비처럼 성을 내고 있었을까를 생각해 봤다. 일이 힘들어서? 그건 아니다. 그럼 가만히 있으면 알아서 할 일을 자꾸만 채근을 해서? 이유가 있었다. 공부하려고 마음먹은 아이에게 공부하라고 하면 더 하기 싫은 것처럼 열심히 장을 잘 담그려는 사람에게 자꾸만 장을 맛있게 담가야 한다고 말하는 어머니께 반항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였다.
내 나이 50. 아직 자라지 못한 마음이 내가 가르치는 초등학생의 마음을 하고선 여전히 일희일비하고 있는 것을 본다. 참 한심하다. 이런 사람이 나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