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 대기중 분만실 인턴 -2
산부인과는 조금 특이한 과이다.
과의 정체성이 어떤 질병군을 다루느냐가 아니라 어떤 환자군을 다루느냐로 결정된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사람들이 흔히 산부인과 하면 떠올리는 분만, 산전진찰 같은 일은 산과가 담당하며 여성의 내분비적 질환이나 종양의 치료는 부인과가 담당한다.
사실 분만실 인턴은 아늑한 분만실 안에 앉아 미어캣처럼 분만을 기다리기 때문에 분만만 한다는 게 딱히 틀린 말은 아니다만.. 산부인과라는 과 자체는 정말 다양한 일을 한다.
인턴의 분배도 1:3 정도로 부인과에 꽤나 많은 인력이 필요하다.
당직 때 살짝 발을 담궈 본 경험을 좀 이야기해보자면
부인과 인턴은 뭐랄까, 외과 인턴같은 느낌이다.
산더미같은 수술 동의서를 받고 영차영차 수술방 준비를 하고 눈이 감기지 않게 최선을 다하며 수술 보조를 선다.
다른 수술과랑 다른 점이 있다면
환자들을 개구리 자세 상태에서 수술을 한다는 점이다.
개구리 자세를 하게 되면 어깨에 하중이 실리기 때문에 어깨가 아프지 않도록 요 어깨걸이를 해주는데
이게 참 어렵다.
어느쪽이 위인지 무슨 나사를 어느쪽으로 돌려야 고정이 되는지 고민을 할 새 없이 후다닥 준비가 끝난다.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이 다리를 고정하는 장치인데, 이 친구는 '정말' 중요하다.
수술을 하다가 다리의 고정장치가 풀려버리면 이보다 더한 대참사는 없다.
생각하기도 끔찍하다. 환자의 다리가 떨어지는 것은 물론이요 수술부위가 모두 컨타(contamination)되기 때문에 처음부터 소독을 다시 해야한다.
수술방 내 모든 사람들에게 민폐를 끼치게 되는 것이다.
산부인과만 사용하는 것은 아니지만,
산부인과에서 정말 많이 사용하는 것이 바로 로봇이다.
로봇수술은 처음 보게되면 정말 신기하다. 로봇 복강경을 체험할 수 있는 곳이 있어 한번 해보았는데
꼭 VR 게임을 하는 것 같다.
시야는 복강경의 카메라가 3D로 보이고 손가락을 움직이면 기계팔이 내 손의 움직임을 따라 구조물을 자르기도 하고 지지기도 한다.
개복 수술에서 복강경, 복강경에서 로봇 수술까지.
수술은 점점 더 정교하고 고도화되고 있다.
아차하면 세상의 흐름에 뒤처지겠어. 빨리 뛰어가야겠다.