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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성배 Jan 03. 2022

한낮의 자유

백신 맞은 자에게 특권이 있나니

오늘로 백신패스가 만료됐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잔여백신을 찾아 3차 부스터샷을 맞으러 나갔다. 사회에서 백신패스로 열띤 논쟁을 펼칠 때 나는 이미 부대에서 군말 없이 맞아버린 상황이었기 때문에 신체의 자유니 뭐니 그런 건 생각할 틈도 없었다. 그러나 백신을 맞지 않으면 당장 내일 있는 약속을 가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순간, 당황스럽고 잘못한 것도 없는데 만나는 상대에게 폐를 끼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체의 자유를 박탈당했다기보다 한낮의 자유를 박탈당했다.


자유에 대해 생각하자면 끝이 없다. JTBC 드라마 '설강화'는 간첩이 시위대에 들어와 사랑을 시작한다는 내용을 다룬다고 '국가보안법' 위반 논란에 휩싸였다. 드라마에 별 관심이 없는 나로서는 내용이 어떻고, 전개가 어떻고, 그래서 정말 역사를 왜곡하고 국가보안법을 위반했는지 아닌지 궁금하지 않다. 다만, 명백한 창작물로 제작된 드라마에서 간첩이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를 그리는 것이 안 되는 것인가에 대해서는 깊게 생각해봄직 했다. 다른 창작물들에서도 충분히 범죄를 미화하는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는데 왜 하필 '설강화'는 안 되는 것일까. 살인자가 역경을 딛고 성공하는 영화나, 전범자가 사랑하는 드라마에 대해서는 가타부타 않다가 하필 왜 '설강화'인가.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지 않은가.


물론 이런 식으로 치부해버린다면 논쟁은 필요 없어질지 모른다. 예술의 표현이라는 비호 아래 부도덕하고 비인간적인 행태를 용인할 사람은 없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픽션이면서 실재하는 위해를 가하는 게 아니라면, 오히려 표현의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것이 더 올바르지 않아 보인다. 정치적 올바름에 가려져 침묵의 나선에 빠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나뿐인가. 옳고 그름을 가르는 일이 숙의를 거쳐 자유의 경계를 획정하는 일이라기보다는 그저 정치놀음이지 않나 생각이 든다.


역사 왜곡 논란으로 조기 종영한 '조선구마사'는 또 어떠한가. 좋은 역사 왜곡은 괜찮고 나쁜 역사 왜곡은 안 된다면, 결국 선택적인 자유아닌가. 올바른 인식, 좋다. 적어도 방송매체는 그러해야 한다. 이미 미디어는 우리 삶에 깊숙이 자리하여 있기 때문에 영향력을 생각한다면 잘못된 인식을 심어준 것에 대해 어느 정도 책임을 물어야 하는 것도 맞다. 하지만 너무 높은 잣대를 들이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이제 어떤 상상을 하는 것조차 죄스럽게 느껴진다.


난 세상이 무엇이 옳고 그른지 모르겠다. 과연 무엇에 확신을 할 수 있는가. 그래, 나를 위해서뿐만이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 확산 방지를 위한 일이니까 백신을 맞고 행동을 삼가야지. 그런데 피부로 와닿는 부자유는 어떡하나. 실체 없는 관념이 아닌 우리 행동을 막아서는 일. 신체를 속박하는 고도화된 방법이 아닌가. 글쎄, 나도 잘 모르겠다. 너무 혼란스럽다. 난 이제 백신을 맞았으니까 다시 한낮의 자유를 누리러나 가볼까, 나는 이것이 맞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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