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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륫힌료르 Nov 13. 2019

매스로 써내려간 '칼의 노래'

'골든아워 1,2(이국종)'를 읽고

KBS2 '대화의 희열' 방송 갈무리


TV 프로그램 '대화의 희열 - 이국종 교수' 편을 보고 그의 인생이 새삼 궁금해져 읽게 된 '골든아워'. 두 권의 분량에도 단숨에 읽힐 만큼 이국종 교수의 인생은 한 편의 영화 같았다. 평화로운 주말 오후 침대에 몸을 기대어 책을 읽는 것이 미안할 정도로 치열하고 버거운 그의 삶이 눈앞에 펼쳐졌다.

책을 읽는 동안 "나였다면...?" 하는 질문이 머릿속에 계속 떠다녔다. 나였다면 이국종 교수처럼 얼굴 모르는 누군가를 위해 내 삶을 던져가면서 희생할 수 있을까?




시간이 참 빠르다. 벌써 세월호 참사 5주기가 지났다. 2014년 4월 16일 그 시각, 대학생이던 나는 과 사무실에 앉아 뉴스로 그들의 이야기를 무심히 접했다. 해양경찰이 구조하러 갔으니 곧 구조되겠지, 뭐 그 정도 생각만 했던 것 같다.


반면 이국종 교수는 침몰하고 있는 배에 탄 자가 누구인지, 몇명인지도 모른 채 사신(死神)의 기운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바다 한가운데로 날아갔다.

물론 나는 그때 일개 아르바이트 중인 대학생이었고 그는 사회의 큰 어른이었지만, 그렇다해도 생면부지의 목숨을 대하는 태도는 너무나 달랐다. 부끄럽지만 내 느낌은 '마음이 아프다, 안타깝다'가 다였다.


다시 "내가 만약 그 순간의 이국종 교수였다면?" 하는 질문이 떠올랐다. 이제는 엄연한 사회 구성원이 됐는데도 여전히 그의 감정에 이입하는 건 쉽지 않다. 나를 비롯한 '보통사람'이 쉽게 할 수 없는 희생을 그는 평생 하고 있었다. 그런 까닭에 그가 이순신 장군처럼 난세에 나타난 영웅이라 여겨지는 걸까?




이국종 교수의 글은 모든 문장에 긴장감이 감돈다. 책을 읽는 내내 나도 그와 함께 숨을 헐떡였고, 그 삶의 무게가 버겁게 느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퍽퍽하게 풀어낸 문장 속에서 느껴지는 온기. 그것이 '골든아워'의 매력이다. 훈 작가의 글을 뼈대로 삼았다고 하는데, 나는 이 책을 감히 '매스로 써내려간 현대판 '칼의 노래''라 칭하고 싶다.


가슴을 울린 수많은 문장들 속에서 유독 내 마음을 관통했던 문장이 있다. 다름아닌 육체노동자들에 대한 시선이다.


"가냘픈 노동자들의 목숨이 비루한 내 인생에 힘겹게 기대고 있었다"
ㅡ본문 중에서ㅡ



이국종 교수는 몸으로 먹고 사는 노동자들을 누구보다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간 부끄러워졌다. 나는 '노동자들의 변호사'라 불리는 공인노무사다. 그런데 노동환경을 개선해준다며 기업 컨설팅과 상담을 하면서 이 같은 생각을 한 적이 있었던가? 노무사랍시고 노동자에 대해 다 아는 것처럼 굴었을 뿐 소명의식따윈 없었다.



그런데 이국종 교수는 방송에서 자신을 두고 "숭고하다"고 말하는 이들에게, "나는 남들 다 하는 직장생활을 했을 뿐"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그 일이 특별할 것도 없으니 숭고하다는 표현은 자신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한다. 담담한 말투 위에 그것과 상반되는 투철한 직업의식이 겹쳐졌다.


그러나 나 살기도 바쁜 요즘 시대에, 타인을 위해 온 생을 불구덩이 속으로 내던지는 그의 삶이 어찌 숭고하지 않은가? 아니, 숭고하다는 말로도 부족하다. 매 순간 목숨 걸고 헬기에 오르고, 남의 피를 뒤집어써가며 밤낮없이 타인을 돌보는 그의 삶. 나는 그것을 활자로 주하면서 그간의 내 삶을 생각했다. 내가 하는 에서는 의미를 찾을 수 없다고 생각해오진 않았는지. 눈앞의 편의만 좇으며 과거를 답습진 않았는지. '시스템이 미비해서' '협조가 안 돼서' 같은, 이국종 교수로하여금 염증을 느끼게 한 말들을 달고 살진 않았는지. '비루한 내게 기대고 있는' 주변 동료들을 매몰차게 대하진 않았는지.




냉철해보이는 외형 속에 따뜻한 심장을 가진 사람. 내가 알게 된 이국종 교수는 시스템에 대해 외칠 땐 무서우리만치 이성적이고 논리적이지만, 환자와 동료를 생각할 땐 누구보다 인간적이고 따뜻한 사람이었다.




살아가면서 이성이 작용해야 할 시기에 감정의 소용돌이에 휩쓸리게 된다, 나는 그를 떠올릴 것이다.


따스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봐야 할 순간에 심장이 차가워지면, 그를 떠올릴 것이다.


생의 무게가 어깨를 짓눌러 깊은 수렁에 빠질 때면, 삶을 온몸으로 버티고 버텨낸 그를 생각할 것이다.


행복에 젖어 어쩔 줄 모를 때면, 곳곳에서 타인의 행복을 위해 희생하는 '이국종들'을 떠올릴 것이다.



그들과 같은 세상에서 숨쉬고 있음에 감사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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