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 호주 로컬 카페 손님들의 텃세인가
손님들이 사라졌다..! 그대는 어디에를 애절하게 부르고 싶게 하는 손님은 어디에... 어디로 가셨나요...? 이제 고작 정식 출근 3주 차다. 주말에만 일하고 하루는 빠져서 고작 4번째 출근이었다. 허나 3주 만에 달라진 상황에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사실 나보다 더 불안해 보이는 주인의 모습을 보니 불안해져 갔다.
그 말을 보았다. 호주 로컬 카페에서는 바리스타가 바뀌거나 마음에 들지 않았을 때 바리스타가 받는 텃세가 있다고. 호주에서 바리스타로 일하는 다른 한국인의 영상에서 보았다. 그땐 '아, 그렇구나.'라고 했지. 내 얘기가 될 줄은 몰랐다.
OO이는 어디 갔어?
저번주엔 단골 손님으로 보이는 분들이 이렇게 묻곤 했다. 그전 바리스타 분이 꽤 오래 일했다고 하니 이름도 알고 그 사람이 만드는 커피가 마음에 드니 또 왔을 것이다. 그분은 "여기는 가성비가 좋아서 오는 카페라 너무 걱정 말고 편하게 하셔도 돼요."라고 했지만 이렇게 손님이 바로 줄어들 줄은 누가 알았겠는가.
어제는 손님이 줄어 30분 일찍 마감했고 오늘은 손님이 없는 시간에 이것저것 잡일을 했다. 물론 손님이 확 몰리는 피크타임이 몇 번 있었지만, 도켓에 꽂힌 주문서 양이 거의 반으로 줄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가게에는 이탈리안 부부 사장님들과 올라운더 두 명, 키친 셰프 두 명 이렇게 일한다. 올라운더, 키친 셰프 한 명씩 빠져도 될 것 같은 분위기였다. 손님이 줄어든 이유가 나라면 내 존재가 이들의 일자리에도 영향을 줄 수 있을 것 같아서 미안한 마음과 위기감이 더 크게 엄습해 왔다.
처음 이 카페엔 트라이얼을 두 번 갔다. 한 번은 진짜 테스트하는 트라이얼, 그 다음 날은 인수인계 겸 나를 못 본 다른 사장님에게 나를 보여주기 위해 갔다. 그날 그 전 바리스타 분이 말했다. "바쁠 때 여자 사장님이 가끔 소리를 질러요." 또 그 다음주에 만난 호주인 올라운더 친구가 말했다. "주문 밀리면 린다(가명)가 샤우팅 할 때 있는데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라며 검지 손가락을 한 귀로 또 다른 손가락이 반대 귀로 나오는 제스처를 취하며 알려줬다.
'너무 바빠서 허둥지둥하다가 사자후를 지르면 어쩌지. 그런 상황이 다가와도 당황하지 말자!' 이렇게 마음먹었는데 바쁘지가 않아서 그걸 들을 일이 아직 없다. 하하.
웃을 일이 아니지. 눈으로 보이는 상황에 속으론 초조했으나 이 상황에도 온 손님들에게 정말 최선을 다하기로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매우 잘하는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초보 바리스타에, 멜버른 첫 직장에 매우를 붙이기는 역부족이지만 오늘 온 이 사람들만큼은 다음에 다시 오도록, 그러다 한 두 명 새 손님을 함께 데려올 수 있도록!
웃는 얼굴에 침 못 뱉지.
손님이 오면 올라운더보다 먼저 Hello~ Hi~를 외치고 손님이 가면 팔자주름이 깊어지게 웃으며 Thank you~ Bye~ See ya~를 외쳤다. 근데 커피가 맛 없으면 침 뱉기도 전에 안 오지. 그럼 그럼... 탬핑부터 심혈을 기울여 눌렀고 속으로 정신 바짝 차리자를 되뇌며 우유 스티밍을 했다.
단 하나 변명을 하자면, 호주는 우유가 들어간 커피를 많이 마신다. 라떼, 플랫화이트, 카푸치노가 삼대장이다. 다만 이 카페의 커피 머신에 달린 스팀 원드는 두껍고 짧고 강하다. 스팀을 할 때 파워가 세고 제대로 된 혼합이 되기 전 순식간에 온도가 올라올 수 있는 스타일이다. 가장 가까운 선생님인 유튜브를 떠돌아다니며 도움을 받았다. 이런 스타일은 최대한 빠르게 거품을 생성시키고 혼합 단계에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고. 파워가 셀 때는 구멍이 다 열리지 않게 각도를 찾는 방법 등을 배웠다.
수거해 온 컵을 보며 커피가 남았는지 확인하고, 모카가 남은 걸 보고 초코 파우더를 적게 넣는 것보단 많이 넣는 게 나을 것 같아 든든히 챙겼으나 너무 달았구나..! 싶어 양을 줄여보고, 커피가 배달된 후 자리에서 마시는 손님들을 몰래 쳐다보다 손님과 눈이 마주쳐 멋쩍게 웃기도 했다. 이렇게 온갖 눈치를 보며 커피를 맛있게 만들기 위해 조율 중이다. 위기의식은 늘 성장의 원동력이다. 스팀을 할 때 초 집중하는 힘을 발휘하며 두껍고 짧은 스팀원드에 적응했다. 조금 더 나아진 커피를 만들었다..! (손님이 없어 집중할 수 있던 시간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3달러에 기뻐하는 나
그러다 올라운더 친구가 한 테이블에서 3달러를 받아왔다. 갑자기 동전 세 개를 주길래 뭐지? 했는데 팁이란다. 이런 상황에 팁이라니? 이런 아이러니가. 콩 한쪽도 나눠먹는 거라 배우며 자란 나이기에 올라운더 친구 두 명과 함께 "오! 셰어 하자!" 했는데 아니라며 한사코 거절해 아 여기는 외국이지? 싶어 "Thank you!" 하며 받았다.
3명이 있던 그 테이블에서 한 명이 한 잔을 새로 더 주문해서 '오, 괜찮았나?' 했는데 팁까지 주었다. 자신감이 바닥이던 바리스타의 기를 올려주는 고마운 3달러였다.
짤려도 모른다. 어쩌겠어. 인정해야지.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집 떠난 손님들 돌아오도록 그냥 잘하는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