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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예 Aug 15. 2023

호주인 동료에게 Where is the Chai 갸류?

급하면 튀어나오는 한국어, 발음은 왜 굴리니

Where is the Chai 갸류~?


그러자 그 동료는 정확히 차이 가루가 있는 곳을 알려주었다. 가루는 분명 한국어인데 왜 내 발음은 갸류~? 라고 잔뜩 굴렸는지는 참 모를 일이다. 원래라면 그냥 Powder를 말하면 되는데 그 순간 파우더가 생각이 안 났다. 역시 일할 땐 센스가 중요하다. 그 호주인 친구는 일머리가 좋은 센스쟁이다 :)



아직 1주일 차 바리스타예요.


드디어 바리스타 일을 시작했다. 호주인들이 많이 찾는 로컬 카페 주말 바리스타가 되었다. 카페는 브런치 메뉴와 다양한 커피 메뉴를 판다. 오너 분이 주로 주문과 계산을 맡고 커피 파트, 키친 파트, 서빙/올라운더 파트 이렇게 나눠져 있다. (* 올라운더는 주문도 받고 물품도 채우고 설거지도 하는 등 많은 것들을 하는 역할이다.)


영어로 된 주문서를 읽고 그룹 핸들을 잡는다. 커피 원두를 가는 그라인더 버튼을 누르고 에스프레소 추출을 위해 꾹 누르는 탬핑을 한다. 커피 머신으로 돌아와 물을 한번 흘려보내고 그룹 핸들을 장착한다. 추출 버튼을 누르고 컵을 세팅한다. 우유를 저그에 따르고 스티밍을 위해 레버를 돌린다. 


이렇게 무한 반복을 한다. 그러다 문득 '어머, 내가 왜 여기 있지?', '나 진짜 바리스타 된 거야?', '여기 멜버른 맞아?' 정신없이 바쁜데도 틈틈이 이런 생각을 해준다. 


그렇다. 호주에 온 지 3개월이 지나 진짜 바리스타가 되었다. 그것도 호주 로컬 카페에서 혼자서 커피를 만드는 바리스타가 되었다. 바리스타가 되기 위해 어학원 바리스타 코스도 듣고 그곳과 연계된 커피 아카데미에서 실습도 했다. 또 학원에서 운영하는 미니 카페에서 피크 타임을 경험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곳에서 경험은 말 그대로 Very Easy였다... 


커피의 도시, 정말 맞다.


아침 7시 오픈하는 카페에 문이 열리기도 전에 커피를 사기 위해 몇몇이 서있다. 커피의 도시라더니 정말 그렇구나? 처음엔 아침부터 커피를 마신다는 사실에 놀랐다. 허나 돌이켜 보니 한국에서 직장인 생활 때 아침 출근길 지하철 안에서 스마트폰으로 아아를 주문해 놓고 걸어가며 커피를 채가던 내 모습이 생각나 그럴 수 있구나 싶었지. 싶었다가도!


아니? 오늘은 주말이잖아? 주말 아침 해뜨기 전부터 커피가 필요하단 말이야? 와우. 진짜 커피 러버들이 사는 곳이 맞나 보다. 기다리는 손님들의 모습은 꽤나 압박으로 다가온다. 채용 전 실제로 업무를 하는 트라이얼 때도 속으로 얼마나 미안했는지 모른다. 커피 한잔 한잔 맛을 보는 게 아니다 보니 내가 만든 커피가 정말 맛있을지에 대한 걱정이 들었다. 멜버른에서 수많은 카페를 다니며 카페 리뷰도 해보며 평가를 했던 나인데 이제 그 입장이 되니 바쁘면서도 빠르게 커피 맛을 지키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를 실감했다. 


운이 좋았다. 이 카페가 주말 바리스타를 새로 뽑게 된 과정에는 원래 일하던 한국인 바리스타가 곧 그만두게 되면서였다. 비자 문제로 일을 그만두게 되었다는 그분은 분명 일 잘하는 좋은 바리스타였을 것이다. 어디 내놓아도 싹싹하고 성실하게 일 잘하는 한국인을(*나의 스테레오 타입) 경험한 오너 분들은 채용 공고를 올리자마자 지원한 또 다른 한국인을 선택했다. 


경험도 매우 적고 트라이얼 때도 경력 많은 바리스타처럼 척척 해내지 못했다. 떨어졌단 생각을 하며 친구와의 약속을 위해 이제 가야 할 것 같다고까지 말했으니 말이다. 그렇게 떠나고 한 시간 뒤쯤 오너 분은 내게 "오늘 일은 어땠어? 우리 카페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라고 연락을 해왔다. '떨어진 곳에서 친절하게 문자까지 주나? 싶어 갑작스러운 희망에 둘러싸여 "다들 정말 친절했고 너무 고마웠어."라고 말했고 그렇게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영어가 안 튀어나와!


빠르게 커피를 만들어야 하는 시간에 동료에게 무언가를 물어야 할 때는 더 영어가 안 튀어나왔다. '나 분명 수많은 유튜브 보며 익혔고 어학원 다니며 영어 공부도 했고 이제 자신감도 꽤 찼다 생각했는데 왜 이러지?' 싶었다. 급할 땐 단지 "Can I~?"라고 말하며 손짓, 눈빛으로 원하는 것을 가리키면 센스 있는 사람들이 잘 알려주었다. 


그러다 "Where is the Chai 갸류~?"라는 명대사를 내뱉게 된 것이다. 


더 이상은 안되지 안돼. 커피만 만들 줄 알고 (심지어 엄청 잘도 아닌) 영어는 잘 못하는 바리스타는 될 수 없다. 그렇게 매일 그날 내가 경험한 장면, 실수, 개선할 것들을 리뷰하기 시작했다. 툭하면 튀어나오게 영어 대사들을 외우고 A부터 Z까지 커피 만드는 것을 다시 복기하며 더욱 더 진지하게 커피를 바라보고 있다. 


모든 것은 기본에서 시작된다는 손웅정 감독님의 말처럼(축덕은 명언도 축구에서 찾는다), 일할 때 사용하는 대사들도 달달 외우고, 머리가 하얘질 만큼 바쁠 때도 의식하지 않아도 내 손은 자동으로 커피를 만들게 반복하고 수많은 기본들을 다시 연습해 보는 수밖에 없다. 


불과 몇 개월 전 퀭한 눈으로 사무실을 향하던 때와 정반대로 눈에선 레이저가 나오는 열정이 막 피어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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