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연두 Dec 13. 2022

한겨울의 모과나무처럼

살아있을 수 있다면

참으로 오랜만에 브런치에 글을 써봅니다. 실은 몇 번이고 쓰려고 들어왔다가, 그저 하얀 여백을 바라만 보곤 했어요. 무엇을 써야 할지 잘 모르겠더라고요. 아무 생각 없이 일기를 끄적여 발행하는 건 구독자 분들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 같고, 그렇다고 각잡고 글을 쓰자니 글이 자꾸 경직되어 스스로도 재미가 없더라고요. 좋은 글이란 재미로만 쓰는 것이 아니라는 걸 알지만... 그래도 내 글이 내 글 같지 않은 그런 느낌 있잖아요. 그러니 쓰다가 닫아버린 창만 몇 개였는지 모르겠어요.


지나고 보면 제가 썼던 글 중 마음에 들었던 글은, 각잡고 쓴 글보다는 '쓰다 보니 쓰게 된' 그런 이야기들이 더 좋았던 것 같기도 해요. 나도 모르게 쓰게 된 문장들, 생각과 마음에 관한 것들 말이지요. 그래서 오늘은 좀더 편안한 마음으로 써보고 있어요.


사진은 얼마 전 국립중앙박물관에 갔다가 발견한 모과나무예요. 세상에나, 모과가 겨울에 열리는 과실인가요? 어쩌면 그렇게나 탱글탱글 노랗게, 생명력 넘치게 달려 있던지. 예전에 근무했던 학교에도 매화나무와 모과나무가 있었는데요. 나무에 '학습용이니 따 가지 마시라'는 문구가 걸려 있었어요. 인근 주민 분들이 그렇게 탐을 내신다고. 허허.


이 차가운 겨울에도 모과는 어쩌면 저렇게 모과모과한가요. 나도 그럴 수 있으면 좋겠어요. 겨울에도 생명력 있게. 샛노랗게. 선명하게. 그런데 그게 잘 안되는 사람이어서요. 겨울엔 잔뜩 움츠리고 흐느적흐느적 다니게 되어요. 추위에 취약해서 외출 후 집에 돌아오면 경직되었던 어깨가 풀리면서 근육통까지 올 정도니까요. '덜덜 떠는' 그 순간이 힘에 겹고 유쾌하지가 않아요. 차갑고 거칠어진 손 때문에 핸드크림과 핫팩도 필수고요. 한겨울 난방 온도 올리는 걸 깜빡하기라도 하면 새벽녘에는 추위에 잠을 깨기 일쑤랍니다. 여러분의 겨울은 어떤가요.


그래서 겨울엔 곰처럼 겨울잠을 자고만 싶어지는데요. 요새는 어떻게 하면 겨울을 좀더 좋아할 수 있을까 궁리 중이에요. 저는 여름이 제일로 좋은데, 남편은 겨울이 제일 좋다고 하니 참 달라도 이렇게 다르지요. 스산한 영국이나 아일랜드 날씨를 좋아하는 남자. 영국 여행 가서 날씨 마음에 든다며 그렇게 좋아하더라고요. 전 햇볕 쨍쨍한 날씨에 칠렐레 팔렐레 신이 나는 사람인데 말이지요. 지금처럼 낮이 짧은 겨울에는 기분도 같이 의기소침해지는 사람. 아, 정말이지.


귀여운 목도리를 사볼까요. 어여쁜 장갑으로 기분을 내볼까요. 내복을 한껏 껴입고 외출하면 좀 나을까요. 아니면 맘에 쏙 드는 포근한 패딩을 장만해야 하나요. (어째서 온통 쇼핑 얘기뿐인가요 나원참)


이렇게 글이라도 써야겠어요. '겨울 못견디겠다옹' 하는 글이라도요. 그러다 보면, 그래서 이야기를 주고받다 보면, 이 겨울도 어느새인가 지나가 있을까요. 그럴까요.




곧 있으면 크리스마스네요. 신은 인간을 얼마나 사랑했기에 인간이, 그것도 약하디 약한 아기가 되어 세상에 왔을까요. 마리아와 요셉은 어린 예수의 기저귀를 갈았겠지요. 목욕도 시키고 모유도 먹였겠지요. 신이 인간에게, 한없이 바스라지기 쉬운 인간에게 몸을 맡기는 모험을 감행했다는 것. 세상에 이보다 더 큰 모험이 있을까요. 이런 배팅이 세상에 어디 있나요. 신의 무모함이라고 해야 할까요. 그래서 뉴욕의 팀 켈러 목사는 신을 일컬어 '탕부'라고 했나 봅니다. <The Prodigal God>. 팀 목사 책의 제목이기도 합니다. 사전을 찾아보니 prodigal이라는 단어의 뜻이 '(돈·시간·에너지·물자를) 낭비하는'이라고 나와 있네요.


낭비이자 도박인,

그것은 아마도 사랑.


모든 진실한 사랑은 이 낭비를 닮아 있는 것 같아요.

사랑에 눈이 먼 연인들, 자녀를 위해서라면 아낌없이 내어놓는 부모들,

그리고 세상의 수많은 우정의 이야기들.


여전히 종종 생각합니다.

이 광막한 우주에서, 저렇게 파란 하늘과 생생한 자연, 그리고 이토록 독립적인 인격 하나하나가 살고 있는 이 공간은 기적이라고. 소설이나 영화 속 그 어떤 것도 비견할 수 없는 엄청난 판타지를 살고 있다고. 어딘가에 충전기를 꽂아두고 살지 않아도 스스로 뛰는 심장만큼이나, 이 세상은 불가사의하게 경이롭고 아름답다고.


그러나 신은 우리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스스로 헤쳐나가야 할 덤불들을 우리 앞에 그대로 놓아두었어요. 가끔은 그 생 자체가 버겁게 느껴지기도 해요. 겨울잠을 자꾸만 자고 싶은 건, 그 모든 혹독함에서 떠나 길고 긴 쉼을 누리고 싶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어요.


그렇지만 저 대견한 모과를 보며 배웁니다. 이 겨울에도, 너만의 꽃을 피워보라고.

혹 움츠리더라도, 겨우내 뿌리를 내리고 생명을 유지하는 나무들처럼, 결국 봄이 되고 여름이 되면 청청해지는 나무처럼, 너도 너의 뿌리를 내리고 살아 있으라고.


그런 겨울날 되시길, 글을 읽는 모든 분들께 축복을 전해요. 저도 힘내 볼게요.







+겨울에도 여전히 생명력을 간직한 풍경의 조각들을 올려 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오후의 햇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