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Y percent Jan 04. 2024

주경야독의 계절

인턴 시험 - 1

12월은 한 해의 마지막, 인턴들에게는 시험이 다가오는 달이다.


각 병원마다 비중에 차이는 있겠지만 레지던트 선발에는 국시, 내신, 인턴점수, 그리고 인턴 시험이 평가항목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소위 말하는 인기과들(마이너과)를 들어가기 위해서는 이 인턴 시험을 잘 보는 것이 필수적이다.

아무리 일을 열심히 했어도, 과장님이 그 인턴을 뽑고 싶어도 시험을 못보면 말짱 꽝이다.

실제로 평판도 좋고 거의 그 과의 0년차라고 불리던 인턴이 시험에서 미끄러져 모두의 의아함 속에 지망과를 떨어진 경우가 종종 있다.


반대로 비인기과(안타깝게도 주로 메이저과)를 지망하는 인턴들은 부담이 없다.

인턴 시험에서 낙방하는 경우는 정말 드무니 최소한의 성의를 보인다라는 마음가짐으로 시험에 임하게 된다.

그래서 한 숙소 내에서도 지망과에 따라 누군가는 정말 열심히 공부를 하고 누군가는 쿨쿨 누워서 자는 풍경이 보인다.

하지만 그런 인턴들도 시험이 대략 2주 남은 시점에서는 이제 슬슬 공부라는 걸 하기 시작한다.

나만 너무 못 보면 체면이 서지를 않으니까.


그래서 결론적으로 12월달은 모든 인턴들의 마음이 콩밭에, 아니 시험밭에 가있다.

병원에서도 회의실 하나를 공부방으로 내어주고 기숙사의 침대에는 책들이 널부러져있다.

응급실 차팅 컴퓨터에는 의무기록 창 뒤로 알렌의 서재(온라인 공부 사이트)가 켜져있다.

일을 안하는 것은 아니지만 최대한 덜 한다는 느낌.

콜들을 모아두었다가 한번에 처리하는 것은 말턴과 수험생이 합쳐진 절묘한 결론이다.

 

국시 준비를 할 때와는 느낌이 다른 것이 그때는 주독야독이었다면 지금은 주경야독.

당직이라도 선다치면 주경야경독이다.

시험을 이미 친 입장에서 말하자면 근무 중일 때는 어차피 완전히 집중해서 공부하기는 어렵다.

문제집이나 개념서를 보기보다는 헷갈렸던 개념이나 답이 논란인 문제들을 동기들과 논의하는 것이 더 도움이 되었다. 인턴시험은 정답을 알려주지 않기 때문에 각 수험서마다 답이 다르고 누가 맞는지도 알기 어렵다.

의견을 구할 동기들이 많을 때 그런 헷갈리는 문제를 보고, 혼자 정리하는 것은 퇴근 이후에 해도 충분하다.


오히려 힘든 것이 퇴근 이후의 공부다.

지치고 피곤해서 평소라면 맛있는 음식을 챙겨먹고 침대로 다이빙했을 이 시간에 책상에 앉아 공부를 해야한다니 슬픔이 몰려온다.

그럴때는 탈족 문제를 풀었다. 내 부족함이 보이면서 공부.. 해야겠지..? 하는 생각을 되새기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제 시험은 끝났다. 하하

드디어 시험에서 자유다. 4년 동안은.


매거진의 이전글 가스 시린지와 스왑만 있으면 어디든 갈 수 있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