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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들레는 민들레 Aug 02. 2024

나에게 장대비란

힐링이다

나에게 장대비란 힐링이다.   

  

처벅처벅 종일 장대비가 내리는 날을 좋아한다. 장대비가 내리는 날에는 토닥거리는 빗소리와 시원한 비 냄새, 상쾌한 공기를 한꺼번에 만날 수 있다.

     

요즘 젊은이들이 싸이의 흠뻑쇼를 좋아한다고 한다. 그들이 흠뻑쇼에 열광하는 이유는 비단 음악 때문만은 아니리라. 그들은 기계가 쏟아내는 장대비에 자신의 슬픔, 아픔, 분노, 원망도 함께 씻어 낼 수 있기에  흠뻑 젖으며 열광하는 것이리라.     


국민학교에 가기 전부터 나는 장대비를 좋아했었다. 장대비가 내리는 날은 우산 쓰고 빗소리 들으며 온 동네를 다녔다. 비를 맞으며 동네 아이들과 골목 사진 곳에서 땜공사를 했었다.  빗물이 고무신 안으로 들어가면 발이 신안에서 물과 만나 미끄러지면서 뽀드득뽀드득 움직였다. 이  느낌이 좋아 비 오는 날은 언제나 고무신을 신었다.  평상시 거의 메말라 있던 집 앞 꼬랑이 장대비로 물이 가득 차 흘러가는 것을 보고 도대체 저 많은 물은 어디로 흘러가는 걸까? 하는 궁금증이 생기기도 했다. 풀잎을 뜯어서 또랑에 띄우다가 종이배를 접을 수 있는 나이가 되었을 때는  부모님 몰래 달력이나 신문지로 종이배를 띄웠었다. 장대비 맞으면 걷는 법을 잊어버린 멍텅구리처럼 헉헉거리며 풀잎이나 종이배를 따라 달려 다녔다. 토란대를 끊어서 우산 대신 토란잎을 쓰고 다니기도 했다. 토란잎은 절대 장대비를 막지 못했다. 토란잎 위에서 또르르 흘러내리는 빗물을 바라보며  빗물이 내 몸에서도 또르르 굴러갔으면 했다. 다른 사람은 다 빗물에 젖는데 나만 젖지 않는 토란잎 아이가 되는 상상을 해기도 했다. 고여있는 웅덩이를 일부러 찾아다니며 첨벙첨벙거리면서 빗물이  몸 어디까지 튀어 올라가는지 동생과 시합하기도 했다. 동네 어른들은 비 맞고 나돌아 다니는 아이들을 보고 "비 온 게 그렇게 좋냐? 참 좋을 때다"라고 말하고 지나가셨다. 장대비가 내리는 날은 늘 옷이 젖어 엄마에게 등짝을 시원하게 맞는 날이기도 했다.


국민학교와 중학교 다닐 때 하늘에 구멍이 난 것처럼 장대비가 쏟아지는 아침이면 동네 이장이 "아, 아 “라고 목소리를 다듬고 ‘국민학교와 중학교에서 알립니다. 오늘은 비가 너무 많이 와서 학교를 쉰다고 합니다. 다시 한번 알립니다.'라는 마을 방송이 온 동네에 퍼졌다. 방송이 끝나기가 무섭게 학생이 있는 집은 환호성으로 집안이 흔들릴 정도였다.   송은 국민학생에게는 축체를 알리는 빵빠레였고, 중학생에게는 음악을 듣고 방 안에서 종일 화투 치며 뒹굴뒹굴 거려도 된다는 공식적인 말이었다.


장대비가 내리는 날은 부모님께서 논이나 밭에 가지 않는 몇 안 되는 날이었다. 나는 엄마가 늘 농사일로 바빴기에 엄마가 집에 있었으면 하는 간절한 바램을 갖고 살고 있었다. 비 오는 날이면 엄마는 텃밭에서 깻잎, 부추, 호박, 고추 등을 따서 간식으로는 부침개를, 점심이나 저녁으로는 수제비를 만들었다. 온 가족이 둘러앉아 먹는 부침개와 수제비는 진짜 맛났다. 아부지는 동네 어른들과 작은방에서 술을 드셨다. 그때는 소주가 됫병으로 나왔었다.  아부지는 원래가 사람을 좋아하셨다. 우리 아부지를 따르는 동네 어른들도 많았다. 남자 어른들이 작은방에 둘러앉아 소주를 마시는 동안 엄마는 뚝딱뚝딱 안주를 만들어 작은방에 끊임없이 넣어주고 우리도 주셨다. 면소재지에서 식당 하는 큰아부지는 장사하고 남은 돼지껍데기를  주기적으로 우리 집에 줬다. 고추장을 넣어  맵게 볶아서 만든  돼지껍데기는 비 오는 날  먹는 단골 술안주였다. 아부지는 술 마셔도 목소리가 커지거나 행동이 과격해지거나 하지 않았다. 오히려 술을 드시면 더 차분해지셨고 말씀도 조근조근 조리 있게 했다. 아부지가 이야기하고 다른 어른들이 아부지 말을 경청하는 모습을 볼 때 아부지가 참 멋져 보였었다.


