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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륫힌료르 Nov 22. 2019

하마터면 열심히 읽을 뻔했다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하완)'을 읽고


너무도 뜨거웠던 지난 8월 초, 친구들이 부산에 놀러왔다. 돌아다니기엔 너무 더워 뭘 할까 고민하던 차에 생각나서 들른 광안리 만화카페. 그곳에서 2시간여를 오션뷰와 바닷바람을 즐기며 누워있었다. 우연히 집어든 이 책,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를 그렇게 누워 2시간 만에 후루룩 다 읽었다.

나는 책을 읽고나면 항상 감상을 정리해둔다. 사람의 기억력이 으레 그렇듯 금방 그 줄거리와 느낌을 잊어버리기에. 그런데 이 책만은 그냥 메모하려 애쓰지 않고 힘을 뺀 채 읽고 싶었다. 가장 편안한 자세로 누워 여유를 즐기며 읽어도 괜찮을 것 같은 책이었다. 제목이 그래도 된다고 말해주고 있지 않은가?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는 출간되자마자 베스트셀러로 자리매김하며 큰 인기를 끌었다. 나 역시 실제로 읽어보기 한참 전부터 그 존재를 알고 있었다. 노무사 동기들과 이 책을 거론하며 우스갯소리까지 하곤 했다. 평소 "대충 살아"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K언니에게 언니가 쓴 책 아니냐면서. 그래서 한 번쯤 읽어보고 싶었다. K언니 같은 사람의 생각이 궁금하기도 했고, 노오력을 해도 모자란 세상에서 이런 책이 인기를 끄는 이유가 궁금하기도 했고.




책 속에서 저자가 가장 많이 쓴 단어는 '아무튼'이다. 국어사전 속 '아무튼'은 '~따위가 어떻게 되어있든'이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뭐가 어쨌든 상관없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처음엔 무작정 퇴사한 저자가 '아무튼'을 남발하며 대책 없이 사는 것 아닌가, 이 책이 이 나라 청년들의 현실감각에 안대를 씌우고 있진 않은가, 책임지지 못할 말을 늘어놓고 있는 건 아닌가 우려하며 읽어내려갔다. 뭐 저자야 퇴사 후 베스트셀러 작가가 됐으니 이제 먹고 살 걱정은 좀 덜었겠지만 보통의 청년들에겐 현실이 녹록지 않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막상 책을 다 읽고보니 요지는 "막 살아도 된다"는 게 아니라, "조금만 세상을 힘 빼고 바라보면 굳이 스트레스 받지 않고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것이었다. 저자는 막 사는 사람이 아니었다. 내가 정말 부러워하는, 긍정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이지.


"남들보다 7년이 뒤처졌다면 7년 더 살면 된다"


내 마음에 가장 크게 와 닿았던 문장이다. 정말 '갓띵언'이 아닐 수 없다. 평생 남에게 뒤처지기 싫어 미친듯이 학점관리하고 인턴하고 자격증을 딴 내겐 무척이나 새로운 시각이었다.


하긴, 인생 다 내 뜻대로 되는 것도 아니고 그렇게 된다고 해서 좋은 인생인지도 모르겠다. 한 치 앞을 모르는 게 인생인데 그 동안 너무 한 길만 봤나보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한 길로만 가고 있다는 건 다른 길을 포기하고 있다는 말"임에도 불구하고. 저자도 '열심히 사는 길' 대신 '열심히 안 사는 길'을 걸음으로써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지 않았는가? (물론 책 쓰는 순간엔 약간 열심히 살았을 수도 있다.)




이쯤되니 대학 첫 학기 때 들은 교양과목 '현대인의 행복과 문학치료'가 생각난다. 문학작품 해석을 통해 나의 특성을 진단하는 시간이었는데, 진단 결과 나는 강박성향이 강한 것으로 드러났다. 무엇이든 손에 쥐면 포기를 모르고 완벽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나는 결과에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완벽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한 치의 오차라도 발생하면 늘 무지막지한 스트레스를 받았기 때문이다.

나는 열심히 산 걸로 둘째 가라면 서러운 사람이다. 언제나 준비된 자에게 기회가 온다는 마음가짐으로 참 치열하게도 살았다. 문제는 열심히 산 것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속에서 내가 나를 너무 심하게 옥좼다는 것이다. 대학생 땐 학점이 4점을 넘지 못하면 큰일 나는 줄 알았다. 수험생 땐 불합격하면 내 인생은 실패하는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지금의 내 삶은 어떤가? 취업할 때 학점따위 보는 회사는 거의 없었으며, 노무사라 해서 노무법인에서 일하고 있지도 않다. 그땐 정말이지 인생에 정석이라는 것이 있는 줄 알았다. 학점이 좀 모자라도, 노무사 자격증이 없어도 '나'라는 사람의 가치가 떨어지는 건 아니었는데 말이다. 정 학점이 좋고 싶으면 재수강하면 되고 노무사가 되고 싶으면 1년 더 하면 됐는데. 그렇게 한 1~2년 늦어졌다고 한들 남들보다 1~2년 더 살면 되는 것 아닌가. 이 책은 그토록 긴장상태로 살고 있던 내게 "좀 힘 빼고 살아도 세상은 무너지지 않아"라며 심심한 위로를 해주고 있었다.





책의 첫 장을 펼칠 때처럼 마지막 장을 넘길 때도 K언니가 생각났다. 우린 다들 농담삼아 언니에게 "순천만의 평화로운 풍경을 보고 자라서 행복여왕이 됐다"고 한다. 이 책이 대중에게 힐링도서로 자리매김했듯 언니 역시 그 누구와 함께 있어도 사람의 마음을 편하게 해준다. 내가 "언니랑 주기적으로 만나서 행복특강 좀 들어야겠다"라고 할 정도니. 그런데 매번 "대충 살라"고 말하는 K언니는 그렇게 대충 살면서도(?) 노무사 자격증을 땄으며 한 번에 취업에 성공했다. 결과적으로 아등바등 산 나와 별 차이가 없는 것이다.

다시 처음에 품었던 의문, '노오력하는 사회에서 왜 이런 책이 인기를 끌까?' 하는 질문이 떠올랐다. 노오력을 넘어 노오오오력을 했는데도 인생이 내 뜻대로 되지 않으니까. 그 노오력을 하느라 청춘들이 지쳐버렸으니까. 다들 노오력하라고만 하지 누구 하나 "지금도 잘하고 있어"라고 말해주지 않았으니까. 그러니까 "마음 편히 먹어요"라며 속 편한 이야기를 하는 책이 인기를 끄는 것이다.


어느 여름날 가장 편안한 자세로 누워 2시간 만에 대충 읽은 책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 이를 통해 나는 뜻밖에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를 한 평수 더 넓히게 됐다(개이득).


이 책마저 영혼을 다해 정독했으면 어쩔 뻔했어? 하마터면 열심히 읽을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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