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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하영 Aug 23. 2022

단순 반복의 함정

연주회에 올라가기 위해서는 암보가 필요하다.

암보 : 악곡을 암기하는 것.


악보를 외운다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사실 과거한창 피아노를 치던 시절에는 그래도 곧잘 외울  있었던  같다. 그만한 연습량이 따라줬기 때문이다. 무수히 많은 반복된 연습을 필요로 한다. 보통 연주회장에 올라가는 곡들은 악보의 양도  많고,  수도 길다.  악보를 외우려면 악보를 쪼개고  쪼개고, 반복에 반복을 거듭하며 연습을 하게 된다. 사람에 따라 암보 자체가 쉬운 친구들이 있기도 하고 나처럼 처음 악보 보는  빠르지만 암보에 느린 친구들도 있고,  어떤 이들은 악보를 보는 것부터 외우는 것까지 빠르거나 느리거나 케바케이다.


악보를 외울 때, 아마 먼저 손가락이 외워질 것이다. 지속적인 반복의 훈련을 거듭하다 보면 나의 머릿속으로 외워지기보다 손가락이 먼저 본능적으로, 반사적으로 가는 암기가 더 빠르게 찾아온다. 이 시기에도 충분히 무대에 올라서 연주는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위험성이 꽤나 크다.


자각 : 자기 자신을 의식하는 상태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다가, 갑자기 무언가 빵! 하고 머리를 치는 느낌, 그저 같은 길을 가다가 문득 정신이 번쩍 든 후 "가만, 어디 가는 길이었더라?" 혹은 "지금 내가 맞게 하고 있는 건가?"라고 무의식 같은 루틴에서 빠져나오게 되는 순간들이 있다. 그냥 하는 일이기에, 그냥 다니는 길이기에, 그냥 내 일상이기에 무의식처럼 반복됐던 일들에서 순간적으로 빠져나오게 되는 그런 순간.

우리는 무너지게 되는 경우가 있다. 스스로에게 확신이 들지 않고, 의심이 되고, 자신이 없어지고, 의구심이 드는 순간, 길을 잃고 방황하게 되고, 자꾸 돌이켜 보게 되고, 되짚어 보게 되고, 똑같았던 일상을 잃어버리게 되는 순간이 있다.


가끔 무대에서 연주를 하다가 머리가 새하얘 지는 순간이 찾아올 때가 있다. 손가락이 가는 대로 그저 흐름을 타고 신나게 연주를 하다가 뭔가  지점에서 잠시의 다른 생각을 마주하게 되면 내가 지금 치고 있는 구간에서 빠져나오게 되고, 어디를 연주를 하고 있었는지  정지가  적이 있다. 잘못된 연습이었던 것이다. 온전하게 악보를  눈에, 머리에 담지 않고, 그저 반복운동으로 인해 무의식으로 흘러가는 손가락에만 의존을 하게 되면 오는 오류이다. 완벽하게 음악을, 악보를 이해하지 않고 습관처럼 악보를 외우게 되면 이러한 순간이 찾아왔을  무너지게 된다.


연주회장에 올라 머리가 새하얘졌던 그 어린 시절, 그래서 난 자꾸 처음으로 도돌이표를 하다가 마지막 부분을 생각해내 겨우 끝만 맺고 내려왔던 기억이 있다. 선생님께서는 그래도 잘했다고 해주셨지만, (무대에서 울고 스탑 하지 않은 최악의 상황 모면이기에) 너무 아찔했던 기억이었다. 그 뒤로는 중간중간 혹시 모를 장치를 두고 내가 만약 정신을 놓으면 갈 구멍을 만들어 놓는 대책을 마련하게 되었다.


사실 일상에서도 평소에 자신이 어떠한 길을 가고 있는지, 옳게 가고 있는지 중간중간 스스로를 돌아보거나 마주하는 시간을 보내지 않는다면 이러한 순간이 찾아왔을 때 크게 헤매게 된다. 한 번에 너무 많은 시간을 그냥 보내지 않고 중간 점검하 듯 현재를 직시하고 나의 상황과 상태를 미리미리 체크해주는 게 이따금씩 찾아오는 의식화의 순간에 조금은 덜 타격을 받을 수 있다.

삶에서도 이러한 장치는 필요한  같다. 혹시 모를 나의 백지화, 포기 상태에 직면했을 , 어느 지점부터 다시 생각해보자, 다시 시작해보자, 하는 그러한 삶의 장치.

나만의 삶의 장치를 마련해보는 것이 어떨까. 너무 처음으로 돌아가지 않을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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