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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 percent Jan 03. 2024

가스 시린지와 스왑만 있으면 어디든 갈 수 있어

뭐든 하는 응급실 인턴 -3

정신 없이 바쁘고 구급차 사이렌 소리가 삐용삐용 울려퍼질 것 같은 이미지와 달리 응급실은 인턴들에게 꽤나 선호되는 분과이다.

간호사 친구에게 물어보니 간호사 쪽에서도 선호된다고 하더라.


그 이유는 무엇인가.

칼 같은 근무시간, 퇴근하면 아무도 나를 찾지 않는 자유로움.


하지만 기대가 너무 과했던 탓일까. 응급실 인턴은 정말 장단이 명확했다.

응급실은 당직과 근무로 나뉘는 타과와 달리 데이-데이-브릿지-나이트-나이트의 순서로 근무구조 자체가 다르다. 데이는 아침, 나이트는 밤, 그리고 브릿지는 그 중간.

당직이 없기 때문에 남는 시간이 많아서 좋다. 


하지만 문제는 나 혼자 시간이 많다는 점. 그리고 생활패턴이 깨져 오프 때에도 잠이 쏟아진다는 점이다. 

자고 일어나면 출근, 퇴근하면 잠의 반복이었는데 혹시 이건 그냥 내가 잠이 많은 탓일까? 

결국 반강제적인 워커홀릭. 깨어있는 시간의 대부분이 근무시간이었다.


혼자 시간이 많으니 정시 퇴근하는 동료인턴들과는 마주치기 어렵다. 

갑자기 누군가 보이지 않는다? 그 인턴은 응급실을 돌고 있을 확률이 높다. 

물론 이런 삶은 인턴의 경우이고, 응급의학과 전공의 선생님들은 오프가 상대적으로 많아 타과에 비해 여가시간도 많고 행복하다고 하더라.


하지만 이것은 인턴 기록지. 이야기를 이어나가보도록 하자.



#1. 액팅머신

응급실의 좋은 점(?) 하나. 

술기 능력이 비약적으로 상승한다. 


차트인턴을 하면서 술기의 감을 잃어버렸다 해도 응급실 한 달이면 다시 술기 마스터가 될 수 있다. 

가장 많이 하는 술기는 동맥혈 채혈로 이제는 손목이 안되면 발등, 발등이 안되면 팔, 그것도 안되면 허벅지로 온갖 군데에서 동맥을 잡을 수 있게 되었다. 


따라서 준비된 응급실 인턴은 언제 어디서든 환자의 피를 뽑기 위해 주머니에 가스 시린지 서너개 정도는 가지고 다니는 것이 미덕이다. 



#2. 능구렁이 응급실 인턴

수도권에서 한 번, 비수도권에서 한 번 응급실 인턴을 해보았다. 

수도권에서 인턴은 주로 액팅을 하며 전공의 선생님들이 초진을 보신다. 

그에 반해 비수도권에서는 인턴이 초진을 보는데, 하루에 몇십명 환자의 초진을 보다보면 싫어도 능글함이 입에 붙게 된다. 


아아~ 거기가 아프시다구요~ 아이구 우리 어머니 많이 힘드셨겠어!

설레는 반존대는 기본이요, 


아이구 이걸 왜 못하게 할까, 병원이 좀 그래요 그쵸? 

이따끔 나오는 불가능한 요구는 웃음으로 넘긴다. 

웃는 낯에 침 못 뱉는다는 오래된 말은 응급실을 돌아보니 정말 맞는 말이다. 


아무리 피곤해도 딱딱한 응대보다는 웃음으로 대응하는 것이 서로에게 좋더라. 



#3. 우리에게는 시간이 없다

응급실은 말 그대로 '응급' 환자들이 오는 곳. 

따라서 급한 일과 급하지 않은 일을 분류하고 급한 일은 빠르게 처리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대표적으로 CPR 환자가 오면 올스탑하고 CPR 환자에게 달려간다던가 

CRE 채취는 조금 뒤로 미뤄둔다거나 하는. 


신속정확한 쿠팡배달원의 마음가짐으로 물어볼 것만 확실히 물어보고 환자를 분류해야 한다. 

문진 중 환자분들의 하소연이나 일상 이야기가 섞여나오기 시작하면 정말 흥미로운 이야기여도 눈물을 머금고 컷해야한다. 끝없이 듣다가는 뒤의 정말 응급한 환자가 제 시간에 처치를 받지 못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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