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은 Nov 04. 2023

회사 보고서 쓰는 게 제일 어렵더라

월급날이 언제더라…

글쓰기는 다 어렵다지만, 요즘 들어 가장 어려운 글쓰기는 회사 보고서다. 회사가 요구하는 형식에 맞춘 글쓰기는 생각보다 어렵다.

먼저 어휘 선택이 그렇다. 여전히 회사 용어를 습득해 가는 중이다. 회사들마다 쓰는 전문 용어가 있는데, 일상의 언어를 회사의 언어로 바꾸는 과정이 필요하다. 회사에 다니면서 느낀 것은 회사 보고서에 쓰는 용어는 유독 어려운 단어들이 많다는 것이다. 

그동안 나는 일부러 쉬운 어휘를 사용하는 편이었다. 배운 글쓰기가 그랬고, 그동안 써온 말과 글도 그랬다. 오랫동안 해외에 살다 보니 어려운 어휘를 쓸 일도 많지 않았다. 사용하지 않으니 바로바로 어휘가 생각나지 않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매일 쓰는 한국어지만, 어휘력이 줄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어휘력을 지키기 위해 책을 읽으려고 노력했다. 모국어라고 만만하게 볼 일은 아니었다. 

게다가 여유 시간에 국제학교 학생들에게 국어를 가르치면서 나의 말습관은 좀 더 쉬운 어휘들로 바뀌어 있었다. 조금이라도 어려운 단어가 나오면 아이들은 집중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회사 글쓰기는 반대였다. 일단 써놓고, 이 말을 어떻게 전문 용어로 바꿀까, 대체할 수 있는 고급 어휘, 어렵고 정갈한 어휘는 어떤 것이 있는지를 고민하게 된다. 글을 읽는 독자는 상사이기도 하고, 타 부서 사람들이기도 하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독자층이다. 어떻게 그들의 눈의 띄는 간결하면서도 흥미로운 글을 쓸 것인가.


"이걸 뭐라고 해요?"

"이게 무슨 뜻이에요?"

고치고 또 고치도, 묻고 또 묻는 게 신입사원 같다. 써놓은 글은 계속해서 다이어트시킨다. 이번에 쓴 보고서도 다섯 장이 네 장이 되고, 최종 두 장 반으로 줄였다. 바쁜 분들의 읽는 시간을 줄여드리는 눈에 쏙 들어오는 글을 쓰기 위한 노력이다.

이번에도 급하게 연말 보고서를 한국어로 번역해서 작업하고, 집에 가서 한 번 더 최종 체크하기로 하고는 퇴근길에 같은 부서 과장님께 확인을 부탁했다. 나이는 나보다 훨씬 어리지만 지금 부서로 오기 전에 이번 보고서를 제출해야 부서에 있었기 때문에 조언 겸 SOS를 요청한 것이다.

그날 저녁 과장님의 빨간색으로 넘쳐나는 피드백을 받았다. 내 눈에 안 보이는 것이 과장님 눈에는 보였고, 내 눈에 거슬려도 슬쩍 넘어간 것은 어김없이 빨간색으로 바뀌어 있었다. 질문도 날카로웠다. 결국 수정 또 수정. 그리고 보고서 글쓰기의 중요한 한 가지를 더 배웠다.  한자도 섞어 써야 한다는 것.(모든 회사가 그렇지는 않겠지만...)  이럴 때는 굳이 내 스타일을 고집할 필요가 없으니, 회사 보고서만큼은 글쓰기 선배인 과장님의 조언대로 정리해서 최종 제출했다.


"과장님, 제출했어요."

"고생하셨어요."

"회사 보고서 작성 너무 어려워요."

"그렇죠.. 너무 어렵답니다. 보고서 작업은..."


늘 즐겁기만 했던 회사 출근에 가끔 먹구름이 끼는 중이다. 정신 차리고 보니 이것도 어렵고 저것도 어렵다. 성과에 대한 압박, 팀워크에 대한 압박. 가장 자신 있던 일도 요즘은 나 홀로 헤매는 중이다. 회사가 마냥 즐겁지는 않지만 그래도 회사가 주는 월급은 달콤하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버틴다.


매거진의 이전글 오늘은 한 문장이라도 쓰고 싶어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