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과 함께하는 날들
9월 1일자로 복직하고 어느덧 보름이 지났다. 에스프레소처럼 하루하루 진하게 보낸 시간들.
복직 전에 했던 걱정과 고민이 무색하게 하루가 다르게 빠르게 적응하는 걸 보면서 스스로도 놀랐다. 이거슨 마치 어제 출근하고 다시 출근한 기분- 하루하루 일로 하얗게 불태우는 나를 보면서 동료샘도 아니 도대체 일 년 반을 어떻게 참고 살았던 것이냐며. 정말 어떻게 살았던 거지? 새벽출근이 하기 싫다고 그리 칭얼댔는데 매일 새벽에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나 교무실에 또 1등 출근하는 일상을 반복하고 있다. 그러려는 건 아닌데 가보면 교무실에 아무도 없.. 나 말고 아무도 없... (아래 사진들은 그간 인스타그램 스토리로 공유했던 것들)
출근 첫날 환대해주시던 선생님들. 그 따순 마음에 감격했던 날. 사소한 것이라도 커다란 변화를 겪고 있는 사람에게는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지 새삼 경험했던 순간들. 얼굴을 한 번도 본 적 없는 선생님께서 환대해주시고 미리 챙겨주시던 그 마음이 얼마나 감사했는지. 나도 좀더 세심하게 타인을 챙기고 배려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 번 더 하게 되는. 이분들뿐만이 아니라 우리 교무실 전체적인 분위기가 선생님들 쾌활하고 따뜻해서 머무는 내내 행복하고 감사한 마음. 언제 또 이런 교직생활을 할 수 있을까 싶을 만큼 좋은 것..
사실 교육계의 비통한 사건들과 정부 부처의 고질적인 문제들을 한꺼번에 들여다보게 되면서 복직 전부터 마음이 무겁고, 집회도 여러 번 다녀오며 동료 샘들과 함께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이 직업을 언제까지 계속할 수 있을까, 내가 속한 조직이 이 정도였나 싶어 마음이 내내 무겁기도 했었다. 그런데 복직을 앞두고 듣게 되는, 우리 학교의 서로 연대하는 분위기, 그리고 현장에서 마주한 선생님들의 열정과 따뜻함에 나는 전과는 또다른 의미로 자주 코끝이 찡해졌다. 이것이 결코 당연하지 않음을 알기 때문에.
새벽이면 눈이 절로 떠지고, 나는 일찌감치 학교로 향했다. 업무량이 많고 수업 준비를 할 수 있는 시간이 빠듯해서이기도 하지만. 학교에 머무는 시간이 이전과 다른 의미로 따뜻하고, 화사하고, 감사해서.
물론 직장생활이란 다들 아시다시피 <좋은것>만 있을 수 없고, 사람이 모이는 곳 어디에나 명암이 있다. 그럼에도, 그러하기에, 지금 내가 처한 상황이 또한 <당연한것>이 아님도 안다. 일상의 평범함을 누릴 수 있는 그 상황 자체. 특히나 신음하고 고통하는 교사들의 소식이 하루가 멀다하고 들려오는 이때에 더욱 그러하다. 그리고 원치 않았지만 학교에서 나를 포함해 많은 이들이 겪어야 했던 일들을 생각할 때에도. 교직에서 희망도 절망도 모두 겪으며 여기까지 왔기에 지금의 상황을 더욱 귀히 여길 수밖에 없는 것.
복도에서 만나는 아이들 작품만 봐도 예뻤다. 올해 수업에서 만나는 아이들도 전반적으로 성실하고 열심이다. 붕붕 들떠 있는 친구들도 있기는 하지만 ㅎㅎ 아주 엇나가는 친구들은 아직까지는 보이지 않는다. 아직 어리고 모난 부분은 잘 다듬어져 좋은 어른으로 자라가기를 기도한다.
졸업생 한 친구는 내가 복직하는 날짜에 맞춰 깜짝 방문을 했다는. 퇴근 시간 전에 와서 다른 선생님들 다 가신 후에도 오래오래 이야기를 나눴다. 졸업하고 2년밖에 안 지났는데 얼굴이 그새 달라지고 키도 커서 정말 웬 남자 선생님이 들어오시는 줄 알았다. 다음 번엔 다른 친구들도 함께 오겠다고. 반가웠어 H야! 다음에 또 보자 :)
올해도 학교의 풍경들을 시시각각으로 담고 있다. 지나치기에는 아깝고 아쉬운 풍경들이 많다. 이 사진들 말고도 앨범에 많은 장면들이 쌓여간다. 선생님들과 함께 학교의 역사를 기록해나가고 싶다는 생각도 해본다. 하나의 학교를 세워가는 이 모든 애틋하고 빡치고(?) 설레고 지지고볶는 과정들에 대하여.
같은 교무실에 교육과 업무에 진심이고 열정 뿜뿜인 샘들을 보면서도 많이 배운다. 나는 이런 사람들이 너무 좋다. 사랑스럽다. 자신의 생을 사랑하고 일에 열심인 사람들. 언제나 이런 사람들을 보고 싶었다. 함께 배우고 나누며 성장하고 싶어진다. 남의 열정을 깎아내리고 타인들의 삶까지 하향평준화되길 바라는 사람들의 말도 많이 들어봤다. 그건 나이의 문제도 아니더라. 연세가 있어도 여전히 열심이며 타인을 헤아릴 줄 아는 분들이 있고, 젊어도 쉽게 냉소하거나 무례한 사람들이 있다.
많은 사람을 겪어보아서인지 더욱 사람도 일도 소중하게 여길 줄 아는 이들이 귀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나의 동료들이라서 벅차다. 이번 교육계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집회를 준비하고 정책연구와 제안을 해내는 반짝반짝하는 선생님들을 보면서도 느꼈다. 비록 내가 속한 정부 조직 자체는 관료적이고 구습에 물들어 있어도, 새로운 세대의 선생님들은 이렇게나 멋진 사람들이구나. 그게 벅차고 고맙고 감사했다. 이 일에 절망과 기대를 동시에 갖게 되는 순간들을 지나고 있다.
후배들에게 열어줄 세상은 이전과는 달랐으면 좋겠다. 조금이라도 덜 부끄럽기 위해 우리는 있는 용기 없는 용기 다 끌어내어 목소리를 내 본다. 그리고 배우고, 손을 내밀고, 따뜻한 차 한 잔을 건네본다. 내가 여기 있다고. 선생님은 혼자가 아니라고. 내가, 우리가 여기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