사춘기가 되고 난 다음에는 장대비가 내리는 날이면 공부방에서 언니랑 라디오를 듣거나 카세트에 테이프를 넣고 노래를 따라 불렀다. 또 심심하면 민화투를 치기도 했다. 화투를 치다가 이기고 싶은 욕심에 속임수를 써서 언니에게 걸리면 사기가 아니라고 우기며 싸우기도  했다.  그러다가 언니가 공부한다고 방에서 나가라고 하면 눈깔질을 하면서 나왔다. 공부방은 안방 옆에 있는 방으로 토방과 바깥에서 들어갈 있는 문이 각각 하나씩 나 있었고 그 문들은 서로 마주 보고 있었다.  언니와 나랑 놀려고 오는 아이들은 주로 바깥문으로 들락날락거렸다. 비 오는 날에는 언니가 항상 바깥문을 활짝 열어 놓았다. 바깥문을 열면 짚벼늘, 대추나무, 감나무, 옆집  지붕이 보였다. 아무 말 안 하고 멍하니 앉아 풍경을 바라보고 있으면  장대비의 시원한 냄새가 공부방 안으로 파고들어 와 내 몸속으로 들어왔다.  나는 시원함을 좋아했다. 지금처럼 핸드폰이 있는 세상이었다면 그 풍경을 수십 번은 동영상으로 담았을 것이다.


언니가 도시로 가고 없었던 중학교 2, 3학년 때는 감성에 젖어 살았고 혼자 있기를 좋아했다. 장대비가 쏟아지면 공부방에 혼자 있다가 가족들 몰래 바깥문으로 나가서 집 뒤에 있는 건주장에 갔다. 건주장 위로 쏟아지는 빗소리는 라디오 볼륨을 높인 것처럼 크게 들렸다.  건주장 앞으로는 텃밭과 대사밭이 있었고 대사밭 아래 우리 집이 있었다. 건주장 뒤로는 소나무가 우거진 산이 있었다. 건주장으로 끝없이 흘러내리는 빗물,  소나무, 대나무, 농작물의 흐릿한 초록빛, 타닥타닥 들리는 빗소리, 그리고 나의 숨소리만 있는 건주장은 나만의 아지트였다. 나는 건주장 안에서 빗에 젖은 자연을 바라보며 시를 썼었다.


토닥토닥 토닥비가

토닥토닥 끊임없이 내려

나의 아픔을 토닥여주네.


아무도 위로해주지 않는데

토닥비가 날 찾아와서

토닥토닥 토닥여주니 눈물이 나네.  

 

토닥비는 알까?

토닥비의 토닥토닥 토닥임이

나를 위로한다는 것을.     


나는 요즘 날마다 기다린다.

토닥비가 토닥토닥 내려

날 위로해 주기를    


대강 이런 부류의 유치한 시들이었다. 지금은 기억나지 않은 많은 시들을 잘 간직하고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고등학교 가면서 남들이 볼까 봐 다 찢어서 버렸던 것 같다.

   

중학교 이후  바쁜 나날들로  오랫동안 장대비를 잊고 지냈었다. 장대비는 신기하게도 아무에게나 보이지 않는다.  삶의 여유가 있나 지나치게 힘들거나 맑은 영혼을 가져야만 보이는 듯하다. 우리 아이들이 4살, 6살 되던 어느 날 장대비가 다시 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작은 아이가 "엄마, 비가 엄청 세게 와"라고 말했다. 나는  "우리 나가서 비구경할까?"라고 말하고 아이들과 밖으로 나갔다. 아이들과 비를 한참 구경했다. 아이들이 비를 맞아도 되냐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나는 "맞아봐."라고 말했다. 아이들이 우산을 버리고 비를 맞으며 첨벙첨벙 뛰면서 즐거워했다. 난 그런 아이들과 장대비를 바라보며 멍하니 있었다.  그날 저녁 우리 애들은 열이 났다. 길어야 10분 내외로 비를 맞은 아이들이 열나는 것이 좀 의아했다. 나는 그렇게 장대비를 맞고 싸돌아다녀도 감기 한 번 걸리지 않았는데......


언제나 장대비가 내리는 날은 하던 일을 멈춘다. 창을 통해 장대비를 맞아주거나 시간이 허락한다면 직접 건물 밖으로 나가 장대비를 바라본다.  장대비는 나에게 일상의 많은 어려움을 잠시 잊게 한다. 장대비는 아무 말 없이 날 토닥토닥 두드려 준다. 나에게 장대비란 힐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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