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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들레는 민들레 Jul 14. 2024

나에게 피아노란

고급진 것이다

나에게 피아노란 고급진 것이다.


'피아노'는 정말 고급진 것이다. 나하고는 영원히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단어이기도 했다.  

   

국민학교 시절, 피아노를 치는  아이들과 치지 않는 아이들로 나뉘었다. 아파트에 사는  아이들과 살지 않는 아이들로도 나눌 수 있었다. 얼굴이  흐컨 아이들과 까만 아이들로 나뉘기도 했다.  나는 전자를 고급진 아이들, 후자를 촌스런 아이들이라고 생각했다.


우리 동네는 20 가구 정도가 살았다. 피아노가 있는 집은 한 집도 없었다. 당연히 피아노를 는 애들도 없었다.  

   

아파트에 사는 잘난 척 대왕마마 수정이가 "너희 집 피아노 있어?"라고 물었다. 나는 "아니."라고 했다. 수정이는 자기 집에  피아노가 있고 요즘 피아노를 배운다고 오지게도 자랑했다. 그 가시내는 피아노 치는 것이 어려워서 학교에서도 연습해야 한다고 했다. 수정이는 쉬는 시간마다 책상을 피아노 삼아 피아노 치듯 손가락을 현란하게 움직였다. 너무 재미있게 보여 나도 따라 했다. 수정이가 "야,  그거 맘대로 손가락 움직이는 거 아니야! 피아노도 못 치면서."라고  말하며 날 비웃었다.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하지만 피아노도 없고 치지도 못하는 것이 사실이기에 반박할 수 없었다.  수정이에게 당한 이후로는 남들이 욕할까 봐 사람 없는 곳에서 몰래몰래 땅바닥에 피아노 건반을 그리고 피아노 치기 놀이를 했다. 정말 재미있고 짜릿했다.  선생님 안계실 때 피아노를 치는 아이들은 풍금을 치기도 했다. 나는 멀찍하니 서서 바라보았다. 국학교 4학년 때부터는 피아노 치는 애들 중에 진짜 잘 치는 애들이 음악시간에 선생님 대신 풍금을 쳤다. 다행스럽게도 수정이는 선생님에게 불러나가 풍금을 치지는 않았다. 만약 수정이 풍금을 쳤다면 나는 미치고 환장했을 것이다.


인이 되어서도 피아노 좀 친다는 사람들을 만나면 경이로운 눈빛으로 바라봤다.  그들은 나를 엉뚱하다는 눈빛으로  바라봤다.      


큰아이는 여섯 살에, 작은아이는 일곱 살에 피아노학원을 보냈다. 큰아이가 초등학교 3학년이  되었을  때 성과급을 받아 피아노를 샀다. 정확한 금액은 생각나지 않는데 한 이백만 원 정도 준 것 같다. 남편은 우리 형편에 어린애들에게 너무 비싼 악기를 사주는 것 아니냐고 극구 반대했다. 그러나 나는 우리 애들만은 나와 다르게 정말 고급지게 키우고 싶은 욕망이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애들을 고급지게 키울게 아니라 내가 고급져졌어야 하는데 말이다. 나는 남편에게 피아노학원에서 배우고 집에서 안치면 무슨 소용이냐고, 무엇이든 연습이 중요한 것이라고 말해 기어코 피아노를 샀다. 나에게 피아노는 여전히 고급졌기에 촌스러운 나는 쉽게 다가갈 수 없었다. 다만 피아노를 치는 아이들을 신기하게 바라봤다. 큰아이는 초등학교 4학 때 예쁜 드레스 입고 피아노 대회에 나가서 금상을 받아 나는 기뻤다. 물론 대회에 나가기만 하면 다 받는 상이기는 했다. 아이들은 나의 기대와 달리 피아노를 오래 치지 않았다. 큰아이는 초 6까지, 작은아이는 초 4까지 쳤다.


애들이 피아노를 그만두고 우리 집의 피아노는 자리만 차지하는 고급 장식품으로 6년 정도 살았다. 피아노가 장식품으로 존재해도 난 뿌듯했다.  한 번은 피아노 앞에서 고급지게 분위기를 내며 커피를 마시다가 그만 커피를 건반 위에 쏟고 말았다. 얼마나 가슴이 철컹했는지 모른다. 네이버 지식인에 ‘피아노에 물을 쏟으면’이라고 검색했다. 드라이로 말리라는 답변이 있어서 드라이로 말렸다. 큰아이가 그러면 피아노 더 망가진다며 선풍기로 말리라고 했다.  피아노 건반에 선풍기 바람이 쏘이며 말렸다. 마음속으로는 ‘제발 제발 피아노가 선명한 소리를 잊지 않기를 빌었다. 다행히 고급진 피아노는 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큰아이가 수능 끝나고는 피아노는 이백만 원짜리 고급 화장대로 용도가 변경되었다. 이사를 가는데 큰아이가  "피아노 좀 내 방에서 빼.'라고 말했다. 남편은  자리만 차지하는  피아노를 필요한 사람에게 주자고 했다. 그러나 내가 끝끝내 반대하여  피아노는 버려질 위기를 모면했다.


큰아이 방에서 11년을  피아노는 이사하고 드레스 룸으로 자리를 옮겼다. 


아이들은 내가 자기 생활에 관여하는 것을 싫어해 존중해 주기로 했다.  최근 발가락을 다쳐 병가에 들어가면서  결혼 후 처음으로  집안일에서 완전히 해방되었다. 시간의 여유가 나를 피아노 앞에 앉게 했다. 피아노 뚜껑을 열었다. 하얗고 까만 건반이 보였다. 유튜브를 보며 피아노를 범했다. 그 옛날 피아노 치기 놀이할 때처럼 손가락이  현란하게 움직이지는  않지만 피아노에서 듣기 좋은 소리가 난다.

  

피아노를 칠 때마다 촌스러운 내가 고급져지는 나를 본다. 이제 나는 촌스러움을 던지고 피아노를 는 고급진 사람이 되었다. 앞으로 내 인생은 피아노와 함께 고급지게 펼쳐질 것이다. 

기대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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