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든 하는 응급실 인턴 -3
하지만 문제는 나 혼자 시간이 많다는 점. 그리고 생활패턴이 깨져 오프 때에도 잠이 쏟아진다는 점이다.
자고 일어나면 출근, 퇴근하면 잠의 반복이었는데 혹시 이건 그냥 내가 잠이 많은 탓일까?
#1. 액팅머신
응급실의 좋은 점(?) 하나.
술기 능력이 비약적으로 상승한다.
차트인턴을 하면서 술기의 감을 잃어버렸다 해도 응급실 한 달이면 다시 술기 마스터가 될 수 있다.
가장 많이 하는 술기는 동맥혈 채혈로 이제는 손목이 안되면 발등, 발등이 안되면 팔, 그것도 안되면 허벅지로 온갖 군데에서 동맥을 잡을 수 있게 되었다.
따라서 준비된 응급실 인턴은 언제 어디서든 환자의 피를 뽑기 위해 주머니에 가스 시린지 서너개 정도는 가지고 다니는 것이 미덕이다.
#2. 능구렁이 응급실 인턴
수도권에서 한 번, 비수도권에서 한 번 응급실 인턴을 해보았다.
수도권에서 인턴은 주로 액팅을 하며 전공의 선생님들이 초진을 보신다.
그에 반해 비수도권에서는 인턴이 초진을 보는데, 하루에 몇십명 환자의 초진을 보다보면 싫어도 능글함이 입에 붙게 된다.
아아~ 거기가 아프시다구요~ 아이구 우리 어머니 많이 힘드셨겠어!
설레는 반존대는 기본이요,
아이구 이걸 왜 못하게 할까, 병원이 좀 그래요 그쵸?
이따끔 나오는 불가능한 요구는 웃음으로 넘긴다.
웃는 낯에 침 못 뱉는다는 오래된 말은 응급실을 돌아보니 정말 맞는 말이다.
아무리 피곤해도 딱딱한 응대보다는 웃음으로 대응하는 것이 서로에게 좋더라.
#3. 우리에게는 시간이 없다
응급실은 말 그대로 '응급' 환자들이 오는 곳.
따라서 급한 일과 급하지 않은 일을 분류하고 급한 일은 빠르게 처리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대표적으로 CPR 환자가 오면 올스탑하고 CPR 환자에게 달려간다던가
CRE 채취는 조금 뒤로 미뤄둔다거나 하는.
신속정확한 쿠팡배달원의 마음가짐으로 물어볼 것만 확실히 물어보고 환자를 분류해야 한다.
문진 중 환자분들의 하소연이나 일상 이야기가 섞여나오기 시작하면 정말 흥미로운 이야기여도 눈물을 머금고 컷해야한다. 끝없이 듣다가는 뒤의 정말 응급한 환자가 제 시간에 처치를 받지 못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