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 학생들의 피아노 수업시간
요즘 요가를 배우고 있는데, 꽤 재밌고 잘 맞는다.
요가는 "호흡"이 매우 중요하고 필수인 운동이다. 힘을 쓰고 빼야 하는 정확한 타이밍에 숨을 맞게 쉬지 않으면 동작에 더욱 깊이 들어갈 수 없거나 몸의 긴장이 풀리지 않아 다칠 우려가 있다.
스스로 불편하고 익숙지 않은 동작을 할 때에는 숨을 쉬는 것을 아주 의식적으로 하지 않으면 잊어버리게 된다.
한 가지에 맹목적으로 빠지게 되면 숨 쉬는 걸 잊는 경우가 많다.
피아노를 연습하거나 연주하는 동안에도 호흡의 역할은 꽤나 크고 중요하다. 음악의 흐름에 맞춰 호흡을 하느냐 안 하느냐에 따라 음악의 완성도와 표현하는 데에 있어 매우 다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phrase 프레이즈 : 악절을 이루는 단위.
articulation 아티큘레이션 : 선율을 이루는 작은 단위, 프레이즈 안에 다양한 아티큘레이션이 있다.
악보 안에는 다양한 음악 기호들이 존재한다. 악상을 나타내는 기호들, 속도를 나타내는 기호들, 감정의 표현을 지시하는 단어들, 그리고 아티큘레이션을 지키도록 해주는 여러 기호들이 있다. 그리고 음악의 흐름을 도와줄 화성이 프레이즈의 단위를 나타내 준다. 또한 화성의 전개 방식으로 띄어쓰기와 마침표, 단락을 나눌 수 있게 해 준다. 이러한 기호들은 음악을 서론과 본론을 나눠주고 주제가 있고, 격정에 치닫기도, 안정감 있는 스토리가 진행되기도, 사랑을 불러일으키기도 하며, 클라이맥스에 도달했다가 살며시 결말을 보이기도 한다.
나는 악보를 언어처럼 생각한다. 그리고 나 외에도 많은 음악 하는 사람들이 음악을 언어처럼, 그리고 소설처럼, 시처럼 표현을 하거나 받아들이는 사람이 꽤 많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악보를 보면 이야기가 보인다. 연주자는 자신이 해석한 악보를 보고 건반에서 낭독하듯 손가락으로 읽어낸다. 좋은 낭독자는 내가 하려는 이야기의 흐름을 온전히 이해하고 그것을 잘 전달해 주기 위해 강조해야 하는 부분, 자연스럽게 흘러가야 하는 부분, 맺고 끊어줘야 하는 부분을 완벽히 숙지하고 그것들을 잘 드러내기 위해 호흡을 해야 한다. 이러한 호흡의 방식이나 강도의 차이에 따라 연주자마다 그의 음악은 같은 음악도 다르게 해 준다.
작은 단위의 아티큘레이션을 표현할 때에는 짧은 호흡을, 음악의 흐름을 길게 이끌어가는 프레이즈를 위해 긴 호흡을 쓴다. 엉뚱한 곳에서 숨을 쉬게 되면 음악의 흐름이 끊겨 “아버지 가방에 들어가셨네”가 되기 십상이다. 아티큘레이션을 잘 지키면 곡에 생기가 생기고, 프레이즈를 잘 지키면 음악이 전달하려고 하는 이야기에 푹 빠져서 들을 수 있게 해 준다. 그리고 이러한 아티큘레이션과 프레이즈는 정확한 호흡에 따라 지켜진다. 간혹 녹음이 잘 된 앨범을 들어보면 어떤 악기이던 연주자의 숨소리가 크게 들리는 앨범이 있다. 그것들은 그대로 녹음에 들어가 있게 된다.
음악은 그냥 쓰이지 않았다. 자연스러운 호흡으로 이루어져 있다. 악보를 제대로 보지 못하는 단계에서 아직 내가 어떤 음을 치는지도 모르는 상태에서는 호흡까지 얘기하기는 어려운 부분이 있긴 하지만 어느 정도 악보를 익힌 후에는 무조건 숨이 같이 가야 한다. 숨을 잘 쉴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내가 꽤나 유연해졌고, 익숙해졌다는 증거이다.
일상에서는 숨이 나를 Relax 하게 해 준다. 어떤 상황에 있건 숨을 한 번 크게 쉬고 나면, 조금은 몸이 풀리고, 혹시 마음이 요동친다면 어느 정도 가라앉게 해 주고, 다시금 생각을 정리할 수 이게 해주며, 다시 걸음을 걸을 수 있게 만들어준다.
너무 익숙해서 의식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이 호흡은 여러 상황에서 나를 준비시켜준다.
자연스럽게 내 숨으로 붙기 전까지 연습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숨은 의식적으로 쉬어줘야 한다. 하지만 우리에게 숨이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기 때문에 의식을 가지고 음악을 연주를 하면서 숨을 쉰다는 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옆에서 계속 말을 해줘도 나와 같이 숨을 쉬지 못하는 친구들이 거의 대부분이다. 익숙지 않은 악보를 따라가며 내 열 손가락을 따로 움직이고 심지어 그것을 여러 기호를 따라야 하는 복잡한 상황 속에서 호흡까지 같이 하기란 너무 어려운 과제인 것은 맞다. 하지만 이 “호흡”만 잘 쓸 수 있다면 훨씬 더 빠르게 악보를 익힐 수 있을 것이다.
요가가 아직 서툰 나는 호흡에 가장 집중한다. 그러면 내 몸은 조금 더 풀리고, 깊어진다. 의식적인 호흡을 경험해보길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