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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륫힌료르 Dec 29. 2019

어쩌다 어른

청소년 강의에 도전하다(2)

2교시 시작을 알리는 종이 이미 한참 전에 울렸지만, 수능 끝난 고3 학생들을 교실로 불러모으기엔 역부족이었다.

"알까기 대회는 잘 했어요?"

나는 껄렁하게 교실에 들어선 30여 명의 남학생들에게 첫 마디를 건넸다. 그러자 휴대폰만 보던 학생들이 일제히 고개를 들어 쳐다봤다. '웬 공기업 직원이 와서 말을 걸지?' 하는 눈빛으로.

'됐다. 고개를 들게 했으면 벌써 절반은 해낸 거야!'
나는 내가 무대체질(관종)이라는 사실을 떠올리려 노력했다. 그리고는 학생들의 시선을 즐기며(?) 대화의 물꼬를 텄다.

"저는 수능 친 지 9년쯤 됐어요. 이래 봬도 여러분이랑 10살 차이도 안 나요! 그때 수능 당일보다 결과 기다리는 게 더 쫄깃하고 힘들었는데. 여러분도 그렇죠?"

처음엔 수능 직후에 강의하는 것이 최악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천만의 말씀. 오히려 그 시기 고3 학생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가는 방법은 명확했다. 힘들지 않았냐고, 나도 그랬노라고, 하지만 앞으로의 인생은 '꿀잼'일 거라고ㅡ위로와 공감을 해주는 것. 그뿐이었다.

나는 학생들과의 심리적 거리를 좁히고 싶어 '그들과 10살도 차이나지 않는다는 점'을 계속해서 강조했다(사실은 주민번호 뒷자리 3인 생명체가 내 앞에 존재한다는 게 무척이나 신기했지만). "사촌누나가 들려주는 재미있는 노동법 이야기라 생각하라"는 내 말에, 다행히 학생들은 응답해줬다.



[잠시 노무사인 척 좀 하고 올게요]


수능이 끝나고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는 학생들 앞에서 나는 시간 동안 한껏 노무사인 척을 하고 왔다. 근로계약서 작성, 임금, 퇴직금, 4대보험 등에 대해 신명나게 떠들다보니, 신기하게도 이 서른 명의 동생들 만큼은 노동인권을 한 톨도 침해 당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먼지 쌓인 내 커리어에 기름칠 좀 해보겠다고 덤볐을 뿐인데. 그런데 속에서 예상 밖의 이상한 간절함이 느껴졌다.



학생들은 솔직했다. 퀴즈를 맞힌 사람에게 기프티콘을 주겠다고 하니 득달같이 달려들었고, 아르바이트 하던 대학시절 내 사진을 보여주니 "저때가 더 늙어보인다"며 짓궂게 응수했다. 그들은 내가 열심히 준비한 만큼 호응해줬으며, 한 발짝 다가서면 두 발짝 다가와줬다.


맨 앞줄에서 묻는 말에 꼬박꼬박 대답하던 모범생 친구, 안 듣는 척 뒷자리에서 눈을 반짝이던 친구, "선생님 월급 세후 얼마에요?" 묻던 짓궂은 친구. 인생 첫 강의여서 그런가, 강의한지 한 달이 됐지만 아직도 그 친구들이 눈에 선하다. 아마도 한 시간 동안 나름 끈끈한 유대관계가 형성됐나보다. (나만 그런가?)

동시에 공기업 직원으로서 소임을 다하느라 잠시 내려놨던 '공인노무사'로서의 나도 잠시 돌아왔다. 서른 명의 동생들이 자신의 주휴수당을 계산할 수 있게 된 것만으로도 뿌듯하고 보람찬 시간이었다. 잊고 있던 내 전문성과 커리어적 가능성을 확인한 시간은 너무나 가치있었다. 이제 한동안 딴 생각 안 하고 회사생활 열심히 할 수 있을 것 같다(?)



[어쩌다 어른]


처음 청소년 노동법 강의를 해야겠다고 마음 먹었을 땐 그저 가볍게 생각했다. 경험 많은 중견사원보다는 동생들을 대상으로 강의하는 것이 더 쉬울 거라고 말이다.

그러나 어른이 청소년에게 미치는 영향력은 생각보다 컸다. 애써 학생들을 사촌동생뻘이라 생각했지만, 분명한 건 그들은 미성년자고 나는 어른이라는 사실이었다.



강의가 끝나고 정리하려는데 한 친구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맨 앞줄에 앉아서 돌발퀴즈까지 맞힌 녀석이었다.

"선생님은 왜 노무사가 되셨어요?"

너무도 원초적인 질문에 나도 모르게 말문이 막혔다. 대학시절 방황을 장황하게 설명해야 하나? 구체적으로 말해줘야 할까ㅡ원래 기자가 되고 싶었는데 현실과 타협하다 보니 이렇게 됐다고? 내 강의를 듣고 노무사에 관심이 생겼다는 친구에게 아무 말이나 해줄 수는 없었다. 그때 깨달았다. 어른의 말 한 마디에는 생각보다 더 큰 힘이 있다는 것을. 그래서 청소년 강의는 더욱 부담스럽고 더욱 어려워야 하는 것이었다.



뿌듯함, 순수했던 10대 시절에 대한 향수가 공존하며 울렁울렁한 느낌.




학교를 나서 회사로 복귀하는 길, 다시 운동장을 바라봤다. 한 시간 전에는 그렇게 무섭던 축구하는 남학생들이 마냥 예쁘게만 느껴졌다. 순수하다는 게 뭔지 그땐 몰랐는데 동생들을 보니 조금 알 것도 같았다. 그렇게 어느새 나는 10대의 나에게서 멀어져있었고, 어쩌다 보니 어른이 돼 있었다.

짙은 여운을 안은 채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흔들리는 꽃들 속에서 네 샴푸 향이 느껴진 거야'를 들으며 걸었다. 커리어 찾으러 갔다가 되려 내가 에너지를 얻어가는 느낌. 나도 모르게 자꾸 배시시 웃음이 났다. 매스컴에선 이런 걸 '엄마 미소'라 하던데. 하지만 난 그 친구들과 10살 차이도 안 나니까 '누나 미소' 정도로 해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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