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 학생들의 피아노 수업
음악이라는 것.
예술이라는 것.
예술이라는 것은 뭘까? 에 대한 이야기를 참 많이 나눠왔다.
내 의견은 이렇다.
많은 시간을 쌓아 올린 것. 그래서 확신이 서는 것.
내 것을 남에게 내보일 수 있는 그러한 확신이 서는 결과물, 그를 위한 과정을 가진 것.
그리고 “예술가”라는 전문적인 분야를 맡고 있는 사람은
그러한 확신의 결과물에 비평에도 흔들리지 않거나, 받아들이고, 의연하게 받아칠 수 있는 것, 이라고 생각한다.
성인 취미 레슨을 하는 나에게 피아노를 배우는 친구들은 당연히 일반적으로 자신의 다른 직업을 가진 친구들이다.
이 친구들은 예술적인 음악을 배우고 있지만 “예술가”는 아니다.
그렇다고 이들이 하고 있는 배움이 예술이 아닌 것은 아니다.
적지만 시간을 들이고 있고, 투자를 하고 있고, 고민을 한다.
“예술가”는 아니지만 “예술”을 경험하고 있다.
정확한 말로 딱 부러지는 단어로 표현하거나 정의할 수 없는 그 어떤 형용사적인, 흘러가는 음악을 배워가고 있다.
피아노 수업 시간에는, 음악시간에는 정말 다양한 표현법이 나온다.
“손 끝에만 무게를 두고, 뼈 마디를 들어 올려, 다음 음까지 끊어지지만 연결은 되어 있듯이, 무거운 발걸음, 손목이 없다고 생각하고, 몽글몽글한, 축축한, 둥글 둥글게, 건반이 저 밑에까지 있다고 생각하고, 한 지붕 한 가족, 이음줄 넘어가면 옆집 침범하는 것”
등
사실 막상 수업 때는 나도 이런 말이 어떻게 떠오르나 싶은 말들이 줄줄 나오는데, 그것들이 다 터무니없는 표현법이라 친구들이 참 힘들어하면서도 나를 안쓰러워하면서도, 즐거워하기도 한다.
음악에는 다양한 언어가 쓰여 있다.
악상이나 빠르기를 표현하는 다양한 표기들 뿐만 아니라 정말 음악적으로 표현해 주길 바라는 작곡가들의 바람이 잔뜩 적혀 있다.
악보를 보면 참 숨은 그림 찾기 하듯 볼 것들이 너무너무 많다.
그래서 계이름만 봐오던 친구들이 다양한 음악적 언어를 경험하면 상당히 놀란다.
이 얘기는 다음에 한 번 다시 해보고 싶다 :)
오늘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렇게 단조롭게 설명하기 어려운 음악이라는 것을 배우는 친구들이, 자신들의 한계를 너무 작게 보지 않았으면 좋겠어서이다.
자신들은 음악을 하는 사람이 아니고, 너무 잘 못 치는 그저 학생이라는 틀을 스스로 만들어서 표현을 “자제”한다.
사실 우리는 음악으로 표현을 안 했을 뿐이지 모든 일상에서 관계에서 표현을 하고 산다. 그것들을 음악으로 꺼내보는 일들에 대해 그들은 스스로 벽을 만들고 자신은 당연히 할 수 없는 영역이라고 생각하고 시도도 하지 않는 모습을 본다.
하지만 정말 마음만 먹으면 자신이 원하는 데로 표현할 수 있다.
당연히 나만큼은, 우리가 흔히 듣는 앨범처럼은 못한다. (그건 나도 못한다)
그러나 내가 할 수 있는 영역은 분명히 존재한다.
자신이 할 수 있다고 마음먹은 친구들은 훨씬 음악적으로 다양하고 풍성해진다.
나는 우아하다
Sibelius의 13개의 모음곡 중 10번 “비가 Elegiaco”를 배우는 친구가 있다.
이 친구는 예전에 “비창소나타”를 배우기 위해 피아노를 시작했다가 지속적으로 수업을 듣고 있는 친구인데, 아주 겸손하고 그러면서 열정적인 친구이다.
연습도 수업 오기 전에 꼬박꼬박 연습실 빌려서 연습해 오고, 자신을 위해 시간을 쓰는 친구이다.
처음 시작했을 때 급한 성격과, 거친 터치로 인해 비창도 바로 시작을 못했지만, 차분하게 자신을 성장시켜서 쇼팽 녹턴도 치고 다양하게 음악을 배우고 있는 친구인데, 평소 성향과 맞지 않는 시벨리우스의 비가를 경험하게 되었다.
매우 섬세하고, 우아한 선율이다.
터치도 손가락을 건반에 잘 붙여 치면서도 가볍고 매끄럽게 넘어가야 하고, 강세를 매우 잘 건드려서 낭만적인 연주가 필요한 곡이다.
초반에 매우 힘들어했다.
오늘 마지막으로 그 곡을 하고 다음 곡으로 넘어갈 수 있었다.
홀로 연습할 때, 악보에 크게 써놨더랜다.
“나는 우아하다”
그리고 정말 프레이즈를 잘 정리해 와서 곡이 상당히 매끄럽게 넘어가는 것을 들을 수 있었다.
그녀의 음악과 움직임은 우아했다.
처음보다 훨씬 많이 마음이 열려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스스로 할 수 있다, 없다는
스스로만 판단할 수 있다.
내가 할 수 있다고 마음먹는다면 정말 다양한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이 친구 외에도
쇼팽 녹턴 15번을 도전해서 잘 마친 친구가 있다.
오늘 그 친구가 레슨을 마치고
“제가 진짜 이 곡을 쳤네요”
라고 이야기를 했다.
점점 욕심을 부려 진짜 할 수 있을까 하는 도전을 즐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신을 표현하기 시작했다.
전에는 수동적으로 주는 것보다 더 적게 받았던 친구들이,
이제는 홀로 더 많은 것들을 가져온다.
이러면 수업이 훨씬 즐거운 건 당연하다.
‘예술가, 프로‘ 에 대한 이야기는 할 수 없지만
적어도 이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만들어가고 있다.
예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손가락으로 자신을 표현하는 일들, 원하는 방향대로 음악을 만들어내는 일들.
완벽하지는 않아도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것들.
그거면 충분히 예술을 한다고 이야기해도 되지 않을까?
Jean Sicelius : 13 Pieces for Piano, Op.76 No.10 “Elegiac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