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민들레는 민들레 Jul 03. 2024

정서행동 위기 학생 지원을 보건교사가?

'정서행동위기학생 지원 방안' 법률안 일부 수정되어야 한다.

보건교사 본연의 업무는 질병을 가진 학생을 응급처치하고, 필요한 경우 학생의 상태를 보호자에게 알려 전문의료기관으로 보내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1교시 보건수업을 끝내고 후다다닥 보건실에 왔다. 5-6명의 학생이  보건실 대기의자에 앉아 있었다. 수업바구니를 업무용 책상에 놓고 처치용 책상 앞에  앉았다.  대기용 의자 맨 앞에 앉아 있는 2학년 학생의 건강문제부터 파악했다.  학생은 열이 좀 있었다. 어제 집에서 약을 먹었, 어젯밤 잠을 못 자서 피곤한 상태였. 학생을 보건실 침대에 누워 쉬게 하고 담임교사에게도 메신저로 알렸다.


두 번째는 눈이 가려운 2학년 학생이었다.  학생은 평소 알레르기가 심하고 주의가 조금 산만한 학생이다. 나는 학생에게 세안을 하게 한 후 인공눈물을 넣어주었다. 처치를 끝내고 "교실로 가서 공부해도 됩니다."라고 말했다. 학생이 "담임 선생님이 저 여기 있으라고 했어요." 라고 말했다.  교실로 전화를 했는데 받지 않는다. 그 반이 보건실과 가까워 얼른 그 반에 가봤다. 개미 한 마리도 없었다. 보건실로 돌아와 학생의 담임에게 핸드폰으로 연락했는데 받지  않았다. 학생에게 "담임 선생님이 어디 간다고 했나요?"라고  물었다. 학생은 학교 밖으로 마을탐방을 간다고 했다고 말했다. 내 휴대폰을 열어보니 그 학생의 담임선생님이 9시 55분 즈음에  전화한 기록이 있었다. '인공눈물만 넣으면 되는 학생을 왜 두고 갔을까?'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때 옆에서 다른 학생의 상처를 물로 씻기 위해 세면대로 가던 1,4, 5학년 담당 보건선생님께서 그 학생의 이름을 부르며 " 아까  눈 가렵다고 해서 치료해 줬는데 또  왔어?"라고 말했다. 그제야 담임선생님이 그 학생을 두고 간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마을탐방 가서도 눈이 가렵다고 끊임없이 호소할 것이 고, 학교 밖이라 적절히 처치 하기도 힘들기 때문에 두고 간 것이리라.  학생이 "선생님 저 뭐해요?"라고 물었다. 나는 보건실에 있는 그림책을 읽으라고 했다. 학생은 다른 학생들을 치료하는데 틈틈이 끼아들었다. 그로인해 주의는 계속 흩트러졌다. 나는 다른 학생들을 처치하며 그 학생이 조용히 앉아서 그림책을 볼 수 있게 끊임없이 지도해야만 했다. 


다음 학생도 2학년 학생이었다. 어젯밤부터 배가 아팠다고 했다. 나는 그 학생을 문진, 시진, 촉진한 후 화장실에서 변을 보도록 지도했다. 학생은 화장실에 다녀온 후 괜찮아졌다고 했다.  학생에게도 이제 상태가 좋아졌으니 교실로 가도 된다고 했다. 학생은 반 친구들이 마을탐방을 가버렸고, 담임선생님께서 배가 아프니 보건실에서 쉬라고 했단다. 그 담임선생님도 아마 밖에서 예기치 못한 상황이 생길까 봐  학생을 보건실에 두고 간 것 같았다.   2학년 학생들을 밖에 데리고 나가는 것이 얼마나 교사의 신경을 곤두서게 하는 일인지 알기에 담임교사가 나에게  전화하지 않은 것이 그리  서운하지 않았다.  나는  학생에게도 그림책을 보라고 했다.  학생은 움직이지도 않고 그림책에 쏙 빠져들었다.


