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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륫힌료르 Dec 08. 2019

녹슬어버린 커리어에 기름칠

청소년 강의에 도전하다(1)


노무법인을 박차고 나와 공기업으로 이직한지 어느덧 2년이다. 처음에는 평범한 회사원으로 사는 건 나랑 죽어도 어울리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그간의 회사생활로 미루어봤을 때 나라는 인간은 생각보다 이 직업과 찰떡궁합이었다. 지난 2년간 기대 이상으로 조직생활에 잘 적응해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음 한 구석에는 찝찝함이 항상 남아있었다. 사람 마음이 참 간사한 게, 이토록 규칙적인 일상이 좋으면서도 이대로 눌러앉아버리긴 싫었다. 매년 반복되는 국정감사, 실적보고서 작성 등 공기업 직장인의 루틴을 유지하면서도 '공인노무사'라는 커리어는 지키고 싶었으니 말이다. 나 같은 인간을 욕심쟁이라 하지 않으면 누가 욕심쟁이겠는가?

자격증을 소지한 탓에 현재 인사부서에서 일하고는 있지만 내 욕심을 충족시키기엔 역부족이었다. 1년8개월이란 시간을 오롯이 투자해 어렵게 딴 자격증인데 허공에 날려버리고 싶지 않았다. 꽉 채운 2년차 쯤 되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녹슬기 시작한 노무사 커리어, 어떻게든 기름칠 좀 해봐야겠다!!"





고민이 한창 깊어질 때쯤 기회가 왔다.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공공기관 임직원 초청 특강이 진행된다는 것이다. 이때다 싶어 '청소년이 꼭 알아야 할 근로관계법령'이라는 주제로 강사 모집에 지원했다. 운 좋게도 남고, 여고 총 2개 학교에서 강의를 할 수 있게 됐다.


"요즘 학생들 무섭데이. 애들이 수업 안 들어도 상처 받지 말고  혼자 말하다 온다고 생각해라."

고등학교에서 30년 가까이 교편을 잡고 계신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강의를 앞두고 설렌다는 딸이 혹여 집중하지 않는 학생들 때문에 속상할까 염려되시는 것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10년 전 내가 고등학생이었던 때조차도 뒤에서 학원 숙제를 하던 친구들이 태반이었다. 게다가 내가 강의하는 시점은 수능 직후. 걱정되실 만도 하다. 하지만 아버지, 나는 달라요. 열심히 준비해서 인생 첫 강의 멋지게 하고 올 거야!





강사로 확정된 뒤 일주일간 퇴근하면 PPT를 만들고 강의 콘텐츠를 정리하며 저녁 시간을 보냈다. 대학생 때 발표는 많이 해봤어도 강의를 해본 적은 없었기에 준비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다. 순간 순간 '그냥 편하게 있을걸 괜히 사서 고생하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그래, 이왕 하는 거 재미있게 해보자!"

나는 고등학생들이 좋아할 만한 짤방과 돌발퀴즈, 농담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준비했다. 전날에는 강의를 시연해보며 표정과 제스처 등을 카메라로 녹화해 체크했다. 경험 많은 노무사 동기들은 "과하게 준비하지 말라"고 했지만 어쩌겠나. 천성이 욕심쟁이인걸. 강의 준비는 만만치 않았지만 그 덕에 그동안 놓고 있었던 노동법도 다시 한 번 복습했고 오랜만에 설렘이라는 감정도 느낄 수 있었다.






수능이 끝난지 딱 일주일 되던 날, 첫 강의를 위해 남고를 방문했다. 오랜만에 들어간 교정에서는 덩치 산만한 남학생들이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고 있었다. 아, 괜히 겁나네. 애들이 나보다도 한참 커 보이는데 내가 하는 말을 잘 들어줄까?

한껏 소심해진 마음을 안고 들어간 교무실에서는 40대 초반쯤 돼 보이시는 남자 선생님이 나를 맞아주셨다. 겉으론 태연한 척해도 사실 어찌나 긴장했던지 강의 시작 한 시간도 더 전에 도착해버렸다. 선생님이 내주신 따뜻한 차를 마시면서 기다리는데, 학생들이 복도를 막 뛰어다녔다. 분명 1교시 수업 중인데 뭐지?

"수능 끝나고 다들 알까기 대회 하고 있어서 좀 시끄럽습니다." 의아한 눈빛을 보내는 내게 선생님은 별 일 아니라는 듯 말씀하셨다.

별 일 아니긴요..
난생 첫 강의라 안 그래도 떨리는데 알까기 대회를 하고 있는 고3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시간 동안 말을 해야 한다.


어쩌지. 큰일 났다.


ㅡ(2)편에 계속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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