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홀 막차를 타고 있는 지금
수원이 집인 난 서울역에서 막차를 종종 타곤 했다. 서울에서 친구들과 놀고 집으로 갈 때나, 서울에서 야근을 하고 수원으로 향하던 때나. 막차를 탄다는 건 불안한 마음을 안고 가는 것과 마찬가지기에 아주 가끔 그 길을 택했고, 결정을 한 날에는 약간의 초조함을 품었다.
언제는 한번, 술 약속을 잡아 나름 꾸민다고 버버리 코트를 입고 우아한 척을 하며 서울로 향했다. 10시 50분이 넘으면 서울역에는 수원으로 가는 기차가 딱 하나만 남는다. 그날은 지하철로 서울역에 10시 40분에 도착해 막차를 놓칠까 봐 헐레벌떡 뛰었다. 벌게진 볼과 허리에 묶은 버버리 코트 끈을 붙잡고 뛰며 말이다. 또각또각 구두소리가 퍽퍽 날 정도로 체면은 버리고 땀을 흘리며 뛰던 그때를 잊을 수 없다.
막차를 타고 수원역에 도착해서도 마지막 버스를 놓칠세라 불안해했다. 교통 버스 앱을 계속 새로고침하며 차가 끊기진 않을지 계속 쳐다보곤 했다.
막차는 그런 존재였다. 최대한 그 방법은 피하려 했고 그럼에도 결정했을 땐 가는 와중에도 불안했다.
이상하게 오늘 그 불안감이 다가왔다. "이제야 행복해."라고 분명 저번주에 말했는데 말이지. 혼자만의 시간이 많아진 요즘, 걱정 인형이 다시 스멀스멀 올라와 막차를 타고 있는 지금 그리고 미래를 걱정하게 했다.
워킹홀리데이 막차를 타고 있다.
다시 서른, 마지막 서른에 호주에서 워홀 막차를 타는 중이다. 어딜 가나 워홀을 하는 사람들을 만나면 대부분 이십 대 초반, 어쩌다 중후반 친구들을 만난다. 몇 살이냐는 물음에 난 늘 "워홀 막차 타고 왔어요."라고 덧붙이곤 했다.
'막차'라는 상징적인 이름 아래에선 나의 도전 정신을 드러낼 수 있기도 했고, 늘 미루다 결정하는 게으름을 나타내기도 했다. 누군가는 "너무 멋져요."라고 말했고 누군가는 "돌아와서는 뭐 할 거야?"라고 묻기도 했다. 멋지다는 말을 들으면 속으론 '역시 내가 멋지지' 보단 '왜 자꾸 멋지다 하지? 선택 안 할 길을 골라서 그런가? 불안한 길이라 그런가?'라는 생각을 점점 하게 됐다.
그 말은 즉슨, 내가 불안했기 때문이지 않을까. "뭐 돌아가면 뭐든지 하겠지. 에이 어디라도 들어가지."라며 미래를 대답했지만 앞이 잘 보이지 않는 길을 걷는 중이기에 막차를 타고 버스를 타러 가는 길에도 불안해했던 과거가 생각이 났다.
막차 다음 타야 할 버스는 무엇일까
선택지는 다양하다. 선택지마다의 기회비용은 다르고 그 성공 여부는 나에게 달려있다. 늘 그랬듯, 오지도 않은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시간을 낭비하지 말자라고 다짐하지만. 선택을 해야 하는 시기가 다가오기에 또 그 선택에 따라 그 어느 때보다 미래가 크게 바뀔 것 같아 고민이다.
어젯밤엔 꿈을 꿨다. 꿈까지 나온 걸 보면 아닌 척 해도 속으론 정말 원하는 것인가 싶다. 호주로 오게 된 한편의 이유로 존재하는 곳에서 일하는 꿈이었다. 그래서 불안했나. 어떤 선택을 해야 거기로 닿을지, 이 결정이 맞을지 아직도 모르겠어서 그런가 보다.
그저 응원받고 싶은 그런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