6학년 학생은 배가 아프다고 했다. 나는 학생의 건강문제와 처치방법을 찾는데 집중했다.  배에 핫팩을 하고 침대에서 쉬게 하여 긴장한 소화기관을 진정시킬 필요가 있다고 판단되었다. 학생을 침대에 눕히고 핫팩을 해주려고 하는데 조금 전에  눕혀놓은 열이 나던 2학년 학생이 보이지 않았다. 학생이 작아서 안보인가 싶어서 이불을 들춰보았으나 학생은  없었다. '도대체 어디 간 거야?'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다. 일단 6학년 학생을 침상에 눕혔다. 대기 중인 학생들 중에 그 학생이 보건실 밖으로 나가는 모습을 봤다는 학생은 없었다.  눈이 가렵다고 온 2학년 학생을 신경쓰다 그 학생을 놓친 것이다.  학생이 어리고 소심하면 부끄러워서 아무 말하지 않고 보건실을 나갈 수도 있다. 혼란스러웠지다. 그 학생의 반에 전화를 했으나 받지 않았다. 할 수 없이 후들거리는 다리로 그 반까지 뛰어갔다.  불이 꺼져 있고 빈 책상과 의자만 우두커니 교실을 지키고 있었다. 다리에 힘이 빠지고 심장은 요동을 쳤다. 속으로 '정신 차려! 어서 정신 차려!'라고 날 다그쳤다. 보건실로 돌아와 떨리는 손으로 담임 핸드폰에 전화를 했다. 다행히 그 학생은 담임교사와 함께 있었다.  만약 그 열나는 2학년 학생이 담임교사랑 있지 않고 다른 곳으로 사라져 버렸다면 그날 나는 9시 뉴스에 메인으로  나왔을 것이다. 어쩌면 보건교사라는 이 소중하고 의미 있는 직업도 더 이상 할 수 없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2024년 6월 12일 강경숙 의원 등 17인에 의해 정서행동 위기학생 지원에 관한 법률안이 입법예고 되었다. 이 법률은 정서행동 위기학생을 체계적으로 지원하겠다는 법안이다. 이 법안이 생긴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이 법안 8조 6에서는 '학교의 장은 제9조에 따른 정서행동지원전문교원, [학교보건법}제15조에 따른 보건교사, [초중등교육법] 제19조의 2에 따른 전문상담교사 등이 함께 정서행동위기학생에 대하여 학교생활 및 학습지원을 실시하도록 할 수 있다'라고 명시하였다.


 정서행동 위기 학생을 보건교사가 지원하는 게 현실적으로 가능할까?  최근 보건실 방문학생 수가 늘어나고 학생처치에 대한 보호자의 예민함과 요구도가 증가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보건교사가 정서행동 위기학생의 학교생활 및 학습 지원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보건교사는 학교 내 유휴인력이 아니다.

신규시절의 일이다.  심각한 틱장애를 가지고 있고 ADHD약을 먹는 특수학생이 있었다. 특수학급 담당 교사가 그 학생 때문에 다른 학생들을 지도할 수 없다며 나에게 한 시간만 그 학생을 봐주라고 했다. 나는  잠시도 그 학생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20분 정도 그 학생을 보다가 다른 학생들 치료에 방해가 되어  학생을 교실로  돌려보낸 적이 있다. 그 당시는 상담교사도 없고 관리자들도 요즘 같지 않았다. 담임교사도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도움을 요청할 곳이 보건실 밖에 없었을 것이다. 담임교사들이 간혹 학생을 보건실에  맡긴다. 학생들 중에는 조용히 침상에 누워 잠들던 학생도 있었고, 소리소리 지르며 울고 다른 학생의 처치를 방해하는 학생도 있었다. 교직경력이 쌓이고 어느 순간 정서행동 위기 학생을 지원하다가 당장 나의 치료를 필요로 하는 학생들을 놓칠 수 있다는  알게 되었다. 지금은 상황에 따라 내가 감당할 수 없는 학생이 생겼을 때는 보건실 사정을 말하고 단호하게 거절하고 있다.


학교라는 곳은 법률, 지침등을 따르는 곳이다. 많은 보건교사들이 먹는 물부터 학교소독, 미세먼지 등 불합리하다고 생각하는 업무를 하고 있다.  그 업무를 하는 이유 중 하나가 학교보건법에서 보건교사의 직무로 '환경의 유지 및 개선에 관한 사항'을 명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수십 년 전에 만들어진 이 법률이 아직까지 개정되지 못하고 학교 현장에서 보건교사들이 아픈 학생을 치료하고 보건업무를 하는데  방해가 되고 있다. 


보건실은 몸이 아픈 학생을 치료하는 곳이다. 담임교사들이 수업에 열중해야 하는 것처럼 보건교사는  보건실에서 질병을 가진 학생을 적절히 응급처치하고 학생의 상태를 보호자에게 알려 전문의료기관으로 보내는 일에 온 힘을 쏟아야 한다.


정서행동위기학생 지원에 관한 법률이 수정되지 않고 통과한다면 보건실을 방문하는 많은 학생들이 보건교사에게 치료받을 권리를 침해받는 일이 발생하게 될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이삿날 발가락이 골절되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